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 네 식구’ 소녀가장, ‘골프여왕’ 우뚝!

신지애가 지난 8월 3일 잉글랜드 서닝데일에서 브리티시 여자 오픈 골프 우승 후 트로피에 키스하고 있다.

단칸셋방을 전전하던 소녀가장이 세계 골프무대를 호령하는 ‘여왕’으로 거듭났다. 1988년생으로 올해 막 성년이 된 신지애(하이마트)가 여섯 번째 ‘한국인 메이저 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신지애는 지난 4일(한국시각) 영국 버크셔 서닝데일 골프장에서 열린 브리티시여자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6언더파 66타를 쳐 합계 18언더파로 감격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2위 챙 야니(대만)와는 불과 3타차의 신승이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첫 우승을 메이저 대회 재패로 일궈낸 신지애는 이번 대회 상금으로 31만4000달러(약 3억2000만원)를 벌어들였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서 ‘지존’으로 불리던 신지애가 세계무대 정상을 탈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지존’ ‘역전의 명수’ 등으로 불리며 수많은 우승컵을 휩쓸며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신지애. 하지만 소녀의 지난 삶은 고난과 상처로 얼룩져 있다.

“탁월한 기량으로 대회 최연소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은 신지애 선수!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보배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훌륭한 선수가 되길 바랍니다.”


- 대통령 이명박

깜짝 놀랄 만큼 화려한 소녀의 활약은 이명박 대통령의 시선도 빼앗을 정도였다. 이 대통령은 신지애의 브리티시 오픈 우승 소식이 알려진 지난 4일 손수 축전을 보내 소녀를 격려했다. 경기 불황의 늪에 허덕이는 국민의 마음에 한 줄기 단비를 선사한 것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이명박 대통령 친필 축전

만 20세. 뽀얀 솜털이 남아있을 만큼 소녀티를 채 벗지 못한 신지애는 한국여자골프 역사를 다시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11월 프로무대에 뛰어든 뒤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여자오픈을 시작으로 세 차례나 우승컵을 들어 올린 신지애는 그 해 상금왕과 신인왕을 석권했다.

프로 2년차에 들어선 지난해 활약은 더욱 눈부시다. 무려 시즌 9차례 우승을 거머쥐며 종전 시즌 최다승(5승) 기록을 갈아 치웠다.

상금왕과 다승왕, 최저타상, 최우수선수상 등 온갖 타이틀을 독식해 동료들의 부러움 섞인 질투를 한 몸에 받을 정도다.

마치 ‘우승을 예약해 놓은 듯’ 여러 대회를 섭렵해온 신지애. 하지만 여타의 선수들처럼 부모의 물질적·정신적 물량 공세는 신지애에게 먼 나라 이야기였다. 평범한 소녀로서는 견디기 힘든 시련과 아픔을 이기는 동안 몸에 밴 인내만이 그의 무기였다.

목사인 아버지 신재섭(48)씨 아래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손에 쥔 신지애는 각종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며 뛰어난 소질을 자랑했다.

그러나 2003년 11월, 인생 최대의 시련에 부딪쳤다. 두 동생과 함께 이모 회갑연에 가던 어머니 나송숙씨가 몰던 차를 25톤 화물 트럭이 덮친 것이다. 이 사고로 어머니는 남편과 생떼 같은 자식들을 남겨둔 채 43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어머니 잃고 15만원 단칸셋방으로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14살이던 여동생과 8살 난 남동생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남매는 목과 어깨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꼬박 1년 동안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신지애는 엄마 잃은 슬픔을 다스리기도 전에 병실 한쪽에 놓인 간이침대에서 먹고 자며 동생들 병 수발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극진한 간호 끝에 동생들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형편은 나아질 것이 없었다. 시골 개척교회 목사였던 아버지의 월급은 한 달에 85만원 남짓. 남매의 치료비로 그나마 있던 집마저 날린 네 식구는 15만원짜리 단칸셋방으로 밀려났다.

교통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남매와 이제 막 골프선수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큰 딸 뒷바라지를 하느라 사실상 실업자나 다름없게 된 아버지. 절박한 상황에서 죽어도 놓고 싶지 않았던 골프채를 더욱 단단히 쥔 신지애는 가족과 함께 ‘살기위해’ 성공해야만 했다.

국가대표로 선발 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출전을 눈앞에 뒀을 무렵 신지애는 큰 결심을 했다. 아마추어로서 최고 영예인 태극마크를 포기하는 대신 ‘돈을 벌 수 있는’ 프로무대에 뛰어들기로 한 것. 아버지를 대신해 소녀가장이 된 신지애는 악착같은 근성으로 대회 상금을 휩쓸기 시작했다.

2006 시즌을 포함해 불과 두 시즌 동안 33개 대회를 거쳐 10억4천800만원을 벌어들인 신지애는 선배 정일미가 99개 대회에서 쌓았던 최다 상금기록 8억8천683만원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국내무대를 완벽하게 접수한 신지애의 다음 목표는 당연히 세계무대 제패.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직 큰 무대에서 겨루기엔 이르다”는 아버지의 당부도 있었지만 어린 동생들을 위해 경제적 기반을 좀 더 다져야 한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브리티시오픈 우승으로 신지애는 이 같은 부담감을 한 방에 날려버릴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젊은 선수들이 출전시드를 따기 위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국내무대에서 입지를 다지다 틈틈이 일본과 호주 무대를 오간 신지애.


‘재투성이 아가씨’에서 ‘백조’ 변신

그는 이번 우승으로 브리티시오픈 10년 출전권은 물론 미 LPGA와 유러피언투어(LET) 출전시드를 자동으로 획득했다. 여기에 이미 갖고 있는 국내 투어와 일본투어 시드까지 포함해 신지에는 세계 4대 투어 출전권을 모두 확보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일종의 투어 출전 심사인 ‘퀄리파잉스쿨(Q스쿨)’을 거치지 않고 모두 ‘우승’으로 따낸 것이라 그 의미는 더 크다.

LPGA 투어 시드가 없는 선수가 LPGA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신지애가 13번째, 한국선수로는 5번째다. ‘스무 살 한국선수가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다’는 해외 언론의 대서특필이 이어질 만하다. 유난히 유망주가 많은 1988년 생 가운데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단연 돋보인 신지애는 이번 우승으로 ‘국내용’ ‘안방여왕’이라는 오명도 깨끗하게 털어내는데 성공했다.

그가 내세우는 최대 강점은 평균 비거리가 27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력과 정교한 아이언샷이다. 아무리 먼 곳에서도 홀에 바짝 붙이는 정교한 퍼팅 능력은 천부적인 재능이다. 여기에 이번 브리티시오픈은 물론 국내 대회에서도 증명됐듯 최종 라운드에서 뒤져있다가도 기어코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정신력은 이미 또래를 능가했다는 평가다.

특히 신지애가 대표선수 시절 일부러 경기를 보기 위해 전지훈련 도중 대회장을 쫓아다닐 만큼 존경하는 줄리 잉스터(미국·명예의 전당 회원)는 일찌감치 그의 저력을 알아보고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지난 5월 한국여자오픈 때 한국을 찾은 잉스터가 폭풍이 속에서 연장 우승을 하는 신지애의 모습을 보기위해 악천후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 화제가 된 것이다.

자신의 우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메이저 퀸’으로 등극한 신지애는 세계랭킹 1위를 향한 거침없는 진군을 시작했다. 10년 전 IMF의 상처가 국민의 가슴을 할퀴던 때 불굴의 투지로 세계 골프계를 평정한 박세리. 그의 신화는 2008년 신지애라는 이름 석자로 다시금 부활하고 있다.


#“받은 만큼 베풀어라”

‘재투성이 소녀’를 골프여왕으로 키워낸 따뜻한 손길.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신지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신재섭씨다.

신씨의 직업은 목사. 크고 웅장한 교회도 없고 많은 신도를 거느린 목사도 아니지만 평생 목회자의 길을 걸었고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다.

훈련장 빌릴 돈이 없어 염치불구하고 친구가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에 딸을 데리고 다닐 만큼 형편은 어려웠지만 그의 자녀교육 방식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노하우다.

“늘 받은 만큼 베풀어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수 억 원의 우승상금을 챙길 만큼 잘나가는 신지애지만 그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쓴다. 그가 유일하게 마음껏 돈을 쓸 수 있는 경우는 단 하나. 어려운 이웃을 도울 때뿐이다.

신지애는 상금을 탈 때면 늘 독거노인과 아동 복지관 등에 쌀 100가마니씩을 기증한다. 또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장학금과 수재의연금 등으로도 수 천 만원을 기부할 만큼 통 큰 씀씀이를 자랑하기도 했다. 덕분에 ‘꼬마 천사’라는 닉네임을 얻은 신지애지만 사람들의 칭찬이 어색하기만 한 눈치다.

“제가 어려울 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어요. 그런 제가 다른 누군가를 도우면 그분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나이답지 않게 철이 든 신지애의 정신적 기둥은 물론 아버지다. 평생을 바쳐온 신앙과 약속을 위해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씨는 세상 누구보다 ‘부자 아버지’다.


##신지애 프로필

▲ 출생 : 1988년 4월 28일
▲ 직업 : 골프선수
▲ 소속 : 하이마트
▲ 키 156.0cm / 혈액형 A형
▲ 프로데뷔 : 2005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입회
▲ 학력 : 홍농서초등학교 - 홍농중학교 -
함평골프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

▲ 수상경력
2005 코사이도 대만-일본프렌드십 골프토너먼트 우승
KLPGA SK엔크린 인비테이셔널 우승

2006 한국여자프로골프대상 대상, 신인상, 상금왕,
다승왕, 최저타수상
오리엔트차이나레이디스오픈 우승
KLPGA PAVV 인비테이셔널 준우승
제20회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 우승

2007 한국여자프로골프대상 대상, 상금왕, 다승왕,
최저타수상
KLPGA SK인비테이셔널 우승
KLPGA MBC투어 비씨카드클래식 우승
KLPGA 서경여자오픈 우승
LET ANZ레이디스마스터스 준우승

2008 JLPGA투어 요코하마타이어 PRGR레이디스컵 우승
KLPGA투어 BC카드 클래식 우승
LPGA투어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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