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14인과의 인터뷰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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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이어진 유명인들의 잇단 자살과 동기 없는 연쇄살인의 공포가 전국을 뒤흔든 가운데 작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두 가지 자료가 이슈로 떠올랐다. 2008년 2월과 8월 두 번에 걸쳐 발표된 ‘한국의 자살실태와 대책’이라는 보고서와 같은 해 말 공개된 ‘살인범죄의 유형별 특성 보고서’라는 제목의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지난 10년 간 급증한 자살사건과 점점 더 잔혹해지는 살인범죄에 있어 가장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분석했다는 점에서 학계와 언론의 관심이 쏟아진 것. 특히 연쇄살인범 14인과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수집된 생생한 기록들은 학술 자료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최근 8명의 부녀자를 납치해 살해한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호순(39)과 탤런트 고 장자연(29)의 자살사건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사건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꿰뚫어 줄 장본인을 <일요서울>이 만났다. 화제의 보고서로 범죄학계 스타로 떠오른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부연구위원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장자연 리스트’가 정말 죽음을 염두에 두고 쓴 유서였다면, 장씨는 자신이 살아있으면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자살이라는 방법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자살은 망자가 선택한 대화의 방법일 뿐”

지난 10년 간 발생한 자살사건 1300여건을 토대로 우리나라의 자살실태를 정확하게 꼬집은 박 연구원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장자연씨에 대해 나름의 가설을 세운 상태였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자살’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린 사람이 선택하는 게 아니다. 자살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경우 죽음으로 주위의 관심을 집중시킨 뒤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는 일종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장씨의 경우엔 남긴 문건이 유서인지 아닌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 그 부분을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만약 문건이 유서의 성격이라면 일종의 탄원을 위한 하소연일 가능성이 높지요.”

박 연구원은 이와 유사한 사례로 거액을 사기당한 한 가정주부의 자살 사건을 들었다. 이 주부는 2통의 유서를 남겼는데 하나는 사기범에게, 나머지 하나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서장에게 보낸 편지글 형식이었다.

박 연구원이 주목한 것은 그녀의 경찰에게 보낸 두 번째 유서였다. 편지에는 “(내가 살아있을 땐 제대로 수사조차 해주지 않더니) 이제 죽었으니 제대로 조사하겠죠?”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유독 자살을 기도하는 이들이 자신의 집이나 자동차 같은 익숙한 공간에서 목숨을 끊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누군가 자신의 주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른 사람과 접촉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자살이 대화의 방법이라면 이를 위해 먼저 말을 들어줄 대상과 그 대상을 만날 장소가 필요합니다. 상당수 자살자들은 가족이나 지인들이 쉽게 발견할 수 있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죠.”

자살과 관련된 연구로 5년 넘게 고민해왔다는 박 연구원은 최근 자살·강력사건과 관련된 언론보도로 관심을 돌렸다. 유명인의 자살방법이나 강력범죄 수법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가 비슷한 일을 꿈꾸는 일반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게 그가 세운 가설이다.

“제 개인적인 잠정 결론은 자살을 고려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자세한 보도가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극단적인 선택을 좀 더 쉽게 만드는 동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강력사건과 관련된 일부 보도도 마찬가지인데요 구체적인 자살, 범행 수법을 알려줘 잠재적인 사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죠.”


“살인, 저지를수록 쉬워진다”

박 연구원은 국내 최초로 연쇄살인마 14명을 비롯해 30여명 이상의 살인범들과 직접 인터뷰를 나눈 강심장으로도 유명하다. 박 연구원의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한 ‘살인범죄의 유형별 특성 보고서’에는 그가 만난 최악의 살인마들이 저지른 범행 수법과 성장 과정이 한눈에 정리돼 있다.

‘직접 만난 연쇄살인범 14인이 과연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연구원은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연쇄살인범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민감한 문제라는 것. 그가 발표한 연구논문에는 이미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유영철, 정남규 등을 제외하고 모든 피의자의 실명이 가려져 있다.

“물론 그들의 이름과 혐의는 모두 기억합니다. 다만 저희가 연구하는 것은 어떤 유형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냐는 것 뿐, 개개인이 ‘누구’냐는 게 아닙니다. 연쇄살인범들의 신상을 자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언론에 의해 말초적인 호기심이 자극될 뿐이죠.”

대신 박 연구원은 한국의 연쇄살인 유형을 크게 두 가지라고 귀띔했다. 하나는 돈이나 재산 같은 눈에 보이는 이익을 추구한 것 즉 강도 살인과, 섹스나 분노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을 쫓은 경우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강도 살인이 연쇄살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실제 인터뷰를 진행해보니 상당수의 강도 살인 피의자들은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살인을 저지르게 됐다’며 후회하더군요. 다만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 뒤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가 쉬워진다’는 게 문제겠죠.”

연쇄살인범은 범행을 저지를수록 몇 단계씩 ‘진화’한다. 단순히 범행 수법이 잔인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과 욕망을 이루기 위해 더 용이한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다는 얘기다.

“흔히 연쇄살인범들을 ‘미친놈’ ‘정신이상자’로 치부하는데 이들은 절대 미치지 않았습니다. 정말 미친 사람들은 이성이 마비된 상태로 상당히 충동적이지만 제가 만난 연쇄살인범들은 상당히 합리적이었어요.”

살아있는 사람을 도륙한 살인마가 합리적이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최근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하나씩 곱씹다보면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정남규 “유영철 개XX! 감히 내 공을 가로채?”

“연쇄살인범에게 있어 합리적이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합리와는 다릅니다. 살인범이 합리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목적과 이익은 극대화 시키면서 경찰 검거나 피해자의 저항 같은 위험요소는 최소화 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연쇄살인범들은 치밀하게 움직인다. 범행상황을 계산하고 피해자를 선택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자신이 쉽게 다룰 수 있는 익숙한 공간으로 끌어들였다는 게 결정적인 공통점이다.

“예를 들어 유영철의 경우 자신의 집안으로 희생자를 불러들여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완벽한 ‘살인작업실’을 만들었죠. 또 모 강도 살인범은 술 취한 표적만을 골라 자신의 차로 납치해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아직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강호순처럼 표적을 찾아 매복한 끝에 덮치는 경우도 있죠.”

철저한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냉철한 연쇄살인마들. 그렇다면 이들이 자신들의 범행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속설도 사실일까. 박 연구원은 “몇몇 사례에서 상당한 과시욕을 드러낸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흔히 외국 수사물처럼 경찰과 심리싸움을 하며 일종의 ‘게임’을 즐기는 경우는 아직 국내 사례에선 없었습니다. 다만 자기만족을 위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고 싶어 하는 케이스는 있었죠. 피해자를 절대 등 뒤에서 공격하지 않고 눈을 똑바로 마주친 상태에서 죽인다던가, 아예 살해 현장에 불을 질러 불길이 번지는 것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연쇄살인범의 기괴한 과시욕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낸 것은 단연 경기 남부 연쇄살해범 정남규였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은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기 전까지 계속 부인하다가 명확한 증거나 자백을 하고 난 뒤 이상할 정도로 자랑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혹시 정남규가 유영철에게 굉장히 화를 냈다는 사실 아십니까? 자기가 저지른 살인을 마치 유영철 자신이 한 것처럼 거짓 진술을 했다는 이유에서였죠. 두 사람은 동시대에 활동한 정말 탁월한(?) 살인마입니다.”


“내가 기획한 살인 중 정말 짜릿한 게 있었는데…”

연쇄살인범 가운데 특히 정남규나 유영철처럼 본인의 쾌락을 위해 사람을 죽인 자들은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한다. 자기만족을 위해 희생자를 일종의 도구이자 수단정도로 치부한 이들은 피해자들이 느낄 고통에 대해 상당히 둔감하다는 것이다.

“정남규는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더 많이 죽일 수 있었는데···’ ‘내가 기획하고 있는 것 중 더 짜릿한 게 있었는데 그걸 해보기 전에 잡힌 게 억울하군’ ‘경찰에 잡힐 때도 이렇게 초라하게 잡힐 줄은 몰랐다’는 등입니다.”

정남규에게 있어 살인은 하나의 놀이이자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는 얘기다. 박 연구원은 겉으로 보기에 아무 동기도 없는 살인사건이라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범행 동기는 반드시 있다고 강조했다.

“흔히 말하는 ‘묻지마 범죄’라고 불리는 무동기 살인이 국내에서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외국의 경우 전체 연쇄살인사건의 80%이상이 성적 충동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고요. 일부 학자들 사이에선 이를 ‘선진국형 연쇄살인’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만큼 연쇄살인범들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이런 경향대로라면 불행하게도 비슷한 유형의 연쇄살인 범죄는 당분간 꾸준히 증가할 가능성이 높죠.”



#연쇄살인 피하는 방법

불행히도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무동기 범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박 연구원은 무서운 범죄를 피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해결책을 내놨다.

먼저 연쇄살인범이나 범죄자로 자랄 가능성이 있는 ‘나쁜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사춘기나 어린 시절에 학대를 당하거나 중요한 인물(부모, 교사)로부터 정서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환경에 내몰린 청소년들을 국가와 사회가 감싸 안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반인들은 연쇄살인범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한다. 박 연구원은 “범죄자들은 매우 치밀하고 합리적으로 범행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유리하게 조작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이 위험한 시간과 장소에 놓이지 않는 것이 억울한 피해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형민 프로필

▶ 성명 : 박형민
▶ 출생 : 1971년 3월 6일
▶ 출신학교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서울대 사회학 석·박사
▶ 소속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연구센터 부연구위원

발표연구
▶ 살인범죄의 유형별 특성 보고서 (2008)
▶ 한국의 자살실태와 대책 (2007)
▶ 컴퓨터 사용 사기범죄의 현황과
처리실태에 관한 연구 (2002)
▶ 살인범죄의 실태에 관한 연구2 (2003)
▶ 방화범죄의 실태에 관한 연구 (2004)
▶ 교정사고의 처리실태와 개선방안 (2006)
▶ 인터넷 유해사이트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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