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멤버 정봉주 ‘무소속 출마 가능성’ 민주당 ‘골칫거리’

[일요서울 | 강하늘 기자]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4·15 총선을 앞두고 주요 이슈가 터질 때마다  희비(喜悲) 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우선 민주당은 예비후보자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정봉주 전 의원 문제가 당내 갈등 소지가 되면서 ‘골칫거리’로 속앓이를 해야 했다. 반면 민주당은 자유한국당 집권기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권위인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면서 호재를 만나게 되자 이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봉준호 감독의 쾌거는 한국당의 악재로 흐릿해져 가던 블랙리스트에 대한 기억을 생생히 되살려 냈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까지 봉 감독의 ‘기생충’ 마케팅에 열을 올리면서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정봉주(왼쪽) 전 의원과 봉준호(오른쪽) 영화감독 [뉴시스]
정봉주(왼쪽) 전 의원과 봉준호(오른쪽) 영화감독 [뉴시스]

-‘블랙리스트’ 봉준호 ‘아카데미 4관왕’, 호재 만난 與 ‘봉준호 마케팅’

4·15 총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으면서 ‘총선 이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민주당에게는 당내 분란 요소를 줄이는 것도 최대 과제다. 역대 선거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총선 공천 과정에서 반발자들이 속출하면서 분란을 겪을 경우 이는 민심에도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최근 나꼼수 멤버였던 정봉주 전 의원의 문제가 당내 분란 요소가 되면서 민주당의 골칫거리가 됐다. 민주당은 그동안 부동산 투기 논란을 빚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과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의혹이 제기된 정봉주 전 의원 등의 4·15 총선 출마 문제를 놓고 속앓이를 해야 했다. 

당 지도부의 불출마 권고를 받은 김 전 대변인은 ‘예비후보로만 뛰게 해달라’고 읍소했으나 결국 불출마를 선택했다. 민주당은 서울 강서구갑 공천을 신청한 정 전 의원도 총선 출마 의지를 접어주길 기대했다. 영입인재 2호였던 원종건 씨의 ‘미투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정 전 의원이 출마할 경우 야당에게 불필요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고 선거 구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은 “억울하다”며 의지를 꺾지 않았다. 정 전 의원은 미투 사건과 관련해 진행 중인 명예훼손·무고 등 혐의에 대한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의 후보자격 심사 재보류 직후인 지난 9일 이해찬 대표가 국회에서 정 전 의원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 대표가 정 전 의원을 직접 불렀다는 사실 자체로 불출마 결단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 지도부는 정 전 의원이 스스로 결단하지 않고 출마 의지를 끝까지 접지 않자 결국 공관위가 총선 예비후보자 부적격 판정을 내린 데 이어 지난 10일 최고위원회에서는 이를 확정했다.

‘정봉주 리스크’, “제3의 길” 당내 분란의 씨앗

그러나 민주당 후보로 총선 출마의 길이 막히게 된 정 전 의원은 ‘제3의 길’을 언급하면서 무소속 출마까지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정 전 의원은 지난 10일 한 언론을 통해 총선 역할과 관련해 “당을 위해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당과 대립할 수도 있고 제3의 길을 갈 수도 있다”며 “구체적인 것은 며칠 더 있어야 결정한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은 하루 뒤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공관위의 부적격 판정은 수용하겠지만 이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정 전 의원은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공관위원들은 부적격 판정을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던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면서 “저는 더 많은 옵션과 선택지가 있기 때문에 당이 이후에 정치적 후속 절차를 어떻게 밟아가는지 지켜보면서 그에 상응한 구체적 행동, 액션플랜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는 정 전 의원을 지지하는 당원들이 “경선 기회를 줘야 한다”, “무소속으로라도 나오라” 등의 글을 올리며 지도부의 부적격 판정에 반발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강서구갑 현역 의원인 금태섭 의원 제명 청원 요청서를 당 윤리심판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금 의원은 지난해 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국회 표결에서 당론을 어기고 ‘기권표’를 던지는 등 그동안 소신 행보를 보이면서 극성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왔다. 정 전 의원은 금 의원을 한국당 상징 색깔인 ‘빨간 점퍼’, ‘내부의 적’이라고 비판하며 강서갑 출마를 선언했었다. 당내 분란 요소가 되고 있는 ‘정봉주 리스크’가 더 확산될지 아니면 정리 수순에 들어갈 것인지 정 전 의원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文 마케팅’ ‘깜짝 인물 영입 마케팅’까지…정책 실종

최근 총선 영입 인재들을 둘러싼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관련 정부의 부실 대응이 도마에 오르는 등 악재가 끊이지 않았던 민주당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하자 오랜만에 호재를 만난 듯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기생충’ 쾌거의 주역들이 다수 한국당 집권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보수 정권의 과오가 다시 부각됐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었다.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영화 ‘변호인’의 주연을 맡았다가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포함됐고 ‘기생충’의 투자배급사인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영화 ‘광해’와 ‘변호인’ 등에 투자했다는 이유로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201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0일 현안 관련 서면 브리핑에서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에 대해 한국당 집권 시절의 블랙리스트를 겨냥,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기본 가치로 세운 문재인 정부와 함께, 앞으로도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환경 개선과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기생충’의 쾌거에 발맞춰 문화·예술강국시대를 위한 총선 공약을 발표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지난 12일 ‘문화예술인 창의적 생산활동 지원 강화’, ‘국민 문화향유권 증진’, ‘영화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문화예술계에 ‘2024년까지 2조6774억원 지원’ 계획 등을 담은 공약을 발표했다. 

공약에는 프리랜서 예술인에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는 한국형 ‘엥떼르미땅’ 제도 도입도 포함됐다. 프랑스가 시행하고 있는 엥떼르미땅은 일정한 소득이 없는 문화예술인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해 창작활동을 돕는 제도다. 또 민주당은 국민 문화향유권 증진을 위해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조기 퇴근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한 달에 한 번은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모두 2.5일을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으로 우리의 문화 저력과 진가가 다시 확인됐다”면서 “민주당은 우리 문화 콘텐츠의 세계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모든 국민이 품격 있는 문화예술을 누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은 페이스북에 기생충 포스터를 패러디한 사진을 올리고 봉 감독의 장점을 가진 의원이 되겠다며 ‘봉준호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경기 안양 동안갑에 출마하는 권미혁 의원(비례대표)은 자신의 모습을 넣어 편집한 ‘기생충’ 포스터를 올리고 “한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봉준호 감독처럼 저도 안양과 국회의 역사를 새로 쓰는 ‘권테일’이라는 별명을 얻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인천 연수갑 재선에 도전하는 박찬대 의원은 ‘기생충’의 4관왕에 빗대 “국회의원 임기 4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상을 받아 4관왕”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은평을 재선에 도전하는 강병원 의원은 ‘기생충’ 포스터처럼 포즈를 취한 사진을 올리고 “영화가 보여준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는 한국을 넘어선 전 세계 정치의 숙제다”라며 “꼭 해결해 인간의 행복할 권리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야당 의원들도 가세해 ‘봉준호 마케팅’ 경쟁을 벌였다. 특히 봉 감독이 대구 출신이라는 점에 한국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인 대구를 중심으로 ‘봉준호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한국당 대구 달서병 당협위원장인 강효상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영화박물관을 설립해 영화를 문화예술 도시 대구의 아이콘으로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원용 한국당 대구 중·남구 예비후보는 봉준호 기념관을 건립하고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으며 대구 중·남구 한국당 배영식 예비후보는 봉 감독을 주제로 한 영화 거리, 옛집 복원, 동상 등을 약속했다. 

황태순 평론가,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 중요”

총선을 앞두고 정책 이슈보다 민주당의 청와대 출신 출마자들이 문재인 대통령 마케팅을 펼친다거나 여야가 ‘깜짝 인물 영입 마케팅’ 경쟁을 벌이고 여기에 더해 ‘봉준호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것은 민심 판단을 흐리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14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유권자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방법이 별로 많지 않다는 점에서 대통령 마케팅이나, 봉준호 기생충 마케팅 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선거를 앞둔 정당과 정치인의 숙명”이라며 “정치인들이 어떤 장난을 치는지 판단을 하고 표로 결정을 내리는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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