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많은 정치인이 ‘미래’ 이미지를 승부수로 여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안철수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도 그랬다. 박 전 대통령은 연설문, 발언에서 유난히 미래를 많이 사용했다. 그녀는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약칭으로 미래연합을 사용했다.

대통령에 당선했던 2010년경부터는 미래희망포럼으로 지지층이 몰려들었다. 시·군·구 단위까지도 지부가 결성됐다. 국가미래연구원은 박 전 대통령 싱크탱크로 통했다. 이곳에서 활동했던 다수 인사들이 박근혜 정부 요직에 진출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미래를 상징하게 됐다. 그녀는 MB정권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2012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국민들이 박 전 대통령의 미래 이미지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구축한 미래는 허상에 불과했다. 아무 내용이 없었다. 퇴행적 권위주의와 권력의 사유화 끝에 그녀는 몰락해 갔다.

안 창준위원장도 미래를 상징했다. 2010년경 삼포세대란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 즉 빈곤한 청년들이 대거 등장했다. 여기에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한 오포세대, 경력,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세대도 등장했다. 기존 정치권 불신과 맞물리면서 안 창준위원장은 이들을 대변할 미래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그는 2012년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깔끔하지 못한 단일화 협상, 당시 문재인 후보 지원과정, 투표 당일 출국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2016년 총선에서 부활했다. 갓 창당한 국민의당이 38석을 얻는 기적을 일궜다. 2000년대 이후 유일하게 신당 창당으로 교섭단체를 확보했다. 서툰 정치 행보에도 그의 미래 가치를 높게 산 결과다.

그의 몰락은 지난 대선에서 시작됐다. 1강(민주당 문재인 후보) 2중(국민의당 안철수, 한국당 홍준표) 구도에서 안 창준위원장은 미래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촛불을 대표하던 문 후보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홍 후보와 단일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를 지지하던 젊은 층, 호남의 이탈을 초래한 것이다. 바른미래당 창당, 그리고 최근 결별 과정에서도 안 창준위원장의 지지기반은 약화됐다.

‘미래’를 잃은 박 전 대통령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미래통합당이 출범했지만 ‘도로 새누리당’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강경보수는 우리공화당, 홍문종 신당, 자유통일당(김문수-전광훈) 등 독자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탄핵 인정을 기치로 내걸었던 유승민 개혁보수는 끝내 좌초됐다. 총선 전망도 아직까진 밝지 않다.

바른미래당은 안 창준위원장 측의 주장으로 ‘미래’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약칭으로 ‘미래당’을 쓰려고 했다가 우리미래당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안 창준위원장은 우여곡절 끝에 국민의당을 다시 사용하기로 했지만 총선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예상 지지율은 비례대표 배분 경계선을 오가고 있다. 국민들은 그에게서 과거처럼 미래를 떠올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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