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위해 헤엄쳐야 하는 ‘인간상어’의 꿈

베이징 국립 수상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50m S3 결승전에서 민병언이 코치진의 도움을 받아 입수 하고 있다.

상어는 물고기임에도 몸에 부레(공기주머니)가 없다.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아 버려 잠자는 순간까지 헤엄을 쳐야하는 고된 팔자를 타고난 것이다. 2008 베이징 패럴림픽 수영 은메달리스트 민병언(23·서울시장애인수영연맹)은 그런 의미에서 상어의 고된 생을 닮았다.

희귀병 가운데도 유독 희귀한 유전질환을 앓는 그에게 있어 수영은 살기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숙제와도 같다. ‘장애인 수영계의 박태환’이라고 불리는 민병언은 패럴림픽에서 최초로 수영 종목 메달을 조국에 선사했지만 그의 역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달 전국체전 재패를 넘어 2012년 런던올림픽 금빛 환희를 꿈꾸는 그를 만났다.

지난달 23일 이명박 대통령은 13회 베이징 패럴림픽에 참가한 선수·임원단 210여명 전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지난달 18일 폐막식이 치러진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금메달 10개, 은메달 8개, 동메달 13개로 종합 13위를 차지했다. 이날 오찬은 목표했던 것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한 대표팀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민병언 역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따낸 메달리스트로서 당당히 이 자리에 참석했다.

“사람들이 200명이 넘게 왔는데 모두에게 테이블을 내줄 만큼 규모가 어마어마했어요. 나중에 퇴장할 때 대통령께서 일일이 악수를 청하시더라고요. 개인적인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가슴이 떨렸습니다.”


세계신기록 세우고도 은메달

‘장애인 수영계의 박태환’이라고 불리는 그는 베이징 패럴림픽 열흘째인 지난달 15일 남자 배영 50m S3(장애 3등급) 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참가 이후 수영 종목에서 대한민국에 메달을 안긴 선수는 민병언이 유일하다. 기록은 44초80. 반나절 전 자신이 세운 세계기록(45초85)보다도 빨랐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끝났을 때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 경기장을 빠져나가며 끝내 수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금메달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달려온 지난 5개월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제 끝났다’는 허탈감이 물밀 듯이 그를 덮쳤다.

민병언은 중국 베이징 워터큐브에서 열린 남자 배영 50m 예선에서 세계신기록(45초85)을 세웠다. 자신이 2006년 세운 세계신기록(49초94)을 올림픽 예선에서 무려 4초나 앞당긴 것이다. 손만 뻗으면 쥘 수 있을 것 같았던 올림픽 금메달.

그러나 같은 날 저녁 열린 결승에서 중국의 두지안핑에게 회심의 역전을 허용했고 결국 금메달의 꿈은 4년 뒤로 미뤄졌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잖아요. 좀 멀찍이 차이 났으면 덜 서운했을 텐데. 그만큼 열심히 준비해온 경기였으니까 남는 건 ‘아쉬움’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시상대에 올라서도 두 번째로 걸린 태극기를 보니까 또 울컥 눈물이 나더군요.”

스물셋 청년의 올림픽 처녀출전 ‘아쉬움’. 하지만 민병언은 시상대에서 내려온 그날로 모두 잊었다. 더 큰 도전이 남아있고 그만큼의 성과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쉽고 속상한 기억은 그날 모두 묻었어요. 제가 가진 온 힘을 다한 경기였기 때문에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최고기록을 4초나 앞당겼다는데 더 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훈련장 걱정 안했으면…”

한국에 돌아온 뒤 그는 쉴 틈이 없었다. 수술로 입원한 이모부를 병문안하기 위해 곧장 지방으로 내려간 것. 병석에서 회복중인 이모님 부부에게 민병언은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조카였다.

“우리 집안 스타인 셈이죠. 올림픽 첫 출전에 따온 값진 메달이니까요. 병원에서도 이모부님이 많이 기뻐하셨어요.”

5개월에 걸친 합숙과 맹훈련으로 지쳤을 법도 한데. 그는 지난 금요일부터 다시 훈련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다만 연습할 전용 레인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 그게 고민이다. 민병언이 소속된 강북구청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전용레인이 있었지만 대표팀 합숙을 하는 과정에서 없어졌다.

“아직까지 구청에서 레인을 다시 잡아준다거나 하는 말은 없었어요. 이번 주 안으로 훈련을 다시 시작해야하는데.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용 수영장이다보니 혼자 레인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는 게 쉽지가 않네요. 잘 모르는 분들은 ‘왜 혼자 자리 다 차지하냐’고 따지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도 민병언은 사정이 좋은 편이다. 장애인 수영계의 간판스타로 강북구 수영팀에 소속된 그는 전담 코치진의 지도를 받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훈련장 섭외부터 지도코치 고용까지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대표팀 선수라고 해도 국제대회 때나 합숙·전지훈련을 할 수 있어요. 평소엔 모두 개인훈련으로 기량을 키울 수밖에 없죠. 저도 2004년까지 혼자서 훈련을 하다 2006년에야 지금의 이애정 코치님을 만나 제대로 된 지도를 받게 됐죠. 일부 선수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운동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길 정도입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훈련장이 없어 연습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현실. 대한민국 장애인 스포츠의 씁쓸한 오늘이다.


물에 얼굴도 못 담갔던 ‘마린보이’

그가 수영을 선택한 것은 필연이었다. ‘샤르코-마리-투스(Charco-Marie-Tooth)’. 우리말로 ‘감각신경장애증’으로 불리는 이 병은 민병언을 헤엄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인간 상어’로 만들었다.

이 병은 뇌의 명령이 신경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근육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병이다. 그의 팔목과 무릎 아래 부분은 다른 장애인과 비교해도 유난히 가늘다. 팔목과 발의 근력이 현저히 떨어져 물을 손으로 잡아채 뒤로 밀어낼 수도 없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엔 조금씩 발을 끄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만큼 근육이 약해졌다. 당장 생명이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력이 사라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수영이었다.

“원래 바닷가 같은데서 물장구치는 건 좋아했어요. 그런데 도저히 물 속에 얼굴을 담그는 건 못하겠더라고요. ‘물 공포증’이 있었던 거죠. 초등학교 때 재활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억지로 수영장에 다닌 적이 있어요. 하지만 물 공포증을 이겨내지 못해 한 달 만에 그만뒀었죠.”

그러는 동안 민병언의 몸은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근육이 약해져 팔다리는 눈에 띄게 가늘어졌고 결국 발이 마비 돼 휠체어에 앉아야만 했다. 2003년 대학(경민대 인터넷정보학과)에 들어간 뒤 그는 큰 결심을 했다. 스스로 수영장 문턱을 넘어선 것. 그렇지만 어린시절 그를 괴롭힌 물 공포증이 한순간에 사라질리 없었다.

“2004년 초에 2개월 동안 개인적으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물이 얼굴에 닿는 건 여전히 무서웠지만 그냥 이겨냈죠. 연습밖에 답이 없었어요. 조금씩 영법이 몸에 익을수록 물 속이 편해지기 시작하더군요. 어떻게 이겨냈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열심히 했다’라고 밖에 대답 못할 것 같아요.”

첫 올림픽 출전에 세계신기록과 메달까지 거머쥔 민병언은 가장 당연한 격언을 마음속에 새겼다. ‘하면 된다’. 당연하고 흔한 한마디지만 이번 베이징 패럴림픽을 치른 그에게 이 말은 좌우명이 됐다.

“전에는 좌우명 같은 게 따로 없었는데 이번 올림픽 치르면서 몸으로 느꼈어요. ‘하면 된다’.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곤란한 상황이든 그저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된 겁니다. 물론 이 자리에 오기까지 팀 동료들과 코칭스텝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감히 꿈도 못 꿀 기적이죠.”


“‘하면 된다’ 가슴에 새겼죠”

10월 6일부터 전라도 광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서울대표로 출전하는 민병언은 사실상 체전 우승도 예약한 상태다. 상대적으로 그의 기량을 따라올 만한 선수가 아직 없는 까닭이다.

“섣불리 우승을 점치는 건 부담스럽지만 이번 올림픽으로 자신감이 많이 붙었어요. 체전에서 좋은 성적 거둘 수 있도록 많이 지켜봐주시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자신을 발굴해 대표팀으로까지 이끌어준 강북구 수영팀 김창규 감독과 동료들에게 무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번엔 은빛이었지만 4년 뒤에는 ‘금빛역영’을 펼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목표는 당연히 런던 올림픽 금메달이죠. 이번 결승에서 맞붙은 중국의 두지안핑 선수와 꼭 다시 맞붙어 이기고 싶습니다. 이번엔 태극기가 두 번째로 올라갔지만 런던에서는 반드시 애국가를 울리는 게 제 목표고 희망입니다.”

여행과 풍경사진 찍기를 즐긴다는 민병언. 20대 초반의 여느 젊은이처럼 미니홈피 관리에 열을 올리기도 하는 그이지만 장래희망 만큼은 상당히 비장하다.

“현역에서 은퇴하게 된다면 정말 좋은 기량을 갖고 있는 후배를 꼭 한 명만 키워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고 싶어요. 제가 갖고 있는 경기 노하우나 훈련 방법 같은 걸 고스란히 전해줄 후계자인 셈이죠. 지도자가 돼 팀을 이끌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단 한명이라도 제대로된 선수를 키우고 은퇴하는 게 제 꿈입니다.”

치열한 취재 열기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다. 수억원에 달하는 두둑한 포상금도 없다. 하지만 ‘장애인 수영계의 박태환’ ‘패럴림픽의 마린보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베이징 패럴림픽 수영영웅 민병언을 모두 설명하기란 부족하기만 하다.


#민병언 프로필

▶출생 : 1985년 7월 30일
▶직업 : 수영선수
▶소속 : 서울시장애인수영연맹
▶취미 : 사진촬영, 음악감상
▶가족관계 : 부모님, 누나
▶장애등급 : 지체장애 3급

수상내역
▶2008 제13회 베이징 장애인올림픽대회
수영 남자 50m 배영 S3 은메달
▶제13회 베이징 장애인올림픽대회
수영 남자 50m 자유형 S3 동메달
▶2007 오사카 IPC 페럴림픽 50m 자유형 1위
▶오사카 IPC 페럴림픽 50m 배영 1위
▶2006 50m 배영, S3등급
세계신기록 수립(49.9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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