통쾌한 뒤집기였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올랐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영화팬들은 수상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다.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했다.

그런데 대이변이 일어났다.

시상식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기생충’이 기대하지 않았던 각본상을 수상하자 시싱식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환호성이 뒤를 이었다.

아카데이상은 수상자 이름이 적혀있는 봉투가 개봉되기 전까지는 누가 수상자인지 시상자나 관객들은 미리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수상자가 호명될 때 보이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어떤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지는 가늠할 수는 있다. 

10일(한국시간) 열린 이날의 시상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각본상 수상 후 ‘가생충’이 큰일을 낼 수도 있겠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기생충’은 국제영화 부문에 이어 감독상과 대상격인 작품상까지 휩쓸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번 시상식에서 ‘기생충’보다는 전쟁 영화인 ‘1917’이 감독상은 물론이고 작품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아군을 구하기 위해 적진을 뚫고 전쟁터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두 영국 병사의 사투를 그린 영화인 ‘1917’은 뛰어난 작품성으로 지난 연말부터 급부상하면서 영미권 시상식을 휩쓸었다.  

제77회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비롯해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총106개 수상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이라는 독보적인 촬영 기법으로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과 압도적인 몰입감을 준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때문에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주요 부문을 휩쓸며 대미를 장식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기생충’이라는 복병을 만나 촬영상, 시각 효과상, 음향 믹싱상 등 3개 부문만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사실상 ‘기생충’에 완패를 당한 것이다.

이처럼 ‘기생충’이 예상을 뒤엎고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특별한 영화였다.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이 '기생충'을 본 사람들은 이 영화가 근래에 보기 드문 특별한 영화라고 입을 모았다.

'기생충' 처럼 코미디로 시작했다가 중반으로 가면서 점점 드라마 장르로 변한 뒤 공포 장르로 끝나는 영화는 흔치 않다.

이렇게 만들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봉준호 감독은 이를 물 흐르듯 연출했다.

'있는 자와 없는 자’라는 소재 또한 영화를 본 사람이면 정치적 성향을 떠나 누구나 생각해 봄직한 사회적 이슈였다. 

둘째, 북미 개봉은 신의 한 수였다.

제아무리 좋은 상품도 알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작품성이 뛰어나다 해도 알려지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특히 ‘광고의 나라’ 미국에서는 홍보가 상품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슈퍼볼의 경우 30초 당 광고비가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그 같은 거액을 투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광고한 만큼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영화도 다르지 않다. 예술성과 작품성이 뛰어나다 해도 알려지지 않으면 아무도 그 영화를 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의 미국 개봉 결정은 ‘신의 한 수’였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기생충’ 관계자들은 영화 홍보를 위해 미국의 주요 지역을 방문해 영화 알리기에 열을 올렸다. 

또한 각 지역에서 열린 크고 작은 영화제에도 참석하는 등 전례 없는 홍보 활동을 벌였다.

여기에는 적지 않은 돈이 투자됐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은 장르를 넘나드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 제작했다는 점과 시상식을 앞두고 영화 알리기에 전력을 쏟아부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