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일병→홍 반장 →홍 원내대표→?


지난 9월 추경예산안 처리 무산으로 ‘사면초가’에 부딪혀 ‘사의’를 표명할 때까지 홍준표 원내 대표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당내 친이 직계진영에서는 12월 정기국회가 끝나면 홍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를 해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그로부터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현재 홍 원내대표의 위상은 오히려 높아졌다. 현안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에 안티를 걸거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특히 법조계 출신에 집권 여당 원내대표로 개각 단행시 ‘법무부장관 기용설’까지 나오면서 여야 공히 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하거나 정치 생명이 풍전등화인 당사자들은 홍 원내대표에게 ‘SOS’를 치고 있는 형편이다. 정기국회가 막바지에 다다르지만 당초 예상과는 달리 홍 원내대표가 ‘홍 일병’에서 ‘홍 반장’ 으로 다시 ‘홍 대표’로 위상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한나라당에 홍준표뿐이 보이질 않는다”

한 친이 직계 의원의 당내를 보는 진단이다. 최근 홍 원내대표의 정치적 행보가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종부세 처리 과정이다. 지난 17일 헌법재판소에서 종합부동산세 일부 위헌 판결로 종부세를 두고 여야 간 한판 대결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야당은 종부세 축소나 폐지 움직임에 사활을 걸고 막겠다고 공언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과 정부와의 절충안이 나올 경우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야당이 나서서 해야 할 투쟁을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홍준표 의원이 나서면서 김이 빠지는 형국이다.


‘홍준표’만 보인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1주택 장기보유의 기준을 3년 이상으로 검토하고 있는 정부안에 대해 “누가 3년을 장기보유로 보겠느냐”며 제동을 걸었다. 또한 당정이 최종적으로 종부세를 재산세에 통합하는 방안과 관련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더 나아가 양도세 인하 방안과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관련해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특히 이번 발언은 서민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강북출신에다 ‘강부자 정당’이라는 국민들의 눈총을 피하면서 야당의 비판까지 희석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냈다는 평가다.

11월초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공화당 매케인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될 당시 홍 원내대표의 화살은 청와대와 당 모두에게 향했다.

홍 원내대표는 6일 한 세미나에 참석해 미 대선 결과에 대해 “미국 보수가 무너진 것”이라며 “오바마가 좋아서 오바마를 선택한 것보다 미국 보수의 잘못된 행태의 결과가 매케인 패배로 나타났다”고 오바마의 승리로 보지 않았다.

나아가 국내 정치와 비교한 홍 원내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이 싫어서 이명박을 찍었지 이명박이 좋아서 찍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10년만에 집권한 한국보수가 탐욕스럽고 부패해진다면 5년 뒤 진보의 세상으로 갈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다음날인 7일에는 청와대를 향해 “정기국회가 끝나면 전면적 국정 쇄신을 하고 내년부터는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이 부자 나라, 부자 국민으로 가는 터전을 닦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홍 원내대표가 평소 주장해온 ‘연말 연초 여권 대개편론’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한때 청와대뿐만아니라 박희태 당 대표 역시 여권 대개편에 부정적인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에 굽히질 않는 홍준표식 정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홍 의원의 지칠 줄 모르는 여권 대개편 주장 탓으로 당 일각에서는 ‘법무부 장관’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가시질 않고 있다. 한때 연말 개편론이 소강상태에 빠졌을 당시에는 홍 원내대표가 ‘대안부재론’을 내세워 장관 행을 포기하고 차기 당대표로 선회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장관이건 당 대표이건 홍 원내대표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 있다.

홍 원내대표의 당내 위상을 알려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집권여당 원내대표에 검사 출신으로 법조 인맥이 탄탄한데다 법무부 장관으로 갈 수 있다는 소문은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으로 ‘의원직 상실’위기에 처한 여야 의원들의 민원의 대상이 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당내 H 의원으로 선거법 위반으로 금배지를 잃게 될 상황에 처하자 홍 원내대표실을 찾아가 ‘살려 달라’고 읍소를 한 것. 홍 원내대표는 사연을 듣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안심하고 있는 H 의원은 그러나 수도권 규제완화로 인해 사이가 벌어지면서 일이 꼬이게 됐다. 지방 의원과 수도권 의원이 갈등이 당내 퍼지자 지방의원 출신 H 의원이 ‘수도권 규제 완화’를 찬성하는 홍 원내대표를 향해 공식석상에서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홍 원내대표는 H 의원에 대해 무관심으로 돌아서면서 사실상 H 의원의 ‘의원직 상실’은 시간문제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홍준표식 정치 실험 성공 여부 ‘촉각’

홍 원내대표의 인기는 당내뿐만아니라 민주당도 불었다. 특히 김민석 최고에 대한 법정 구속영장이 떨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가 홍 원내대표에게 ‘정치인으로서 구속 영장은 너무 한 게 아니냐’고 구속영장 발부를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여야 간 원만한 대화를 통한 현안 처리를 바라는 홍 원내대표는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사단은 김 최고위원이 일으켰다. 지난 4일 한 인터뷰를 통해 ‘검찰은 정권의 개다’라고 비하 발언이 알려지면서 검찰을 격노케 만들었다. 당연히 홍 원내대표 ‘불구속 기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김 최고는 당에서 개별 인터뷰를 금지당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처럼 홍 원내대표의 위상 강화는 전방위적이다.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박근혜, 이상득, 정몽준, 이재오 4인방의 ‘조용한 행보’가 지속되는 한 홍 원내대표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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