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할 때는 관객의 감동과 찬사이다”

지난 11월 20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 29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배우 안성기와 김남길이 레드카렛을 밟고 있다.

영화배우 안성기는 국민스타이다. 영화제에 그가 서면 한국 영화배우들이 다 모인 것처럼 꽉 차 보인다. 그가 없으면 웬지 허전하고 썰렁하다. 그 만큼 안성기라는 배우가 한국 영화계에선 없어서는 안 될 거목인 셈이다. 톱스타가 아닌 배우로서 살아온 안성기의 성공비결을 알아본다.

안성기는 50대 중반의 나이지만 아역시절까지 합산하면 40여년의 연기생활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이다.

언제나 편한 이미지로 스크린에서 나이를 먹은 그를 보면, 그의 말대로 ‘배우 같지 않은 배우’가 느껴진다. 소탈한 인간미가 격식을 필요치 않게 만들고, 평범하게 생긴 남자의 분위기가 늘 만나는 친구로 느껴지게 한다.

그런 그에겐 5가지 성공비결을 있다.


화려함보다 겸손하다

첫 번째는 겸손하다.

안성기는 “다른 사람들이 겸손하다고 보는 나의 버릇은 선천성과 후천성 반반이다. 부모님이 언제나 그렇게 사셨다. 어머니는 별나시게 모든 일에서 가족이나 남들을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는 소박하고 인정 많은 분이다. 성장과정에서도 어른들 품안에서 연기생활을 하고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겸손’이 살아가는데 매우 소중한 덕목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게 된 것은 어른이 되어서부터다. 어릴 때는 습관적으로 남 앞에 예의 바르고 공손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잘 익은 곡식이 절로 머리를 숙인다는 생각을 하며 한층 언행에 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안성기는 누구에게나 겸손하다. 언제 어디에서든, 선배든 후배든, 잘 알고 있는 사람이든 처음 만난 사람이든지 건방지거나 교만하지 않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몸에 베여 있다.

좋은 친구사귀기로 유명하다는 안성기는 “오만하고 교만한 언행을 하는 사람을 가장 경계한다. 그런 사람과 부딪히면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든다. 그렇다고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겸손은 남의 오만까지 배려하는 여유가 따라야 한다. 진정한 겸손은 감정을 억누르고 남의 말과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지만 나도 성인군자는 아니다”고 말한다.


배려를 통해 자신을 낮춘다

두 번째는 배려의 미학을 알고 있다. 그는 화려한 영화배우로 인생을 살아가지만, 이면에 지닌 배려를 통해 선후배관계를 잘 이어가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안성기는 “요즘같이 이기적이고 각박한 시대의 대표적인 화두가 ‘배려’다. 힘이 있고 잘났다고 남을 업신여기고 깔보는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싶지 않다. 하지만 살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남의 어려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옳은 말이다. 나에게도 좌절과 방황의 시기가 있었고 그게 지금 생각하면 참 소중한 재산이고 경험이었다. 5살에 김지미 선배와 ‘황혼열차’로 데뷔해 철이 들면서 학교로 돌아갔는데 기초가 없어 성적은 바닥에서 헤맨 열등생이었다. 간신히 입학한 대학(외국어대)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했지만 그 나라가 망해 취직도 못하고 군복무후 몇 년간 백수로 방황할 때가 있었다. 이때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갖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출연과 돈 욕심 버리고 영화만 고집

세 번째는 성실하다. 그는 출연 작품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결코 겹치기 출연의 욕심을 내지 않고 살았다. 가정생활도 성실하다. 아들, 남편 , 아버지로서의 윤리와 책임을 지켜왔다.

그는 “부부 사이는 남들이 모른다. 살다보면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긴다. 그런데 부부싸움은 서로 칼날을 세우는데서 발생하는데 내가 워낙 두루뭉실하고 솜방망이라서 적수가 못된다. 잘 알겠지만 아내(오소영, 조각가)는 예민하고 섬세하고 매우 여성적이다. 두 아들이 모두 미국 유학중이다. 첫째(다빈)는 엄마를 닮아 올해 뉴욕에 있는 미술대에 입학해 그림을 전공하고 있고 둘째(필립)는 중3이다. 해마다 아이들이 두 차례 오고 우리가 한차례씩 미국 가서 함께 지낸다.”고 말했다.


나눔과 봉사로 행복찾아

네 번째 따뜻하다. 놀라운 것은 바쁜 틈에도 수많은 경조사를 직접 챙기고 유니세프등 사회 봉사활동에 정신적 물질적 시간적 헌신을 하고 있다. 나눔과 봉사정신을 가지고 있다.

안성기는 “16년째가 된다. 지난 봄 우간다까지 그 동안 9개국을 다녀왔다. 이젠 나의 필수 일과로 되어 시간이 나면 저절로 효자동에 있는 유니세프사무실로 발걸음이 간다. 나는 그 활동을 통해 건강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서 소중한가를 느끼고 또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해맑게 웃음이 피는 어린이들을 접하며 무한한 보람을 느낀다. 나의 작은 정성이 죽음 앞에서 신음하는 타민족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에 너무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섯 번째는 탁월한 연기다. 연기자로서의 실력이다. 좋은 연기자로 살아남는 첫째의 조건은 연기실력인데 그는 경쟁력이 뛰어나고 직업정신이 투철하다. 애정멜로, 코믹연기, 액션, 사극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보여주는 다양한 연기 변신은 타고난 소질보다 노력과 경륜에서 비롯된 것 들이다.


직업정신 투철한 배우

안성기는 “배역을 맡으면 출연이 끝날 때까지 그 인물에 함몰해 정신병자로 보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올인을 못해 후회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장호 감독의 <천재선언> 때 어쩌다 다른 작품 하나를 더 하게 되어 정성을 못다 쏟은 게 마음에 걸린다. 나는 천재도 아니고 탁월한 연기자라는 생각도 안한다. 그냥 직업에 철저하고 최선을 다하다보니 좋은 연기를 했다는 평가가 따르는 것 같다. 연기자로 매우 모자란 곳도 있다. 다른 배우처럼 저절로 눈물나오는 연기를 못한다. 슬픈 대목에 이르면 속으로 이까짓게 뭐 슬퍼냐는 생각이 치고나와 감정이 안 움직인다. 결국 약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대종상을 비롯해 영화평론가상 등을 수상했다. 그가 출연했던 작품마다 히트를 했고,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줬다.

안성기는 “상을 받을 때마다 매번 흥분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나의 아내다. 나는 덤덤한 느낌으로 상패나 트로피를 집에 갖다 놓으면 아내가 왜 기뻐하지 않느냐며 묻는다. 상 받는 것에 익숙해 있는 경우로도 볼 수 있지만 사실 내가 행복한 때는 관객들이 내 작품보고 감동하고 찬사를 해줄 때이다. 이미 그때 기쁨을 느꼈는데 나중에 또 상까지 받는다고 특별히 흥분되질 않는다. 쑥스러울 때가 많다”고 겸손해 한다.

여섯 번째로 검소하다. 그가 가진 명품이나 가장 비싼 물건 중 제1호가 노트북 정도다. 그는 자신이 정해 둔 적절한 수준의 출연료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TV나 공연 등의 출연 유혹도 거부한다. 영화만을 고집하며 활동을 해왔다.

그런 그를 평가하는 말이 ‘명품 안성기’이다. 매사에 성실한 모습을 보여 왔다. 가정에서도 성실한 남편이었지만 배우생활에서도 착실하고 모범적인 선배로 후배들에게 알려져 있다.


안성기는 명품이다

그는 젊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 달라는 부탁에 “말하기가 힘들다. 내 자식의 세계도 잘 모르는데 남의 귀한 자녀들에게 함부로 ‘이래라’ ‘뭐가 잘못됐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 한 가지 부탁은 하고 싶다. 지금 편안한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해준 어른들에 대한 고마움을 모든 젊은이들이 잊지 말았으면 하는 부탁이다. 연기하는 후배들에게도 같은 부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성기는 현재 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외에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등 10여개쯤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안성기 수상경력

▶1959 제4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
▶1980 제19회 대종상 신인상
▶1981 제18회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1981 제18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남자연기상
▶1982 제19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남자연기상
▶1982 제19회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1982 제21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1983 제20회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1983 제22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1984 제20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남자연기상
▶1984 제21회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1985 제21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남자연기상
▶1985 제24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1986 제23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1988 제25회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1990 제29회 대종상 남자인기상
▶1990 제11회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인기스타상
▶1991 제27회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1992 제31회 대종상 남자인기상
▶1992 제13회 청룡영화제 인기스타상
▶1992 제38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남우주연상
▶1993 제32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남자인기상
▶1994 제30회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1995 제33회 대종상 남자인기상
▶2000 제22회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2006 제2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2006 제27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2006 제43회 대종상 데뷔 50주년 기념상
▶2007 제44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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