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 원인 ‘배터리’지목...삼성SDI, LG화학은 정면 반박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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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양호연 기자]지난해 발생한 에너지 저장 장치(ESS) 화재 사고 원인이 ‘배터리’라는 조사단의 발표에 해당 배터리 제조사 삼성SDI·LG화학이 정면 반박에 나섰다. 여기에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지난 6일 ESS 설비의 배터리 충전율을 80~90%로 제한하는 내용의 ‘ESS 추가 안전 대책’을 내놓으면서 사고 원인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가열될 조짐이다. 현재 배터리사는 ‘배터리가 ESS 화재와는 인과 관계가 없다’고 반박하는 반면 조사단은 원인 판단보다는 추정이라는 용어를 썼고, 재발 방지에 주된 목적이 있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조사단 “원인 판단보다는 ‘추정’이라는 용어 사용...주된 목적은 재발 방지”
제조사 “배터리가 ESS 화재와는 인과 관계 없어”...발표에 추가 손실 우려



ESS는 2017년 8월부터 현재까지 총 28건의 화재가 발생하면서 판매가 거의 중단된 상태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전력 계통(Grid Energy Storage)’에 저장했다가 전기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공급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시스템이다. 지난해 6월 민관합동 ESS화재사고원인조사위원회 결과 발표 이후에도 5건이나 사고가 계속되면서 시장이 위축된 바 있다.

1차 조사위는 배터리 자체의 결함보다는 보호·운영·관리상의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고 발표하면서도 정작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지난달 열린 2차 조사위에서 일부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 제조상 결함을 지목하면서, 제조사 등의 배터리 업계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당시 조사 대상인 5건의 ESS 화재 중 LG화학의 배터리가 탑재된 화재가 3건, 삼성SDI의 배터리가 탑재된 화재가 2건이었던 만큼 LG화학과 삼성SDI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2차 조사위가 일부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 제조상 결함을 지목한 것을 두고 당시 두 제조사는 화재가 난 ESS를 해체 해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화재가 발생하는 다양한 환경의 실험을 내놓으며 화재 원인을 배터리로 특정할 수 없다고 반박하는 등 적극 소명에 나섰다.

“운영 방식, 이상 결합 추정”

숱한 논란 끝에 조사위는 지난 6일 브리핑을 통해 화재 사고 원인을 ‘배터리’로 추정, 결론 냈다. 김재철 ESS 화재 사고 조사단장(숭실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은 해당 브리핑을 통해 배터리의 높은 충전율 조건, 거의 95% 이상 등 조건 이상으로 운영하는 배터리 운영 방식과 배터리 이상 현상이 결합해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차후 충전율을 낮춰 운전 혹은 배터리 유지·관리를 좀 더 강화하면 화재 예방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했다. 김 단장은 “충남 예산·경북 군위·경남 김해·강원 평창·경남 하동 등 지난해 8월 이후 ESS에서 불이 난 전국 사업장 5곳의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 경남 하동을 제외한 나머지 4곳은 배터리가 발화 지점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조사단에 따르면 4곳 중 경남 김해·강원 평창은 삼성SDI 배터리를, 충남 예산·경북 군위는 LG화학을 사용했으며, 배터리가 아닌 다른 이유로 불이 난 경남 하동은 LG화학 배터리를 사용했다.

조사단은 사고 현장의 배터리 잔해물, 배터리 및 시스템 운영 기록, 발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는 CCTV(폐쇄회로) 영상 등을 조사했다. 또한 다 타버린 사고 현장의 배터리 대신, 비슷한 시기에 인근에 설치된 같은 모델의 배터리를 회수해 충·방전을 거듭하며 실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비슷하거나 같은 사업장의 배터리에서 발화 지점과 유사하게 전압 편차가 크게 나타났고, 시스템 운영 기록에 저전압, 이상 고온, 랙 전압 불균형 현상 등이 기록됐으며 인근 사업장 배터리에서 양극판 접힘 현상이 나타났고, 구리 성분이 검출된 점(이상 경남 김해·강원 평창) 등을 밝혔다.

“발화 위험성 없다”

이와 관련해 경남 김해·강원 평창에 쓰인 배터리를 제조한 삼성SDI는 즉시 설명 자료를 내 반박했다. “조사단이 조사해 발표한 배터리는 사고 현장이 아닌 다른 곳의 배터리”라면서 “동일한 배터리가 적용된 비슷한 사업장에서도 화재가 발생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큰 전압 편차는 배터리의 화재 발생 조건이 아니고 양극판 접힘 현상은 배터리 제조 공정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현상으로 용량 저하를 일으킬 수는 있으나 화재를 일으키는 요인은 아니다”라며 구리 성분 검출에 대해서는 “음극 기재의 성분일 뿐 이물질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LG화학도 충남 예산·경북 군위 관련 조사단의 지적(현장 배터리에서 내부 발화 시 나타나는 용융 흔적이 발견됐고 인근 사업장 배터리에서 일부 파편이 양극판에 점착돼 있었고, 배터리 분리막에 리튬 석출물이 형성돼 있던 점)에 반박하는 입장문을 냈다.

LG화학은 “배터리 외에 다른 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그 불이 배터리로 전이돼 용융 흔적이 생길 수 있다”며 “일부 파편이 양극판에 점착돼 저전압을 유발할 수는 있으나 LG화학의 SRS 분리막을 관통해 발화로 이어질 위험성은 없다”고 밝혔다. 또한 “리튬 석출물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물질이며 자체 시험에서도 이 물질이 배터리 발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처벌 계획은 없어”

이 같은 제조사의 반박 발표에 조사단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모양새다. 김 단장은 6일 브리핑에서 삼성SDI·LG화학이 조사단은 사고 현장이 아닌 다른 사업장의 배터리로 조사했을 뿐이라는 내용의 반박 자료를 낸 점에 대해 “타버린 배터리를 분석해봤자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며 “(사고 현장의 것이 아닌) 다른 사업장의 배터리를 바탕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어 “삼성SDI·LG화학의 이의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단도 (다른 사업장의 배터리를 바탕으로 조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원인 판단보다는 추정이라는 용어를 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점이 이번 조사의 주된 목적이라는 뜻을 밝혔다. 이후 김 단장은 한 언론을 통해 “(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반박하는 삼성SDI·LG화학의 주장은) 여러 설비로 구성돼있는 ESS 시설 전체가 아닌, 자사 배터리 등 일부 부분을 바탕으로 시험한 결과에 근거한 것으로 (해명이 필요한) 그들의 입장일 뿐”이라며 “배터리 제조사라면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고 보며, 이번 조사 결과와 관련해 삼성SDI·LG화학을 처벌하는 등 책임을 지도록 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편, 이번 조사단의 발표에 두 회사가 적극적인 반박에 나선 점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번 결과로 인한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양사는 지난해에만 화재 사업주 보상 및 충당금 등의 명목으로 6000억 원 가량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적 손실 등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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