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 배열 보고 운명 예측

김정희 원장은 틈만 나면 배낭을 메고 산기도를 떠난다.(위) · 자미두수는 별자리의 배열을 보고 운명을 읽어낸다.

별자리를 살피는 '점성술'은 국왕이 국정을 펴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되어 왔다. 동양의 점성술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자미두수. 그 깊이와 정확성에 비해 아직 많은 부분에서 신비에 가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실력자들도 찾기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김정희 원장 (금광철학원 02-921-1954)은 자미두수의 실전 최고수라 할만하다. <신통방통 자미두수>의 저자이기도 한 김정희 원장은 여러 언론에서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고 있다.

운명을 미리 알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밤하늘의 별자리의 변화를 보고 길흉을 점쳤으며, 조선시대에는 관상감이라는 관직까지 둘 정도였다.

미래의 운명을 예측하는 동양 학문 가운데 흔히 알려진 것이 사주학이다. 사주학은 태양력을 중심으로 한다.

반면 자미두수는 사주학과는 다르게 태음력을 사용한다. 자미두수는 사주학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복잡한 이론체계와 난잡해 보이는 명판의 모습은 입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금방 지치게 만드는 가장 큰 요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미두수는 비인부전(非人不傳)의 색깔이 짙다. 자미두수의 스승들은 설사 제자가 재능이 있더라도 인간적인 성품이 결여된 자에게는 그 도(道)를 전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미두수의 정수를 제대로 이어받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김정희 원장이 주목받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자미두수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치열한 입산수도를 거쳤고, 지금까지 한순간도 옆길로 향하지 않았다. 여자의 몸으로 자미두수를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인데도 그녀는 용케 고비들을 잘 넘겨왔다.

“노력만으로는 자미두수를 공부하기란 쉽지 않다. 타고난 것도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고기는 먹지 않았으며, 절에도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도 없어진 계룡산 산속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가져왔다. 이런 모든 것들이 자미두수를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김원장이 정신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첫 아이를 낳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느닷없이 꿈속에 등장한 할아버지 한분이 60갑자를 짚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꿈속이었지만 너무나 생생하여 잊혀 지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60갑자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 때부터 우리 역사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고, 천부경을 외우고 다녔다. 제대로 해석도 할수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계속하다보니 점차 예지력이 생겼다.”

그녀의 예지력은 주로 꿈에서 발현되었다. 꿈속에서 본 일을 다음날 확인해보면 영락없었다. 김원장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간 곳이 서울 청계산이었다.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올라가다 자연스럽게 기도터를 발견했다. 기도터라고해서 특별하게 제단이 마련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용하고, 볕이 바른 곳이었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정신은 거울처럼 맑아졌고, 세상 일들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결단의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김원장은 남편에게 예언자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때가 40대 초반이었다. 아내를 지켜보고 있던 남편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취미생활정도로 이해했던 터라 충격은 더했다.

“1천 일 기도를 하겠다고 했다. 거기서 명확한 길을 찾지 못하면 이 길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그녀가 들어간 곳은 충남 부여 석천산의 한 암자. 암자의 주지스님은 오랜 시간 동안 수행을 해왔고, 그 깊이도 만만치 않은 분이었다. 주지스님의 지도아래 김원장은 기도수행은 물론 정신세계의 여러 술법들도 배울 수 있었다. 1년 기도가 끝나던 날 김원장은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 이번에도 꿈에서였다.

“꿈 속에 할머니 한분이 나왔다. 한문으로 된 낡은 책 한권을 주셨는데, 책을 펼쳐보니 별자리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책이 무슨 책 인지는 몰랐지만 느낌으로는 알 수 있었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책은 머릿속에서 잊혀 지지 않았다. 그것이 자미두수인 것을 안 것은 오래지 않아서다.

자미두수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새로운 스승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도 그녀는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날 수 있었고, 스승 역시 법을 전수해줄 제자를 만났다.

스승은 그녀에게 자미두수의 유래에서부터 그 진수를 전수해주었고, 나름대로의 비법들을 일러주었다.

자미두수는 중국 송나라의 진희이(陣希夷)가 천체를 관측하고 인간과의 관계를 파악하려는 시도를 통해 창안한 술법이다.

자미두수는 천지조화를 터득하고 인간의 부귀빈천과 길흉화복을 예지하는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정확성이 뛰어나며 귀신도 울고 간다고 하여 당 태종 때는 금서로 분류되어 책이 불태워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녀의 스승은 중국 정통 자미두수를 배웠지만 여러 한계점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즉 중국 자미두수의 별의 도수가 중국 중심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이런 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수 십 년간의 산 기도를 통해 천지자연의 이치를 자미두수에 보완하였다. 선생님은 한국의 자미두수를 창안하셨다고 할 수 있다.”

자미두수의 이름을 풀이해보면 자미(紫薇)란 천체계의 기준이 되는 북극성(北極星)을 뜻하며, 두(斗)란 북두성계, 남두성계 등의 인간운명에 영향을 주는 별을 의미한다. 수(數)란 인간의 운명을 추산하는 변화의 수를 뜻한다.

김원장이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남들과는 달랐다. 이미 기도수행을 통해 영적인 눈이 열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무엇을 근거로 저런 말씀을 하시는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미두수는 이론적인 부분만 공부해서는 진수를 접할 수 없다. 학문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녀는 오랜 기도수행을 통해 자미두수를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으며, 각종 질병은 물론 빙의를 퇴마할 수 있는 능력까지 덤으로 얻었다.

그녀는 틈만 나면 배낭을 메고 산기도를 떠난다. 산에서 맑은 천지의 기운을 받아야 청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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