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믿어준 와이프 가장 고맙다”


봄기운이 물씬 풍긴 지난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동산에서 방송인 겸 사업가인 권영찬(40)씨와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약속시간은 오후 3시 30분. 약속시간 5분여를 남겨두고 기자는 사진기자와 함께 돌계단을 따라 의원동산에 올랐다. 그로부터 10여분 뒤 말끔한 정장차림의 권영찬씨가 허겁지겁 도착했다. 미리 차가 막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단 전화를 받았던 터였다. 그런데도 연신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권씨다. 대개 유명 연예인들의 경우 인터뷰 시간 몇 분 정도 늦는 건 ‘기본(?)’이라 여긴다. 빡빡한 스케줄 탓인 걸 알면서도 기자입장에선 살짝 ‘빈정’ 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강산이 변해도 두 번은 변했을 방송 18년 차 개그맨인 그는 사뭇 달랐다. 약속시간 전 미리 전화를 걸어 사과부터 하고 늦게 된 이유와 얼마 후 도착할 것 같다는 설명까지 친절히 곁들였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그의 마음 씀씀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은 권 씨와의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 몇 해 전부터는 사업가로 변신하셨는데요.
▲직접 공격적으로 하는 건 두 개 정도예요. 나머지는 컨설팅 개념으로 도와주고 있죠.
제일 첫 번째가 알앤디클럽이라고 결혼정보와 웨딩컨설팅을 함께 하고 있어요. 작년에 개그맨 염경환 씨와 박정희 대통령 따님 박근령 사장, 그리고 <간난이>했던 탤런트 김수양 씨가 우리 회사 도움을 받아 결혼했죠.
두 번째는 제가 옛날(2005년 성폭행 혐의를 받았을 때)에 억울한 일로 영등포구치소에서 37일 동안 지낸 경험이 있는데, 그때 아이디어를 얻어 옥바라지라는 구치소 민원대행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옥바라지’ 사업이라 굉장히 획기적인 아이템인데요. 국내 최초인가요.
▲네, 국내 최초죠. 저 같은 경우 직접 구치소 생활을 경험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불편한 사항이 있더라고요.
우선 수감자들은 하루에 한번, 7분밖에 면회가 안 되요. 그래서 가족이 가려고 했다가 동료나 어떤 누가 선수라도 치는 날이면 헛걸음질을 하는 거예요. 그나마 서울이나 경기권 같은 경우 하루에서 반나절이면 오니까 다행이지만 지방의 경우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걸리거든요. 그런데도 누가 먼저 와서 면회를 했다면 헛수고를 하고 마는 거죠.
옥바라지는 그런 민원을 최저 금액으로 대신해주는 온라인 서비스 업체예요.

-전과자를 둔 가족이나 동료들이 알아둬야 할 특징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각 구치소나 교도소 별로 허용되는 영치품 종류가 조금씩 달라요. 때문에 어디 교도소고, 어느 구치소 인지 정확히 알아둬야 하죠. 옥바라지 사이트에 가면 전국 47군데 구치소나 교도소 별로 영치 가능한 품목이 자세히 설명돼 있어요.

-교도소 영치품 중 어떤 물건은 되고 안 되는 지, 또 그런 가운데 특이한 게 있다면.
▲교도소ㆍ구치소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옥중 생활을 하는 수감자라면 일단은 남자든 여자든 빨간색 속옷 계열은 반입이 안 되요.
동성끼리 수감된다지만 흥분상태로 만들면 안 되거든요. 특히 수용자들의 경우 대부분 재판을 앞두고 있어 심리적으로 불안해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붉은색 계열 속옷은 절대 안돼요.
또 단추가 있는 옷이나 지퍼가 있는 옷, 끈이 있는 의상 역시 반입이 금지돼 있어요. 자살방지 예방차원이죠. 참, 옷깃이 있는 옷도 안 되요. 라운드형 티셔츠라고 해도 상표 또는 영어글귀가 크게 들어간 것도 안 되고요.

-음식은 반입이 안 되나요.
▲음식은 대부분 반입이 안 되요. 그나마 훈제닭발이나 컵라면 정도는 가능해죠.

-아직은 ‘옥바라지’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 같진 않은 데요. 매출은 얼마나 되나요.
▲아직까진 투자단계기 때문에 수입이 많진 않아요. 작년 11월에 오픈했거든요. 하지만 전 옥바라지 사업을 수익 목적으로 하고 있진 않아요. 봉사성격이 강하죠.
딱 정해져 있진 않지만 대략 교도소나 구치소에 월 평균 기결수 5만여명이 수용되요. 기결수 1인당 가족이 2명만 있다 쳐도 10만명이거든요. 저 같은 경우 2005년에 그런 일도 있었고 구치소 생활을 하다보니까 기결수 가족들이 매일 면회 온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 최저 영치금이 됐던 영치품이 됐던 6000원이면 모든 민원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를 해야겠구나’ 생각했죠.
수익보다는 교도소 수용자들 가족을 대변하는 대변인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수익은 그 다음 문제죠.

-웨딩사업도 하는데 타 웨딩업체와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알앤디클럽은 한 10년 전부터 준비해 오다 정작 문을 연 건 약 3년 밖에 안됐어요. 매출은 년 평균 16억 정도 되고요.
아시다시피 제가 결혼을 어렵게 했잖아요. 누군가는 ‘내년 매출 달성이 얼마냐’고 물어봐요. 하지만 전 직원들에게 매출 달성을 목표로 하지 말고 결혼할 예비 신랑 신부들이 100%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하죠. 지금도 우리 회사를 통해 결혼하신 분들이 종종 전화도 하고 찾아오기도 해요. 그때 보람을 느껴요.

-이렇게 바쁜 와중에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신다.
▲2007년 11월 촬영을 하다 세트장이 무너져서 병원에 한 3개월 누워 지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꼼짝을 못하니까 10kg이나 쪄버린 거예요. 원래 제가 많이 나가봤자 71kg이었는데 병원에 있으니까 79~80kg까지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일반운동은 쉽게 질리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보건복지부에서 하는 게임운동이란 걸 알게 됐죠.
제가 봉사하는 중구쪽 보육원이 하나 있는데 남자아이만 11명 정도예요. 그런데 걔네들이 하나같이 과체중이거든요. 고아이다 보니까 먹는 걸 절제를 못 해요. 그래서 보건복지부와 연개해서 불우가정이나 소년소녀 가장에게 비만 치료를 돕고 있어요.

-예전에도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었나요.
▲제가 사랑의 가족을 한 8년 정도 했어요. 그땐 보육원 봉사를 많이 다녔었는데 2005년 억울한 일로 재판을 받다 보니까 소외받거나 힘들어 하는 계층에 눈이 가더라고요. 제가 감히 그들을 대변할 순 없지만 같이 손 잡고 걸어가 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나마 난 무죄를 주장할 힘이라도 있지만 그들은 그런 게 아예 없잖아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 마다 틈틈이 봉사활동을 하려고 해요.

-인터뷰 도중 여러 번 언급하셨는데 성폭행 혐의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아내의 도움이 무엇보다 컸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런 아내를 만나게 됐는지요.
▲2002년 11월 모임이 있어서 하얏트 호텔에 갔다가 그곳에서 지금의 와이프를 처음 만났어요. 서로 다른 모임에 있다가 호텔 앞 입구에서 딱 마주쳤는데 우연찮게도 각 모임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의기투합해 노래방엘 갔죠. 이태원에 있는 노래방이었어요.
사실 전 첫눈에 반하는 사람 아니면 잘 사귀질 못해요. 제 와이프에게 첫눈에 반했죠. 그때부터 데쉬 아닌 데쉬를 했어요. 그런데 약속 세 번 모두 와이프가 안 나오는 거예요. 어렵사리 네 번째 만나게 됐고, 꾸준히 교제하게 됐죠.

-세 번 퇴짜 맞으면서 기분이 많이 상했을 텐데요.
▲저는 늘 드라마나 영화 같은 사랑을 꿈꿔왔어요. 다른 여자 같았으면 ‘어쭈~, 이것 봐라. 감히 바람을 놔? 그래 관둬, 너 말고 여자가 없니’ 했을 텐데. 와이프 같은 경우 오히려 ‘오호라, 저 여자가 아직 내 진면목을 모르고 있나보네’하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무혐의 처분 받기 전까지는 장인 장모님 반대가 심했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 절대 그러시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장인어른 같은 경우 재판 진행 중이던 때 결혼부터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아버님께 이렇게 말했죠. ‘아버님, 제가 아무리 아니라고 했지만 1심에서 유죄가 떨어졌습니다. 만의 하나라도 2심 때도 유죄가 떨어진다면 전 바로 법정구속입니다. 그럼 이 여자는 어떻게 합니까. 반드시 무죄를 받고 결혼하겠습니다.’라고요.

-37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음, 그(구치소) 안에서는 김장용 비닐 같은 게 있어요. 특별한 날 부대찌개 같은 게 나오는 데 거기선 그걸 끓여 먹지 않고 아주 팔팔 끓은 물에 불려서 먹어요. 뜨거운 물이 각 방마다 1~2통 정도 나오거든요. 방 하나에 여덟명에서 아홉명 정도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김장용 비닐에 뜨거운 물을 넣어가지고 흔들어 먹는 거예요. 군대에서 먹는 봉지라면(일명 뽀글이)처럼요.

-이벤트를 자주하는 편인가요.
▲요즘은 일 때문에 바빠서 횟수가 줄긴 했지만 그 전엔 이벤트를 많이 했어요. 와이프는 남성적인데 반해 저는 3형제 중 막내라 그런지 세심한 편이 있거든요.
심지어 2월 14일(밸런타인데이)은 남자가 받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먼저 선물해요. 화이트데이는 기본이고, 와이프는 처음 만난 날(2002년 11월2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전 매년 11월 2일이 되는 날엔 작은 선물을 준비하곤 해요.

-자녀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요.
▲올해 말쯤에 가져보려고 해요. 애기가 태어났다고 해서 일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신혼을 좀 더 즐기고 싶어든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2세를 가질까 생각중입니다.



#권영찬 프로필

▶ 이 름 : 권영찬 (개그맨)
▶ 생년월일 : 1969년 12월 20일
▶ 출 생 지 : 강원도 영월
▶ 학 력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 학사
▶ 수 상 : 1992년 KBS 대학개그제 동상
▶ 경 력 : 알앤디클럽 공동대표ㆍ옥바라지 대표
▶ 가 족 : 3남 중 막내
▶ 취 미 : LD모으기
▶ 특 기 : 검도




##성폭행 혐의에서 무죄를 받기까지
4시간 6번 강간? 결국 뻥

2005년 6월16일 새벽 5시께 권영찬 씨가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4시간 동안 6번이나 강간당했다”는 유 씨의 위증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유 씨는 권 씨가 운영하는 PC방 숙대지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했었다.

◆ 항소심서 상황역전

순식간에 경찰수사는 마무리 됐고, 1심 판결까지 나왔다. 2년6개월의 실형이었다.

유죄판결을 받고 난 뒤 그는 “아무 준비 없이 그저 ‘나는 결백하니 진실이 밝혀지겠지’라는 생각에 넋 놓고 있다가 유죄판결을 받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며 “이대로 팬들 기억 속에 ‘강간치상범으로 남을 순 없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모든 시간을 유 씨의 진술이 거짓임을 밝혀내는데 썼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권 씨의 결백이 증명될 수 있도록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유 씨였다. 자신이 쳐놓은 꾀에 자기가 걸려든 셈이다.

유 씨가 경찰에 권 씨를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한 날은 2005년 6월 9일. 당시 그녀는 “6월 5일 밤, 권 씨에게 4시간 동안 6번이나 성폭행을 당해 움직일 수 조차 없어 이틀 간 몸져 누워있었다. 그래서 고소가 늦어졌고, 대신 시간이 날 때마다 성폭행 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며 자신의 통화목록을 증거품으로 제출했다.

하지만 유 씨가 제출한 증거품은 오히려 권 씨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 “연예인 시켜주겠다며 전화로 불러내 어쩔 수 없이 나갔다”는 유 씨의 진술과는 달리 그녀가 늘 권 씨에게 먼저 전화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자신에게 아주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산부인과 진단(DNA확보)을 스스로 거부하기도 해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또한 ‘6월5일 밤, 4시간 동안 6번이나 성폭행을 당해 이틀 간 누워있었다’고 주장한 유 씨는, 사건 당일 저녁 동대문에서 쇼핑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그녀의 카드결제 내역으로 입증됐다. 밤 9시 30분쯤 사용된 카드결제 내역이 증거로 제출되자, 유 씨는 “저녁에 아는 언니를 만나 잠깐 동대문에서 쇼핑을 했다”고 말을 바꿨다.

또 2005년 6월 22일 그녀는 권 씨와 함께 연예인 모임에서 찍은 사진을 ‘즐거웠던 날’이라는 글과 함께 자신의 인터넷 미니홈피에 올리기도 했다. 사건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점에서 그녀는 자신을 6번이나 강간한 ‘가해자’와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해 ‘즐거웠다’는 심경을 표한 것이다.

당시 유 씨는 “미리 예약을 해놓은 것이지 22일에 올린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지만, 미니홈피를 운영하는 통신사가 직접 “유 씨가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답변을 해와 신빙성을 잃었다.


◆ 양치기 유 씨 지명수배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고되고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던 권 씨는 “무죄판결을 받고 나오자마자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면서 “그동안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었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편 권 씨는 유 씨를 위증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위증죄로 기소된 유 씨에게 2006년 9월1일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캐나다 시민권자인 유 씨는 현재 국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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