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천하’ 설익은 ‘대쪽청장’ 기막힌 낙마

지난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한강대로변 재개발지역의 한 건물에서 밤샘점거농성을 벌이다. 경찰의 강제진압 끝에 연행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2기 ‘1·19 부분 개각’ 최대 수혜자로 꼽혔던 김석기(54) 경찰청장 내정자가 개각 반나절 만에 최악의 악재를 맞는 불운을 겪었다. 지난 20일 용산 철거민 강제 진압 과정에서 경찰 특공대 1명을 포함, 6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진 탓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김 내정자를 ‘살인자’로 몰아붙이며 파면을 요구하고 나섰다. 여당과 청와대에서조차 김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종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MB정권 역대 최단기 내정자라는 오명을 얻게 될 처지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김 내정자의 ‘출신 성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 경찰대에서 유학한 뒤 주일 오사카 총영사관 영사로 재직한 김 내정자의 경력을 놓고 ‘친일경찰’이라는 오해가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 급속히 퍼지고 있는 것이다. ‘반나절 천하’로 끝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파란만장한 3일을 전격 해부했다.

지난달 22일 현재 김 내정자의 낙마는 기정사실로 굳어진 상태다. 설 이전이냐, 이후냐의 시기 문제만 저울질될 뿐이다. 용산 참사가 벌어진 지 이틀 만인 지난 21일 여당과 청와대는 김 내정자를 ‘자진사퇴’ 형식으로 경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석기는 MB 폭압 정권의 하수인”

내정 반나절 만에 최악의 돌발 위기를 맞은 김 내정자는 MB정권 사상 ‘최단명’ 인사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던 그의 출세 인생에 직격타가 아닐 수 없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은 것은 지난해 7월 촛불시위가 한창 격하게 진행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위대를 향해 최루액 섞은 물대포를 쏘는 등 강제 진압을 고수해왔던 김 내정자의 ‘스타일’이 결국 이번 용산 참사의 시초가 됐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20일 새벽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 철거민의 강제 해산을 시도한 경찰의 작전이 무려 6명의 사망자와 20여명의 중상자를 내는 대형 참사로 비화됐다. 엄청난 사상자를 낸 용산 참사는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으로 무섭게 번졌다.

경찰은 점거농성 15시간 만인 이날 오전 6시께 강제 진압작전에 돌입했다. ‘대테러 진압부대’인 경찰 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 박스를 옥상으로 올려 보내는 과정에서 철거민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극렬히 저항했다. 이 와중 건물 안에 보관하던 시너 통에 화염병 불이 옮겨 붙으며 대형 참사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경찰이 시너와 화염병으로 무장한 철거민들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진압 대원들과 시위대 모두가 위험한 상황이 될 것임을 충분히 예측했었다는 얘기다. 철거민들은 지난 19일 건물 안에 가스난로 6대와 석유 기름통 80개를 보관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이명박 정권은 살인정권’이라는 자극적인 논평을 쏟아내며 청와대와 경찰을 싸잡아 비난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김석기 내정자의 책임을 물어 내정을 철회할 것을 공식 요청했고 이 같은 분위기는 여당 내에서도 지배적이다.


대테러 작전부대를 시위진압에 투입한 속내

민주당 이재명 부대변인은 지난 20일 논평을 통해 “권력사유화를 통한 MB식 독재 폭압 정치가 경찰을 충성경쟁으로 내몰더니 결국 광기의 살인집단으로 만들었다”며 “이제 대한민국의 인권은 죽었다. 경찰은 더 이상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MB정권의 살인도구일 뿐이다”라고 비난했다.

이 부대변인은 또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인권과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사욕에 눈먼 비인간적인 약탈집단임이 폭로되었다”고 비판하면서 현 서울경찰청장인 김석기 내정자의 파면을 요구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도 김 내정자와 이 대통령을 싸잡아 비난하는 브리핑을 가졌다. 우 대변인은 “전두환 독재정권시절에도 없었던 공권력에 의한 살인 만행이 이명박 정권에서 자행되고 있다”며 “다른 야당들과 함께 공동 진상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조사에 착수할 것이며 전 당력을 용산 철거주민 사망사건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도 성명을 내고 “이명박 정권이 철거민 5명을 살해했다”며 “살인진압의 책임을 지고 현장 진압책임자는 물론, 어청수 경찰청장과 신임 경찰청장인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그리고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은 법적 처벌을 받아야하며 엄정한 법집행을 운운하며 살인진압을 독려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심과 여론도 김 내정자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김 내정자의 일본 유학 경력과 그의 부친 역시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김 내정자를 ‘친일파’로 몰아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특히 이번 인사가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한 ‘밀실인사’이라는 비난까지 더해져 상황은 더욱 꼬였다. 진압 과정에서 불거진 인화물질이 산적한 곳에서 토끼몰이를 지시한 김 내정자의 판단 착오는 내부적으로도 ‘최악의 작전’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상득 의원과의 친분이 만든 자리?

김 내정자의 내정 철회가 현실로 굳어진 가운데 이와 비슷한 상황은 지난 노무현 정권 때도 벌어진 바 있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지난 2005년 11월 여의도 농민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한 명이 숨진 데 책임을 지고 결국 사퇴했다.

이번 사고는 3년여 만에 서울 시내 시위에서 화염병이 다시 등장했다는 점에서 시위대의 과격성에 일차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인화물질이 잔뜩 쌓여있는 현장에서 강경한 ‘토끼몰이식’ 작전이나 포위 공세는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관례지만 이번 현장에서 경찰은 이 같은 전례를 완전히 무시했다.

한편 김 내정자의 경찰청장 임명을 놓고 현 정부의 부적절한 인사 논란이 정치권에서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올랐다. ‘모든 것은 형님으로 통한다’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비난이 불거짐에도 불구하고 4대 권력 기관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직·간접적으로 연관 있는 인사들로 채워진 까닭이다.

김 내정자는 경북 영일 출신으로 이상득 의원과 출생지가 같고 이 의원의 친구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는 고등학교(대구 대륜고) 선후배 사이다. 김 내정자는 최 위원장과도 친분이 투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촛불집회가 연일 열리던 지난해 7월 시위대 1명 검거 시 2만~5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내고 최루액 사용을 허락했다. 특히 ‘유모차 부대’와 청소년에 대한 예외 없는 수사를 이끌어 야당과 시민단체의 거센 비판을 받았으나 ‘윗선’으로부터는 ‘법과 질서를 중요시 하는 원칙론자’라는 평가를 얻은 인물이다.

김 내정자는 참여정부 때까지 비교적 한직인 경찰종합학교 교장으로 지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3월 경찰청 차장(치안정감)으로 승진했고 4개월 뒤 서울지방경찰청장에 기용됐다.

여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김 내정자는 ‘이상득 의원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없지만 최시중 위원장이 챙겨주고 있는 인물’로 통한다. 간부후보 27기로 1979년 경찰에 입문해 주로 외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경북 포항 출신에 대구 대륜고를 나와 일찌감치 이명박 정부 핵심 인맥으로 분류돼 차기 청장 0순위로 꼽혔던 김 내정자는 경찰 내부에서도 신임이 두터운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힌다. 소문난 원칙주의자로 부하직원들 모두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강하게 주장하는 소신파로 서울 수서경찰서장 시절인 1999년 만화가 이현세씨와 함께 경찰 마스코트 ‘포돌이’ ‘포순이’를 고안하는 등 기획력도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일본에서 영사와 외사협력관 등으로 7년 간 근무해 경찰 내에서 ‘일본통’으로 꼽히는 김 내정자는 일본 경찰대학 본과 76기 졸업생이기도 하다.


#공성진 “떳떳하지 못한 김석기” 파문

한나라당에서도 ‘버린 카드’ 취급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여당 내부에서도 ‘버린 카드’ 취급을 받았다.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22일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 내정자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발언과 관련해 “어제(21일) 김 청장의 진술은 떳떳하지 못하고 미흡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공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청장이 당당히 책임지겠다는 말을 하길 기대한 당국자들에게 ‘현장책임자로서 다시 이런 상황이 오더라도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답변태도는 매우 안타까웠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내정자가 ‘내 탓은 아니지만 윗선의 처분은 달게 받겠다’는 애매한 태도로 일관해다는 얘기다.

공 최고위원은 “국가에는 내·외부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고 금융위기나 사회위기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21세기 복지국가에선 무엇보다 소외되고 일탈된, 잊혀져 갈 수 있는 서민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이 중요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참사를 계기로 현재 벌어지는 상황이 사회안전망이 잘못 구축되고 잘못 관리된 차원에서 벌어진 것인지, 국가안보차원의 도심 테러적 성격을 갖는 것인지 명확히 규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공 최고위원은 “경위야 어찌 됐든 사고가 생겼다면 거기에 합당한 문책은 해야 하고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며 관련자에 대한 책임론을 강조해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