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걸음 내딛었지만 원내대표 위상 한계


172석이라는 거대 여당에 맞서 원구성을 마친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큰 홍역을 치뤘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와 원구성 합의 과정 속에 드러난 오락가락 행보로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특히 합리적이고 온화한 이미지가 여당과 협상과정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소수 야당으로 ‘투사의 이미지’가 필요한데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원구성 합의를 하면서 원 원내대표가 실익을 챙겼다는 호평 역시 동시에 받았다. 쇠고기 국정조사 연장, 법사위위원장 사수하고 가축법 개정 합의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 원내대표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안을 전망이다. 여당에서 대폭적으로 양보했다는 평이 나오면서 향후 제기될 현안에서 거대 여당으로부터 계속 주도권을 이어갈 수 있을지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여당과 원구성 합의를 통해 원혜영 원내대표의 ‘벼랑 끝 전술’이 통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국회가 가축법개정특위까지 만들었지만 여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흐지부지됐던 가축법 개정 논의를 마무리하고 국민의 광우병 공포증을 완화시킬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공룡 여당만난 원 원내대표, ‘고군분투’

또한 국회에서 발의되는 법안관련 ‘입출구’ 역할을 하는 법사위원장직을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몫으로 챙겨왔다는 점 역시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원 원내대표실에서는 국회 상임위에 상설 소위원회를 전면 도입키로 한 점 역시 원 원내대표의 제안이 반영된 부분이다. 이는 소수 야당이 상임위 운영과정에서 집권 여당에 밀리지 않고 피감기관을 견제할 수 있는 효과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원 원내대표는 원구성 합의 전반에 당안팎으로부터 수모를 겪는 사건이 터지면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지난 11일 국회의장이 배석한 자리에서 원 원내대표는 홍준표 원내대표, 권선택 자유선진당 3당 원내대표와 원구성 합의문에 사인을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합의문이 백지화되면서 원 원내대표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합의 내용도 문제가 됐다. 내용중 ‘13일까지 원구성 협상을 마무리하고 한승수 총리 국정조사 불출석에 대한 정부 여당의 유감을 요구한다’는 내용을 제외한 민주당이 전리품이 전혀 없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의총장에서 ‘너무 성급한 합의였다’, ‘민주당이 얻은 게 뭐냐’고 원 원내대표를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급기야 원 원내대표는 “합의 시점과 내용 등 세밀한 전략적 판단이 부족했던 것에 대해 의원들에게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이고 전날 합의문을 백지화시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나라당에서도 ‘전령사에 불과하다’며 공격했다.

소수 여당의 원내 대표로서 거대 여당을 상대하는 원 원내대표의 정치적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겨레 민주당-통추 출신
신념의 정치 펼친다

원 원내대표의 투사 이미지 부재는 사실 외모에서 기인된 측면이 크다. 온화한 얼굴에 합리적 성향까지 겹치면서 집권 여당으로부터 하나라도 더 빼앗아 와야 하는 야당 원내대표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원 원내대표의 이력을 보면 평탄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경기 부천에서 태어나 서울 경복고를 졸업한 원 원내대표는 1971년 서울대 역사학과를 입학했다. 그러나 긴급조치세대로서 재학시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해 두 번이나 투옥된 경험을 갖고 있다. 원 원내대표는 4번의 제적과 복학 끝에 25년만에 졸업장을 받아냈다.

정계에 진출하기 전에는 식품회사인 풀무원을 창립해 유기농 제품을 국내에 최초로 판매했다. 압구정동에 가게를 내고 유기농 직판장을 낸 것이 오늘날 풀무원의 시초였다. 이후 원 원내대표는 1988년 한겨례 민주당 창당에 참여해 정계에 입문했다. 그가 한겨레 민주당에 참여한 것은 1987년 6월 항쟁이후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분열로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줬기 때문에 대안 정당을 건설하기위한 일환이었다. 당시 고 제정구 전 의원을 비롯해 유인태 전 의원, 김부겸 의원 등이 함께 했다.

그후 원 원내대표는 민주당에 입당해 1992년 경기 부천 오정에서 제 1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민주당에서 원내부총무, 기획실 실장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국에서 돌아와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국민회의를 창당하자 그는 국민회의에 합류를 거부하고 야권 분열 반대 및 지역주의 극복을 기치로 국민통합추진회의(이하 통추)를 결성했다. 통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김원기 전 국회의장, 박석무 전 의원, 김원웅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둔 통추 회원들은 논란 끝에 국민회의에 합류했고 원 원내대표는 1998년 민선 부천시장(2, 3기)에 당선해 6년 동안 부천시장으로 활약했다.

2004년에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 부천 오정에서 나와 뱃지를 달아 18대 총선까지 3선의 중진급 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나 80여석의 소수 야당으로 원 원내대표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 않다. 무엇보다 당내 강경파와 실용파 분화와 당밖의 거대 여당의 존재만으로 원 원내대표의 어깨는 무거워보인다. 합리적이고 온화한 원 원내내표가 과거 투사 이력을 십분 활용해 거여 정국의 험난한 파고를 넘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원혜영 프로필
▶1951년 경기 부천생
▶경복고 졸
▶서울대 역사교육과
▶풀무원식풍 창업
▶민주당 원내부총무
▶국민통합추진회의 대변인
▶부천시장(민선 2, 3기)
▶14·17대·18대 국회의원(3선)
▶통합민주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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