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패스보다 청소년범죄가 더 위험하다”


2008년 지난 한 해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 걸쳐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인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표면으로 드러난 인물들 외에 물밑에서 소리 없이 맡은 소임을 다하며 자리를 빛낸 인물들도 적지 않다. 특히 사회분야에서 그런 인물을 꼽으라면 표창원 경찰대학 교수를 들 수 있다. 표 교수는 범죄심리분석 전문가로 유괴, 납치, 살해 등 굵직한 강력사건이 터질 때마다 예리한 범죄심리분석으로 경찰 수사를 도왔다. 그는 경찰청의 권일용 경위와 더불어 수사실무에 범죄프로파일링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2009년 한 해를 시작하는 길목에서 그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을 들어 보았다.

2008년의 끝자락인 12월 31일에도 표 교수는 학교 사무실에 나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왜 사무실에 나와 있냐고 물었더니 한해의 마지막 날이라도 평일임에는 변함없으니 자릴 지키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최근 근황을 물었다. 특별한 사항 없이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을 뿐이란다.

표 교수는 강단에 서는 것 외에 할 일이 많다. 범죄현장도 가야하고 외국의 새로운 논문도 챙겨 봐야하고 범죄심리분석의 응용을 위해 이런저런 고민도 해야 한다. 이뿐 아니다. 책을 집필하는 것도 그가 할 몫이다.

“출판사에서 책하나 어서 써 달라고 독촉이 심합니다. 그런 출판사가 몇 군데 되는데 그런 독촉을 몇 번 받으면 괜히 빚진 사람마냥 마음이 조급해 집니다.”

표 교수는 2005년 ‘한국의 연쇄살인’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 주목을 끈 바 있다. 이 책은 화성연쇄살인사건부터 유영철 사건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발생한 끔찍한 연쇄살인사건들을 범죄심리분석학적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있다. 또 이 책은 범죄심리분석학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니 출판사의 앵콜 요청이 쇄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음은 그와의 전화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유영철은 싸이코패스 아냐

- 2008년이 마무리됐다. 새로운 한 해를 맞게 된 소감이 어떤가.
▲ 개인적으로 학자로서 그리 큰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쉽다. 또 범죄심리분석 전문가로서 사회의 각종 범죄를 예방하는데 있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새해엔 뭔가 이루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각오다.

- 범죄심리분석학이 이젠 우리나라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고 보나.
▲ 아직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우선 범죄심리분석을 가르치는 대학교가 하나도 없다. 그만큼 국가적 지원이 전무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대학원에 딱 한군데 있긴 한데 그것도 심리학의 한 부분으로만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미국드라마 CSI 등을 통해 범죄심리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현실적으론 황무지나 마찬가지다.

- 유영철 사건이후 싸이코패스가 최근 범죄의 양상으로 굳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 싸이코패스는 대중들 사이에서 흔히 통하는 일종의 유행같은 것일 뿐이지 실제론 존재여부조차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최근 툭하면 범죄에 싸이코패스란 말을 갖다 붙이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외국의 경우와 달리 싸이코패스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우리나라에서 싸이코패스라는 말은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 그렇다면 지금까지 싸이코패스 범죄로 알려진 사건 중 잘못된 것도 있다는 말인가.
▲ 당연하다. 우선 싸이코패스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싸이코패스는 가정환경이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증후군)에 의해 발생하는 증상이 아니라 뇌 의학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단순 성격이상이 아니다. 뇌의 전두엽에 이상이 발생해 정신기능적장애가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장애로 인해 죄책감이나 도덕적 관념 등이 상실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장애인인 것이다. 그런데 유영철이나 정남규, 정성현 등은 이런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즉 싸이코패스가 아니란 소리다.

- 유영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싸이코패스라고 알려진 인물 아닌가.
▲ 그렇다. 하지만 그는 싸이코패스적 기질을 보인 것일 뿐이지 그런 사람은 아니다. 또 유영철은 연쇄살인을 저지르기 전 수감생활을 할 때 이미 정신감정을 받은 적 있다. 그때 싸이코패스 감정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싸이코패스가 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싸이코패스는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선천적으로 뇌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싸이코패스는 범죄자에 대한 정확한 정신감정이 이뤄져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감정노하우가 없어 제대로 된 감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테러형 범죄 심각한 문제될 것

- 우리나라의 범죄예방을 위한 가장 급선무는 무엇이라고 보나.
▲ 무엇보다 청소년범죄에 대한 접근법을 빨리 마련해 발전시켜야 한다. 지금은 청소년 범죄에 대해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다. 청소년 범죄를 방치하는 것은 차후 잠재적 강력범죄를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어른들의 훈계와 가정교육만을 따졌는데 이는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청소년범죄는 그에 맞는 심리분석을 통해 예방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청소년범죄예방 시스템이라면 우리는 제 2, 제 3의 유영철 정남규 정성현을 기다리는 꼴이 된다. 이들 셋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부터 소외됐다는 것이다.

- 최근 발생하는 강력범죄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 앞서 말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소외된 채 방치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무서운 범죄는 소외된 자들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얼마 전 발생한 고시원 참사가 대표적인 예다. 경찰조사결과 사건의 범인은 어릴 적부터 소외된 채 성장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한 사람의 소외를 가정에서 방치하고 주변에서 방치한 결과 고시원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 주변의 소외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범죄심리를 일반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소외받는 이를 방치하면 그것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범죄심리 기초 상식을 알았다면 고시원 사건도 예방됐을 것이다. 외국에선 주변에 혼자 소외된 사람에게 관심 가져 주는 게 당연시 돼 있다. 외톨이들을 바깥으로 끄집어내 같이 어울려야 한다. 고시원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범인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그는 범행계획을 잠시 접어뒀을 수도 있다.

- 최근의 범죄 양상을 분석하면 어떤가.
▲ 최근에는 범죄 수법과 양상이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 예전엔 누군가에 사무친 원한이 있거나 치정에 얽히거나 금전적 문제가 발생했을때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지금은 살인에 상당하는 이유가 없어졌다. 아무런 상관 관계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과거엔 범죄 원인을 유추하는 게 가능했으나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다.

- 말하자면 묻지마 범죄같은 게 그런 것인가.
▲ 그렇다. 대표적으로 고시원 참사, 대구지하철, 남대문 방화사건 등이 그런 것이다. 최근의 범죄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에 대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범죄이기도 하지만 테러이기도 하다. 사회전체에 테러를 가함으로서 복수하는 것이다. 범행이 테러같은 형태로 발전하면서 애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차를 몰고 미친 듯이 군중 속으로 돌진하는 그런 행위는 폭탄테러에 다름 아니지 않나.

- 지금까지 발생한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세 가지를 말한다면.
▲ 안양에서 발생한 예슬·혜진양 납치 살해사건, 강남 고시원 사건, 보성 70대 노인의 살인사건 등이다.

- 이 사건들이 인상적인 이유는 뭔가.
▲ 예슬·혜진양 사건은 대학원까지 나온 인물이 엽기적인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 특징이다. 강력범죄자들의 지능과 학력수준이 낮다는 지금까지의 관념을 깬 사건이었다. 더구나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주변 평가도 좋은 그야말로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우리나라 다른 범죄와 뚜렷이 구분되는 점이다. 또 강남 고시원 사건의 경우 이런 형태의 범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범죄다. 이것은 테러형 범죄에 무차별 학살이 합쳐진 경우다. 건물에 불을 지르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이는 유형은 처음 있는 일이다. 끝으로 보성 70대 노인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건 발생당시 70대 노인에게 여러 명의 젊은이들이 당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이 사건은 극적인 장면이 많았다. 국과수 법의관이 타살을 주장해 사건이 시작됐고 갯벌에서 우연히 발견된 피해자의 디지털카메라에 노인의 사진이 찍혀 범인을 잡았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 지금 GIS(지리정보시스템)와 범죄심리분석학을 접목해 데이터를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작업을 완성하는 게 당장의 큰 계획이다. 이것이 완성되면 지리적 특성에 따라 발생하는 범죄유형과 범죄발생비율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지리구조를 개선해 범죄를 예방하는 게 가능해진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범죄를 줄이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 국민들이 범죄심리분석에 관심을 갖고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표창원 교수, 신개념 범죄예방시스템 프로젝트 준비 중

경찰대학의 표창원 교수는 고려대 건축과, 도시계획학과와 함께 도시생활안전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범죄발생 장소와 범죄자 심리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문제지역이 나타나면 범죄발생 요인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주로 대도시를 위주로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지만 차츰 영역을 소도시로 넓혀갈 계획이다.

표 교수는 “이 시스템은 선진국에선 이미 보편화 돼 있지만 한국은 이제 시작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 위치정보 시스템 수준이 높기 때문에 빨리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표 교수는 “이 시스템이 마련되면 부동산 가격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아무래도 범죄발생비율이나 발생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정된 지역의 정보가 공개되면 해당지역 거주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이에 부동산 문제를 건들지 않는 방법으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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