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독서광, 해박한 지식 으로 현장·이론 겸비한 ‘철강맨’


거대기업 포스코의 새로운 사령탑에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이 확정됐다. 기획과 홍보 등 관리 분야에서 일해 온 윤석만 사장 대신 공장 사정에 훤한 정준양 후보가 선택된 것이다. 포스코 직원들은 정준양 하면 ‘선 굵은 현장 엔지니어’라고 평가한다. 30년 넘게 포스코에 몸담은 ‘철강맨’이기도 하지만 늘 현장을 지키면서 각종 기술 개발을 주도해왔다는 점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다. ‘포스트 이구택’ 정준양 사장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봤다.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졸업한 정준양 차기 회장은 1975년 공채 8기로 포스코에 입사해 제강기술 과장ㆍ제강 부장ㆍ생산기술 부장을 두루 거쳤다. 그야말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 ‘철강맨’인 셈이다.

‘철강맨’ 정 차기 회장은 신기술개발이 무한경쟁시대에서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믿고 있다.

생산기술부문장 재임시절 지금 당장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는 기술 개발에 대해 경영진들이 망설이고 있을 때 “신기술은 분명히 우리회사가 중국과 차별화 하고 일본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이익과 관계없이 준비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설득했다는 것은 신기술개발에 대한 그의 신념과 열정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특유의 친화력이 최대 장점

그러는 동안 중간중간 고비도 찾아왔다. 1999년 EU(유럽연합) 사무소로 발령 날 때만 해도 포스코 내부에서는 그가 밀려난 것으로 내다봤다.

줄곧 쇠를 만져온 엔지니어에게 해외사무소장 보직 발령은 “이제 나갈 준비를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탓이다.

포스코의 한 임원은 “그때 대부분의 직원들은 정 부소장이 EU사무소장을 마친 뒤 협력사나 계열사 임원으로 갈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정 차기 회장의 직급은 부장이었다.

그러나 EU사무소 발령은 이후 그에게 큰 힘이 됐다. 글로벌 경영감각을 익힐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로부터 3년 뒤 ‘이변’이 일어났다. 2002년 3월 광양제철소 부소장으로 임명되며 ‘상무대우’타이틀을 달았다. 이후 1~2년마다 전무·부사장·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그가 현장에서 펼친 다양한 혁신 활동 덕분이었다.

호기심 많은 일부 직원들은 또 다른 요인 찾기에 열연했다. 그래서 나온 답이 특유의 친화력이 드디어 때를 만났다는 것이다.

정 차기 회장은 누구나 옆집 아저씨 같이 편안하게 직원들을 대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따뜻하고 온화한 성격과 친근한 화법은 직원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특히 10여년 전 노사문제로 회사를 떠난 직원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 명 한 명 찾아가 살폈다는 일화는 그의 인간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노력이 현재의 안정적 노사문화 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정 회장 후보가 EU사무소장으로 나간 뒤 포스코 사외이사들이 줄줄이 해외시찰에 나갔다”며 “이상한 것은 갔다 온 사람들마다 정 소장 칭찬을 입에 달고 다녔다는 점”이라고 회고했다.


현장서 35년 뛴 ‘철강맨’

임원 승진은 다소 늦었지만 한번 트인 승진 가도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상무대우가 된 지 1년 만인 2003년 ‘대우’ 꼬리표를 뗐고, 그 다음해에는 전무(광양제철소장)로 뛰어올랐다. 2년 뒤인 2006년에는 부사장, 2007년에는 사장(생산기술부문장)에 임명됐다. 거의 1년마다 한 계단씩 점프한 셈이다.

정 차기 회장의 가장 큰 성과는 일본에서 수입하던 고급 자동차용 강판의 국산화를 주도했다는 점이다.

그는 고급 자동차강판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최신예 설비 신증설과 조업기술 개발을 이끌어 자동차강판 연간 650만t 생산체제 기반을 구축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특히 생산기술 부문장을 맡은 뒤 값싼 저품위 원료(철분 함유량이 낮은 원료)를 사용하면서도 고품위 원료를 사용했을 때와 동일한 품질의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을 개발해 매년 1조원 안팎의 원가를 절감하는 실적을 올렸다. CEO후보추천위원회는 이런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포스코의 독창적인 자원 재활용 방법(POS-LEAD기술 등)을 개발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친환경 신기술인 파이넥스(FINEX) 공법의 상용화를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5월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반면 자기 자신에게는 매우 엄격하고 부지런하며, 자투리 시간까지도 독서나 어학공부에 쏟는 등 자기계발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 왔다.

포스코 관계자에 따르면 정 차기 회장은 지독한 독서광(狂)이기도 하다. 한달에 평균 5~10권 정도의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쁜 업무 와중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실제 공학한림원 회원이기도 한 그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현장과 이론을 넘나들면서 진행하는 명강의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풀어야 할 과제 ‘뭐’?

한편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여럿이다. 우선 회장 경합이 과열 양상을 빚으면서 본인은 물론 포스코 조직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가 ‘자사주 매매를 통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처남 관련 회사에 특혜 납품을 주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첫 번째 비리 의혹은 ‘정 차기 회장이 포스코 사장으로 있던 2008년 3월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당 47만1101원에 포스코 주식 2100주를 샀다가 2개월쯤 뒤인 5월 주가가 최고가에 이르렀을 때 주당 60만7000원에 60만주를 매도, 총 9000여만원의 시세 차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3개월 만에 자사주를 매각한 것은 ‘경영진은 자사주를 매입 시점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매도할 수 없다’는 규정까지 어긴 것이었다.

또 하나는 ‘정 차기 회장이 포스코의 부사장ㆍ사장으로 재임하던 기간, 정 사장의 처남인 이경순(44)씨가 주요 주주로 있던 ㈜파워콤에게 대량의 납품 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워콤의 포스코 납품 실적은 2005년 1억4300만원에서 2006년 4억2800만원, 2007년 14억100만원, 2008년 30억5600만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그가 확고한 리더십을 행사하려면 이런 점을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또 회장 경합 과정에서 불거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완되고 분열된 조직을 더 조이고 통합시키는 것도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더 시급한 과제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뚫고 포스코를 더 강한 철강업체로 키우는 일이다. 포스코는 극심한 경기 침체 속에서 올해 국내 6조원을 포함해 총7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 차기 회장은 이런 투자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시켜야 한다.

정 차기 회장이 이런 ‘숙제’들을 제대로 풀지 못할 경우 포스코는 1년 뒤 다시 ‘차기 회장 선임’ 홍역을 앓을 수 있다. 그의 회장 임기는 이구택 회장의 잔여 임기인 1년인 탓이다. 1년 뒤 상임이사 임기가 끝나므로 다시 신임을 받아야 한다. 재신임 성공 여부는 향후 1년간의 ‘실적’에 달려 있는 것이다.


#포스코 정준양 사장 약력

▶ 생년월일 : 1948. 2. 3
▶ 출 신 지 : 경기 수원
▶ 학 력 :
●서울대부고
●서울대 공업교육학과
●순천대 금속공학 석사
▶ 주요경력 :
●포스코 입사(1975)
●광양제철소 제강부장
●생산기술부장
●EU사무소장(상무)
●광양제철소장(전무)
●생산기술부문장(사장)
●포스코건설 사장
▶ 대외활동 :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타 이사
●전경련 한호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대한금속재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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