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미국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올랐다. 공화당이야 트럼프가 압도적이니 볼 것도 없지만, 민주당 경선은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이어지면서 구경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끝난 시점에서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와 중도 성향이지만 성소수자인 피터 부테제지가 선두를 형성하고 있다. 진보의 아이콘 엘리자베스 워런은 몰락하고 있고, 경선 시작 전에는 여론조사 1등을 달리던 유력후보 조 바이든도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민주당은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선거결과 집계를 못해 결과 발표를 못하는 대형사고를 쳤다. 시작부터 망신을 당하면서 민주당원들은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끌어내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중이다.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부테제지나 클로버샤, 블룸버그와 같은 중도 성향 후보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는 것이다.

이제 승부는 민주당의 정통 노선인 클린턴-오바마와 결을 같이하는 바이든에게 달렸다. 민주당이 승리의 기회를 엿보려면 바이든이 빨리 회복하거나, 안 될 것 같으면 빠져주면서 다른 중도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의 나이는 77세다. 바이든은 마지막 도전일 것이 분명한 이번 대선을 이토록 허무하게 끝내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지막까지 역전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경선을 완주하는 것이다.

바이든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중도 후보는 분열하고 사회주의자인 샌더스가 후보가 되어 당을 접수할 것이다. 민주당 주류에겐 악몽같은 일인데, 심지어 샌더스가 트럼프를 이길 가능성은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가 될 가능성보다 높지 않다. 트럼프는 재선 대통령이 될 것이고 미국은 지금보다도 더 이상한 나라가 될 것이다.

바이든이 마지막 승부에 매달릴지 여부는 3월에 결정될 것이다. 그때도 바이든이 선두권으로 치고 나오지 못한다면 아마 민주당 주류들은 하나같이 들고 일어나 바이든을 압박할 것이다. 노욕을 버리고 당과 나라를 생각하라고. 물러나라고. 트럼프 이후로 미국정치가 가볍고 천박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고풍스러운 정치인인 바이든이라면 품위 있게 마무리하는 법을 알지 않을까. 바이든은 경선 레이스에서 장엄한 최후를 맞는다면 트럼프의 등장으로 격이 한없이 추락 중인 미국정치도 과거의 품위 있는 정치의 향수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떠날 때를 아는 것은 어렵고 떠날 준비가 완벽하게 된 사람을 만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픈 욕심이 있기에 ‘유종의 미’라는 말은 의미가 있다. 떠날 용기를 내는 것이 어렵기에 ‘박수 칠 때 떠나라’라는 문장은 울림이 있다.

바른미래당과 대안신당, 민주평화당의 통합 논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두 사람,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를 보는 심정은 그래서 애잔하다. 둘은 정치 영역에서 해 볼 것은 다 해 본 정치인들이다.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 당대표, 대통령 후보로 한국 정치의 한 시대를 종횡했다.

그랬던 두 사람이 시원하게 통합을 하고 힘을 합쳐도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운 정치 집단의 길을 막고 자신들의 마지막 승부를 고집하고 있다. 이제 와서 용기를 내서 물러난다고 칭송받을 시기도 지났다. 이미 두 사람의 이름에는 오명이 붙는 중이다. 서운할 수도 있지만 인심이 그렇다. 두 사람 덕에 애꿎은 한국정치가 또 한 번 국민들의 끌탕을 불러오며 낯부끄럽게 되었다. 한국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정치 지도자들이 품위 있게 물러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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