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유럽산 대체에너지 ‘저가공세’ㆍ‘脫원전’文정부...이러다 국내 기업 망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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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태양광ㆍ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국내 관련 업체들은 무더기 폐업 위기에 처해있다.

품질이 낮고 인증도 받지 않은 외국 기업의 저가 제품이 쏟아져 들어와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어서다. 풍력 분야에서는 덴마크, 독일, 중국 등 외국 기업의 공세에 밀려 국내 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태양광은 중국업체의 저가 공세에 속수무책이다. 원전은 제조기업의 85.7%가 탈원전 정책으로 경영난에 처했다고 답했을 정도다. 같은 시기 외국 기업들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저가공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비책 마련이 미비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국내 기업 입지는 사라지고 외국 기업 세상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함을 재차 강조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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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원전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펴고 있지만, 재생에너지의 산업 경쟁력은 되레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기업은 파산·감원 속출

지난 3일 한국에너지공단이 발표한 ‘2018년 신재생에너지 산업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신재생에너지 제조업체의 고용 인원은 1만3885명으로 전년보다 3.9% 줄었다. 2015년부터 3년 연속 감소세다. 매출은 9조9671억 원으로 2.3% 감소했다. 투자액은 82.5% 급감한 1421억 원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내 신재생에너지산업의 위축은 전체 고용·매출·투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태양광산업이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탓이다. 2018년 국내 태양광 제조업체의 고용 인원은 전년 대비 2.2% 줄었다. 매출과 투자는 각각 9.8%, 85.7% 뒷걸음질 쳤다. 정부는 2017년 말 7%인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 20%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후 각종 보조금을 지원하며 태양광 보급을 밀어붙였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업계에 따르면 OCI는 오는 20일부터 전북 군산공장의 태양광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한다. OCI는 군산공장에서 전체 생산량의 80%에 달하는 연 5만2000t 규모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을 생산해왔다. 군산공장 세 곳 중 2·3공장은 문을 닫고 1공장은 설비를 고쳐 5월부터 반도체용 폴리실리콘만 생산한다. 원가경쟁력을 갖춘 말레이시아 공장에서는 폴리실리콘을 계속 생산한다.

국내 사업을 접은 것은 중국의 저가 공세 탓에 지난해에만 영업손실 1807억 원을 내면서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해서다. 중국 폴리실리콘 업체들이 최근 몇 년간 정부 지원을 받아 생산 설비를 증설하면서 저가 물량 공세를 펼쳤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2018년 1월 ㎏당 17달러 수준이었던 폴리실리콘 가격은 최근 7달러대로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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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치킨게임을 버티지 못한 국내 태양광 산업은 존폐 기로다.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태양광 모듈’로 이뤄진 밸류체인은 붕괴할 위기다. 폴리실리콘을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가 나자 한화솔루션도 생산 중단을 검토 중이다. 한화까지 생산을 접으면 국내 태양광 기초 소재 산업은 전멸한다. 중간재인 잉곳·웨이퍼를 만드는 넥솔론이 지난 2017년 파산하면서 국내 유일한 제조사가 된 웅진에너지도 지난해 5월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이는 정부가 태양광 보급을 급격하게 늘리자 저가 제품을 앞세운 중국업체들이 별다른 장벽 없이 국내 시장을 단숨에 장악한 여파다. 국내 대기업들은 정부의 세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데다가 가격 경쟁력도 중국을 따라갈 수 없는 구조다. 폴리실리콘 생산 원가의 30%가량 차지하는 전기요금에서는 중국이 한국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지난달 중국은 한국산 폴리실리콘에 대해 반덤핑관세를 향후 5년간 계속 부과하기로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탈원전 한다면서 수출까지 하는 멀쩡한 원전 산업은 다 죽여 놓고, 재생에너지 키운다며 세금 쏟아부어 외국 회사 배만 불리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산 풍력, 국내 시장 절반 장악

풍력 시장도 저가 공세에 밀리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풍력발전기 관련 회사는 2014년 34개에서 지난해 말 27개로 줄었다. 고용은 2424명에서 1853명으로 24% 감소했다.

2017년 말 국내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537기, 원전 1기 발전 설비와 맞먹는 1139㎿ 규모다. 이 중 국산은 553㎿(282기)로 절반이 안 된다. 베스타스·지멘스 등 유럽의 글로벌 풍력사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외국산 비율은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풍력사는 대량생산을 통해 우리보다 제품 가격을 10~20% 낮췄다.

반면 2000년대 후반 현대중공업 등 조선 3사와 중공업 회사가 풍력시장에 진출했지만 지금은 두산중공업, 효성, 유니슨 등 네 풍력발전기 제조사만 남아 있다. 효성은 올해 수주 물량이 없다.

풍력발전기를 외국사가 제작하면 기자재 공급과 시공은 물론 완공 후 20여 년간 운영·유지·보수도 외국사가 도맡게 된다. 국내 일자리 창출도 거의 없다.

재생에너지 유지보수 전문기업 관계자는 모 신문을 통해 "외국산 발전기가 고장 나면 우린 열어볼 수조차 없다"며 "버티고는 있지만 고급 인력들 모두 내보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서 실적이 없으니 `트랙 레코드(과거 실적)`를 요구하는 수출 길도 막히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풍력 단지 사업자인 공기업들도 경제성만 따져 외국사를 선호하니 대책이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취임 한 달 후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을 선언했다. 같은 달 정부는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을 일시 중단하고 민간 배심원단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갑작스레 바뀐 정책으로 원전 업체들은 수주가 끊겨 기업 유지가 불가능해졌다.

한때 300명이 넘던 직원은 90명으로 줄인 에스에이에스사도 결국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이 기업은 원전의 핵심 부품인 셸(shell)을 만들던 곳으로 셸 가공 기술은 국내 최고였으며 시장 점유율도 1위였다. 원전에 들어가는 복수기(수증기를 냉각시켜 물로 되돌리는 장치)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만들었다. 셸 가공에 쓰이는 대형 수직 선반을 국내 최초로 제작해 에스에이에스에 납품해 온 한국공작 기계도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경남지역본부가 지난해 2월, 지역 소재 85개 원전 부품 생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원전 관련 현황 조사를 한 결과, 제조기업의 85.7%가 탈원전 정책으로 경영난에 처했다고 답했다.

국내 산업 생태계 육성은 외면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국내 업체 보호에 눈 감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누리꾼 `body****`는 "그래 이건 아니다. 균형발전을 해야지…. 원전수출하고 신재생에너지 육성하고`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반면 영국과 캐나다, 중국 등은 ‘국산품 사용 비율’을 정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며 육성한다. 일본은 가격이 비싸도 자국 기업 제품 중심으로 설비를 확충해 나가고 있다. 우리도 국내 기업이 고사하기 전에 일정 비율 국산 부품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국내 산업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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