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지난해 12월18일 오후 파행으로 단독 상정된 것과 관련,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 의원들이 김형오 국회의장실을 방문해 항의하고 이다.

한나라 ‘직권상정’에 ‘직권중재’로 맞불 딜레마

전기톱과 소화기가 난무한 여의도 정가에서 최근 김형오(62) 국회의장의 역할론이 다시금 급부상하고 있다. 김 의장은 지난달 23일 국회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에서 “의장으로서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겠다”고 선언해 ‘직권 중재’ 가능성을 내비쳤다. 현재의 상황은 지난해 8월 18대 국회 원구성이 극적으로 타결된 상황과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다. 여야가 막장까지 대치한 상황에서 김 의장이 강력한 중재 의사를 밝히고 국정 난맥상이 뒤늦게나마 해결된 과정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23일 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산타클로스’로 깜짝 변신한 김 의장이 여의도 정가에 화해의 순풍을 안겨줄 구원투수로 나설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여야가 끝장대치로 맞붙은 지난달 23일 김 의장은 사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설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김 의장은 “정치권이 소수 강경파에 의해 좌우돼선 안된다”면서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을 경우 의장으로서 내일부터 중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 “국회 파행은 구조적인 문제”

지난여름 국회 원구성안을 놓고 강경 노선을 걸어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낸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김 의장은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꼬인 정국이 한 두 번의 협상으로 풀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권선택 자유선진당 원내대표가 먼저 구원투수로 나선 것을 감안할 때 김 의장의 역할은 여야 대결 양상에서 ‘마지막 보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유난히 개원 초부터 말썽이 잦은 18대 국회에서 파행이 거듭될수록 김 의장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김 의장은 이 같은 여야의 파국을 구조적인 문제로 풀이했다. 172석의 절대 과반을 차지한 여당은 협상과 대화가 지지부진할 때 ‘강행 돌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반면, 야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강경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김 의장은 소속 의원들에 대한 각 정당의 ‘횡포’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당리당략이 출동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며 우려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 의장은 “최근 국회의 위상이 추락한 것은 각 정당이 의원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당론을 어겼을 때 가혹한 정치적 심판이 기다리고 있고, 4년 뒤 공천은 말할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당의 당론이 일부 강경파나 충성파에 의해 좌지우지 되면 국회의 존립 의미가 상실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적어도 연말까지 쟁점법안을 제외한 민생 법안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하지만 2008년 마지막 임시국회 기간 중 여야가 ‘대화의 장’에서 문제를 풀지는 12월 마지막 주 현재까지 여전히 미지수다.

지난달 19일 한나라당의 FTA 비준 단독 상정을 놓고 벌어진 이른바 ‘여의도 전기톱 사건’이 벌어진 뒤 대국민 사과까지 했던 김 의장의 원칙은 찬성 여론을 등에 업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한나라당의 독주를 우려하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민주당 “김 의장과 한나라당 못 믿어”

김 의장이 “여야 교섭단체 대표들은 (12월)23일까지 무조건 만나야 할 것”이라며 ‘직권중재’라는 초강수를 꺼내든 것을 두고 한나라당의 명분 쌓기를 위한 ‘시간벌기’ 꼼수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까닭이다.

더욱이 “만나겠다는 정당만을 데리고 합의하겠다”는 김 의장의 발언에 이미 ‘장외투쟁 불사’를 당론으로 굳힌 민주당은 더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예산안 직권상정에 이어 한나라당이 ‘MB악법’(FTA 비준 등 쟁점법안)에 대한 직권 상정을 위해 김 의장이 포석으로 나선 게 아니냐며 맞선 상태다.

김유정 대변인은 최근 논평에서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여야관계가 노사관계라도 된다는 말이냐”며 “여당은 사측이고 야당은 노측이라는 말이냐. 그래서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권력이라도 투입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예산안 날치기 처리에 대한 사과도 없이 이제는 여야 만남을 ‘직권중재’까지 하겠다는 김 의장의 발언이 매우 유감스럽다”며 “김형오 의장이 요즘 ‘직권상정’이라는 말을 반복하다보니 ‘직권’이라는 말에 재미가 들리신 듯하다”고 김 의장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김 의장의 ‘직권중재’ 발언 자체가 ‘야당을 핍박하기 위한’ 한나라당의 수단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다.

반면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직권중재’ 거부 입장과 관련 “민주당이 브레이크로 대한민국을 스톱하겠다는 것이냐”며 반박했다. 한나라당 김정권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인 지난달 22일 논평에서 “민주당이 여야 중재를 위한 국회의장의 요청을 거부하겠다고 한다”며 “국회의장실을 점거하더니 점령군의 특별법으로 국회를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이냐”며 비난했다.

김 의장을 사이에 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벼랑 끝 갈등은 연초까지 ‘뜨거운 감자’로 여의도 정가를 달굴 전망이다.


‘감성정치’로 파국을 막다

지난 7월 10일 18대 국회 첫 본회의에서 18대 국회 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김형오 의원. 당시 국회 최다선인 7선의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이 임시 의장을 맡아 실시된 이날 투표에서 김 의원은 단독 후보로 출마해 투표의원 238명 중 263명의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어 국회의장직에 올랐다.

12대 이후 역대 국회의장 중 최다 득표를 얻은 그였지만 개원 후 무려 82일 동안 원구성 조차 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시련을 맞기도 했다. 지난 8월 19일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지 한 달여 만에 여야 원구성 협의를 타결시킨 그는 특유의 ‘감성정치’로 여야 의원들의 신망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김 의장은 “저를 비롯해 여야 원내 지도부는 가시나무를 지고 죄를 청하는 ‘부형청죄’(負荊請罪)의 심정으로 자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바 있다. 원구성 협상 타결까지 적극적인 중재 행보를 펼쳤던 김 의장은 지난여름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임기개시 후 42일 만에 취임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원구성 타결 시한을 8월 18일 낮 12시로 못 박고 “이를 넘길 경우 직권상정하겠다”는 엄포를 놓은 끝에 최종 타결을 이끈 촉매제 역할을 한 것. 강경 노선으로 야당 의원들의 마음을 돌렸지만 김 의장은 본회의장에 참석한 의원들에게 일일이 ‘감사편지’를 써 보내 ‘감성정치’로 입지를 다졌다.

김 의장이 18대 국회의 수장으로 선출됐을 때 그에게는 ‘온건함’ ‘합리적’ ‘개혁적’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1992년 14대 총선 때 민자당 소속으로 부산 영도에서 당선된 뒤 내리 5선을 하는 동안 한번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버리지 않았다는 평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3선이상의 중진이 되면 현실과 타협하는 것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깨끗한 인상’으로 동료 의원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당초 김 의장이 여당 몫의 국회의장 후보로 나섰을 때도 여야 간 이견이 적었던 점도 이 같은 평가 덕분으로 분석된다.

‘소리없이 강한’ 김 의장은 서울대 외교학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978년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원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 1982년~1990년까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서 정무비서관을 지내다 지난 1992년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한편 취미생활로 독서를 즐기는 김 의장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의 ‘수불석권’(手不釋卷)을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로 꼽는다. 독서와 더불어 그가 즐기는 또 다른 취미는 시 낭송. 윤동주의 ‘서시’ ‘별 헤는 밤’등을 외워 낭송할 정도로 즐기는 편이다.

건강을 위해 걷기운동을 빼놓지 않는 그는 수목원을 찾아 산림욕을 하는 것으로 국정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주량은 그리 세지 않아 폭탄주 몇 잔 또는 소주 반병 정도지만 술자리에서 ‘맨발의 청춘’을 즐겨 부르는 풍류객으로 알려져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 프로필

김형오 (金炯旿)
▶ 출생 : 1947년 11월 30일
▶ 출생지 : 고성
▶ 직업 : 국회의원
▶ 소속 : 국회 의장, 한나라당 국회의원
▶ 블로그 : http://blog.naver.com/kimhyongo
▶ 경남고등학교-서울대학교 외교학 학사
서울대학교대학원 정치학 석사
▶ 2008. 07 ~ 제18대 국회 의장
▶ 2008. 05 ~ 제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 2007. 12 ~ 2008. 02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
▶ 2006. 07 ~ 2007. 08 한나라당 원내대표
국회 운영위원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정보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장
▶ 2004. 05~2008. 05 제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 2000. 05~2004. 05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 1996. 05~2000. 05 제15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 1992. 05~1996. 05 제14대 민자당 국회의원
▶ 1986~1990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 수상내역 : 2008 제8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정치발전부문 최고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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