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괴문서 작성자 추적

대선에서 상식과 순리가 통할까. 한동안 개점휴업에 들어갔던 한나라당이 이번엔 괴문서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한나라당 후보검증론이 단초가 된 것이다. 이 문서에는 박근혜 전한나라당대표와 그의 복심인 유승민 의원에 관한 내용으로 도배됐다.
기자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맞은편 엔빅스 빌딩에 위치한 박 전대표 캠프를 찾았을 때, 박 전대표는 이 괴문서와 관련해 불편했던 마음이 이미 진정된 듯한 분위기였다. 박 전대표의 선거캠프에서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유정복 의원은 “선거캠프 내부 사람들이 모두 다 모여 구체적인 논의는 아직 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박 전대표의 선거캠프는 다른 때와는 달리 상당히 분주한 모습이었다. 물론 외부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탓도 있겠지만 괴문서와 관련해 캠프내부로 걸려오는 전화도 상당했다. 이 때문에 각 부서마다 업무를 바삐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어보였다.

이날 박 전대표 캠프 진영에서 정무기능을 맡고 있고, 한나라당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을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유 의원은 괴문서에 적힌 확인되지 않은 박 전대표의 사생활 및 2002년 박 전대표의 평양 방문, 가족사 등의 내용에 대해 “전혀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의 얼굴은 다소 상기된 모습이었다. 좀처럼 말을 아끼면서도 그는 “아직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박 전대표는 이날 지방 일정 중에 괴문서와 관련,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박 전대표는 “대권주자들의 후보검증은 당연한 절차라는 얘기를 했다”는 전언이다.

<일요서울>은 괴문서를 보낸 이모(66)씨와 접촉은 시도했지만 오는 4월 재·보궐선거를 돕기 위한 선거운동 지원차 대전을 방문하고 있다며 취재기자와의 만남을 극구 사양했다. 그러나 이모씨는 기자와 15분여 동안 전화통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개인 신상을 공개했다. 그는 “박 전대표의 복심인 유승민 의원이 후보검증론을 강력하게 제기한 것은 한나라당내 갈등을 조장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괴문서를 보낸 곳은 주로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이명박 전시장, 박근혜, 손학규, 원희룡 의원 캠프사무실과 당 지도부인 강재섭 대표와 김형오 원내대표, 이상득 국회부의장, 나경원 대변인, 김정권, 박계동, 정형근 의원 의원실 등이다.

그는 국회수첩과 인터넷을 서핑하면서 한나라당내 대권주자 및 국회의원들의 의원실 주소를 파악했다고 한다.

괴문서를 발송한 이후 그는 국회의원측 6~7명으로부터 전화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 중 유일하게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 직접 이모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직접 문서를 쓴 것이냐”고 물었고, 이모씨는 “제가 직접 썼다”고 대답했고, 그 이후 “근거자료가 어디서 났느냐고 묻길래 지난 80년대 보도된 언론 기사가 머리에서 생각나서 쓴 것”이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정형근, 홍준표 의원실에서도 전화를 받았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여성 2명한테서도 연락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괴문서를 발송한 이모씨는 어떤 인물일까. <일요서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모씨의 고향은 평안북도 신의주다.

그는 4살 때 월남해 현재는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다. 출신학교 때문에 혹여 이명박 라인의 인물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고려대 대학원 국제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월남 당시 소대장을 한 적이 있다는 이모씨는 자민련에 소속되기 전, 국토통일원, 국가안보회의 북한담당 연구관을 지냈다.

그는 괴문서를 보내게 된 이유에 대해 “한나라당이 정권교체를 하기 위해선 서로 헐뜯고 공격하는 일은 없어야한다는 것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첫 번째도 정권교체, 두 번째도 정권교체, 세 번째도 정권교체”라며 “그것만을 바랄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각종 언론사에서 뒤에 배후세력이 있느냐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는 말을 하면서 “제 스스로 생각하고 펜을 잡고 쓴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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