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이 살아있고 기(氣)가 충만하다”

강한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는 새 새명의 탈. 손을 대고 있으면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한다.

탈이 살아있다? 탈에서 소리가 나고 보이지 않는 기운(氣)이 나와 사람을 움직인다? 믿기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현장은 경남 고성탈박물관(055-670-2948). 탈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탈 앞에 서면 탈의 기운이 느껴지고, 몸이 민감한 사람들은 온몸을 흔들기도 한다. 심할 경우 춤을 추기도 한다. 이것이 진정한 ‘탈춤’이라는 것이 이곳의 주인 이도열 관장의 설명이다.

경남 고성에서 통영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는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고성오광대 전수관이 자리하고 있다. 전수관 바로 아래쪽에 탈박물관이 있다. 탈박물관에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가면 중 최초의 것으로 기록되는 목심칠면(木心漆面?6세기경)을 비롯한 신성탈, 무형문화재 13개 단체의 예능탈, 글이나 문자가 없었을 때 있었던 원천지(元天地)탈 등 2백50여종 8백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탈에 관해서라면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박물관의 주인은 고성오광대 보존회 부회장을 역임한 이도열 관장. 탈 제작에 관해서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일인자로 꼽힌다. 해마다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탈을 배우고, 탈춤을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그런데 이곳 탈박물관에는 과학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해괴한 탈들이 그런 일을 벌인다는 소문이 있다. 탈 앞에 서면 어지러움을 느껴진다는 사람, 손에 전류가 흐른다는 사람, 몸이 뜨거워지고 시원해진다는 사람, 심지어는 쓰러지는 사람까지 있다는 것이다.

소문의 진원지인 탈박물관을 찾았다. 들어서기만 해도 왠지 부정한 요소는 다 물리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들어설 때에는 그다지 강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맑고 강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이도열 관장과 마주하자 그가 이곳에 살아있는 기운을 불어넣은 주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좋지 못한 기운을 제거하고 맑고 그윽한 기운으로 가득 채우는데 10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탈들이 살아있고 기(氣)가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는 필자에게 “느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기운은 말로써 설명하기 어렵다. 몸으로 느껴보면 이해하기가 쉽다”고 권한다. 그는 마음에 드는 탈 앞에 서서 손을 가슴 높이로 가볍게 들어 조용히 느껴보라고 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탈을 향해 손을 가볍게 들고 섰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손가락 끝에서는 가벼운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순간 깜짝 놀랐다. 하지만 ‘팔을 들고 서있으니 피가 잘 통하지 않아 생기는 작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랬더니 손바닥 전체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기이한 체험이었다. 그것이 기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 이상한 기운은 손을 통해 느껴졌다. 탈이 주는 첫 느낌이었다.

탈 박물관에 전시된 탈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 ‘음양의 탈’과 ‘새생명의 탈’이라고 한다. 새 생명의 탈 앞에서 섰을 때 또 한 번의 짜릿한 체험을 했다. 탈의 기운은 온몸을 움직이게 했다. 팔을 들게 하고 다리를 올리게 하고, 나중에는 몸을 밀치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두세 걸음 뒤로 밀리기도 했다. 지켜보고 있던 이도열 관장은 “모든 자연은 살아있다. 그것은 사물도 마찬가지다. 사물에 상념의 기가 모일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반대로 그 사물의 기운(氣)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참선이나 기공을 수련한 사람들은 그가 만든 탈에서 기가 흐른다고 장담한다. 이도열 관장이 만든 탈에서 정말 기운이 흐르는지 보고 간 한국초능력학회 한 회원은 “그가 만든 탈에서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愛愛惡欲)의 칠정(七情)과 음양오행이 배어 나온다. 그가 만든 어떤 탈은 앞에 서면 울음이 나올 것 같은 한스러움이 파장으로 전해져 온다”며 말하기도 했다. 일반인 가운데는 50% 가량이 느낀다고 한다.

이도열 관장은 모든 사물이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돌, 나무 등 모든 사물에는 에너지가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가 부르는 탈 노래는 자연과 교감을 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이관장의 탈 노래나 탈에 대한 강의를 듣던 사람들 중에는 까무러치거나 저절로 질병이 치유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한다.

그는 탈 노래를 부를 때 탈을 바라보며 그 기의 흐름에 따라 노래를 한다. 눈을 감고 탈의 형상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노래는 나온다. 그의 탈 노래는 일정한 박자나 유형이 없다. 그저 자연에 내맡겨 기의 흐름을 따라 부른다고 한다. 가슴 저 밑에서 솟구쳐 오르는 듯한 그의 노래는 부정한 앙금들을 바닥까지 씻어내는 느낌을 준다. 이도열 관장은 “하늘과 자연의 움직임대로 기를 내뱉는 노래로 음과 양을 조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탈을 만들 때도 단순히 탈의 형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영감에 의해 탈이 갖고 있는 탈의 시, 노래, 춤을 함께 만든다. 그것들을 모두 갖추었을 때 진정한 의미의 탈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탈에 쏟는 이도열 관장의 열정은 자식사랑 이상이다. 그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 그리고 나무에 묻어있는 좋지 못한 기운을 쫓아낸다. 요사하고 사악한 모든 것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식이다.

그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람과 마주앉으면 그에게 영감이 전해지고, 그는 그것을 그림문자로 옮긴다. 그리고 풀어놓으면 그 사람의 건강, 미래, 심리상태까지 나타난다.

그는 탈 작업을 하며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을 자주 경험하곤 한다. 지난 94년에는 제작 중이던 탈을 마무리하던 중 눈과 이빨 부분의 검은색바탕에 흰 색칠을 한 뒤 색깔이 변하지 않도록 코팅을 했다. 제작과정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도열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칠해놓았던 탈 10개의 이빨과 눈의 색깔이 노란 색으로 변하는 일이 발생했다. 물리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작업공간에 다른 사람이 출입한 흔적도, 색칠할 이유나 시간도 없었다. 고민하던 이도열씨는 탈의 정령(精靈)이 장난을 친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탈을 작업하며 과학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을 적지 않게 겪어온 탓이다. 그 탈은 지금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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