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본가에서 시어머니가 다녀 갈 적마다 선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이 봉건 시대도 아닌데 아들을 낳아야 여자구실을 한다고 닦달 하다시피 하는 시어머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혼한 지 이제 겨우3년, 아직 79.2㎡(24평)짜리 아파트 월부금도 다 갚지 못했는데 애기가 뭐 그렇게 급한 일인지 선희는 도무지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선희는 아침 열시가 다 되도록 설거지도 하지 않고 고양이 낯짝만 한 작은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서 시어머니 일을 되생각해내고 있을 때였다.
“따르르릉”
전화벨이 유난히도 요란스럽게 선희의 신경을 돋우었다.
“여보세요. 대치동인데요.”
“아, 거기 차선희씨 댁인가요?”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시간에 참으로 뜻밖에 차선희라는 자기의 이름을 불리운 그녀는 야릇한 기분이었다.
“제가 선흽니다만....”

선희가 말끝을 흐리자 사나이는 금방 다급하게 되받았다.
“선희씨가 맞구먼. 선희씨 나야 나. 박민수, 민수란 말이야.”
“어머! 민수씨가....”

그녀는 너무 뜻밖의 사람이라 가슴만 콩콩 뛰고 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박민수. 그 이름을 어찌 선희가 잊을 수 있을까? 그는 아득한 옛날만 같던 3년 전의 애인이었다. 대학 미팅에서 만난 그와 4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선희는 모든 것을 다 받쳤다. 그러나 고아나 다름없이 자란 그녀를 민수의 부모는 받아주지 않았다. 선희는 민수를 잃느니 죽음을 택하려고 까지 생각 했으나 그러지를 못했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중매결혼을 해 지금 남편인 최두호와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결혼한 이후 하루도 박민수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증오와 그리움이 범벅된 표현하기 어려운 그녀의 감정은 때론 그를 죽이고 싶기도 했다. 그러한 박민수가 뜻밖에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우리 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몇년만에 전화로 만난 옛 애인에게 하는 인사치고는 참으로 멋없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웃었다. 아니 남편 최두호의 모습이 얼른 떠올라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민수가 자기를 사이에 도고 어색하게 만나는 장면을 번개처럼 떠올려 보았다. 소름끼치는 일이 었다. 아무리 사람 좋은 최두호 지만 그를 그냥 살려두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이후 두 사람은 남모르는 데이트를 갖기 시작했다. 결혼 생활 3년 뒤에 다시 만난 옛 애인은 그전의 그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와 만나는 회수가 늘어 갈수록 그녀는 남편에 대한 죄책감이 죽순처럼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남편 이외의 남자 품에 안긴다는 짜릿한 기분과 함께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배신자를 죽이고 싶은 심정도 때로는 억누를 수가 없었다.
선희는 이런 착잡한 심정으로 밀회를 즐기면서 남편이 알가 봐 늘 조바심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든 어느 일요일이었다. 선희가 혼자 외출 하려고 옷을 차려입고 나왔다. 선희의 옷 차림을 유심히 보고 있던 최두호가 물었다.
“당신 그 푸른 장미 무늬 스카프는 못 보던 건데....나는 사준 기억이 없는데...”
선희는 가슴이 뜨끔했다. 그것은 그저께 박민수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이거...저어, 누가 사준거야.”

그녀는 우물쭈물 그 자리를 모면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날이후 선희는 아무래도 남편이 눈치를 챈것 같아 불장난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남편과의 행복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 생활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선희가 그 말을 민수에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생기고 말았다.

박민수가 죽은 것이다. 그것도 이상하게 선희네 아파트 단지 내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고 죽은 시체로 아침에 발견 된 것이었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차선희가 강력한 요의자로 떠올랐다. 시체가 선희의 아파트 부근이라는 것 말고도 ,박민수의 양복에서 선희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 유부녀의 밀회라는 것도 충분한 살인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선희는 범행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 잡아떼기만 할 겁니까? 이걸 좀 봐요. 이게 누구 겁니까? 이것이 죽은 뒤 박민수의 목을 다시 감았던 흉깁니다. 이게 누구 거죠?”

형사는 푸른 장미 무늬의 스카프를 내 놓았다. 그것은 그녀가 박민수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었다. 그것을 본 선희가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한참 만에 체념 한 듯 울부짖었다.

“그래요. 내가 죽였어요. 내가 나쁜 년이어요. 여보 미안해요”

 
Q. 정말 차선희가 범인일까요? 왜 그녀는 갑자기 범행을 시인 했 을까요?
 
 



 
 
A. 스카프가 박민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남편 최두호가 죽인 뒤 일부러 선희에게 혐의를를 두기 위해 가져다 둔 것이다. 
 
선희는 남편의 범행임을 알고 그를 살리기 위해 거짓 자백한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