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하의 풍경에 떨림은 없었다. 황토색으로 가득 찬 대지, 드문드문 나타나는 빌딩숲. 건조하고 지루한 풍경이 전부였다. 그리고 단 하루의 도하여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거대한 구멍에 빠졌다 나온 것 같은 짜릿한 전율이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는 내내 식을 줄 몰랐다. 내가 중동 사람이었다면 조금은 평범하게 보였을까? “너를 보는 순간 Fantasy!”

매 시장과 병원

일명 ‘매 시장’을 찾아갔다. 초원, 사막 등에서 매를 길러 사냥을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매를 보통 물건처럼 사고파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 터라 흥미로운  곳이었다. 매는 아랍인들에게 무척 특별한 동물이자 친구로 여긴다고 한다. 과거 이곳 사람들은 사막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매를 길들이고 토끼와 비둘기 등을 사냥해서 고기를 얻었다. 매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결국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됐고, 자연스럽게 매는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다. 이런 전통 때문에 현대의 아랍인들은 고유한 전통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매를 기르고 있다. 그만큼 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데, 그 모습은 시장과 병원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매를 판매하는 한 가게에 들어서니 가게 안에는 크고 작은 매가 가지런히 앉아 있고, 함께 판매 중인 다양한 매 용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벽에는 매와 함께 찍은 유명인들의 사진도 잔뜩 걸려 있어 그들의 매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새삼 느낀다. 매를 판매한다는 것도,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매 전문병원이었다. 출입구에 매가 입장하는 전용 라인을 마련해 놓았고, 매 전용 의자와 저울, 채혈병 등의 여러 기구들이 기본으로 비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검사실, 입원실, 수술실 등의 각종 시설이 사람들을 치료하는 웬만한 종합병원 못지않게 갖춰져 있다. 한쪽에는 털이 빠졌을 때 갈아줄 깃털의 콜렉션이 명품숍의 값비싼 제품들처럼 도도한 모습으로 진열되어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매들의 가격과 주인들이다. 억대를 호가하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판매되는 매도 있다는 사실, 매 주인들은 대부분 전체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카타르 정통 혈통들과 귀족들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매를 기르는 것이 이곳에서는 자기 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인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상위 계층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취미로 그들만의 세계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바로 매다. 매와 함께 여행을 할 때는 매를 위한 별도의 비행기 좌석도 함께 구매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니, 잘생긴 매 한 마리를 들고 다니면 카타르 부자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올드 마켓, 수크 와키프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도하 시내를 이동하는 길은 갖가지 모양의 마천루와 고급스러운 쇼핑몰 사이를 끊임없이 지나치지만, 여행객들에게 더 좋은 볼거리는 역시나 그들의 일상과 문화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전통시장이다. 도하의 올드  마켓, 수크 와키프가 바로 그곳이다. 매 시장과 가까이에 위치한 수크 와키프는 도하에서 가장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한 작은 마을처럼 형성되어 있다. 태양을 피해 실내 공간으로 들어서면 빼곡하게 들어선 상점들이 줄을 지어 손님을 기다린다. 전통 수공예품을 비롯해 아랍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여러 장식품들, 그들의 식재료, 생활용품 등이 가득하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들거나 값비싼 향신료와 찻잎, 각종 약초들도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렇게 시장 안을 다니다보면 어느새 두 손에 아랍이 들려있다. 이따금씩, 전통복장을 입고 앉아 시샤물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어른들을 만날 수 있다. 카페와 식당에 들러 쉬어가는 것도 수크 와키프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인공 섬 ‘더 펄’

세계 최고 부국의 수도인 카타르의 도하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곳은 어디일까. 바다를 메워 만든 인공 섬 ‘The Pearl’을 꼽고 싶다. ‘혹시 이곳은 우주인들과 비밀스러운 왕래가 이루어지는 우주정거장은 아닐까’ 싶은 모습으로 둥근 원을 그린 채 바다 위에 떠 있는 더 펄은 세상의 명품과 사치품이 모두 모여 있는 공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바다 위를 가득 메운 호화스러운 요트는 이곳 주민들의 발이 되고, 빌딩마다 들어서 있는 명품 브랜드숍과 고급 레스토랑들은 그들의 흥미를 돋아줄 놀이터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기죽을 건 없다. 여행객으로 당당히 돌아봐도 괜찮은 곳이다. 가이드에게 예상 밖의 정보를 얻었다. 이곳의 집값이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서울의 아파트 가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게다가 렌트를 하는 집도 많아 잠시 휴가를 다녀갈 수도 있다는 얘기에 솔깃해졌던 곳. 더 펄의 아름다움을 정말 제대로 감상하려면 하늘에서 내려다봐야 한다. 도하를 오가는 하늘길, 창가 좌석을 앉아도 나쁘지 않은 이유다.  
 

 

사막 사파리투어

‘도하 여행의 꽃’이라고 주저 없이 꼽을 수 있는 최고의 액티비티. ‘도하에서 사막 사파리투어를 하지 않았다면 도하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없다’라는 주장을 감히 해보고 싶은 투어.

사파리투어는 원하는 시간과 기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오전에 시티투어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여유롭게 사막으로 향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사막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돌아오는 것. 그 시간에 맞게 투어 일정을 잡았다. 도로 위를 달리던 4x4 차량은 사막으로 진입하기에 앞서 타이어의 공기를 살짝 빼고 사막을 내달릴 준비를 한다. 어느새 몰려든 차량들이 줄을 지어 사막 위를 달리면서 속력을 점점 높여간다. 무려 120km/h를 오가는 속도로 모래 위를 달리던 차량은 내리막에서는 더 빠른 속도로 바닥을 향해 하강한다. 무려 60미터의 언덕. 모래가 이끄는 대로 차량은 휘청거리지만 현란한 손놀림과 발놀림으로 드라이버는 중심을 잡으며 완벽하게 그들의 서커스를 마무리한다. 차 안에 울려 퍼지던 비명은 사라지고 커다란 박수가 드라이버에게 전해진다.

 

투어의 절정은 더 없이 로맨틱하다. 사막과 바다의 절묘한 만남 앞에 새빨갛게 익은 둥근 태양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보아 온 태양 중에 가장 크고 둥근 태양이 조금씩 조금씩 마지막 퍼즐을 맞춰가던 순간. 세상의 모든 판타지가 눈앞에 한데 모였다.
사막은 더 이상 고난의 공간이 아니었다. 도하의 사막은 지금 여행객들의 환호성으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사막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목격한 그 순간, 카타르의 더위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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