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위해 조용한 조력자로 남겠다”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지 10개월여만에 돌아온 이재오 전 의원이 29일 오후 구산동 자택에서 외손자(강라온)를 안아보고 있다.

친이계의 좌장, 투사형 의원, 왕의 남자. 갖가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이재오 전 의원이 복귀 후 조용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이 복귀하기 전부터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난무했다. ‘개각과 함께 정부 요직에 들어간다’, ‘4월 재보선에 나온다’, ‘물밑에서 친이계를 움직일 것이다’ 등 의견들이 분분했다. 특히 친박계에선 이 전 의원의 복귀 자체를 ‘전쟁’이라고 선포하면서 극구 반대했다. 이런 와중에 이 전 의원은 측근 의원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고 조용히 귀국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이 당분간은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 탄생의 주역인 이 전 의원이 어떻게든 자신의 역할을 찾아서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전 의원의 복귀로 한나라당 계파간 갈등이 어떻게 표출될지도 관건이다.

이 전 의원은 귀국 후 특별한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자신의 지역구였던 은평구 주변을 돌아보며 지역구민들에게 귀국인사를 다니는 게 고작이다.


친이계 역할론 대두

이명박 대통령과의 만남도 후일을 기약한 상태여서 당분간 정치권 행보는 자제할 것이라는 게 이 전 의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다르다. 이 전 의원이 가만히 있는다고 말해도 그를 정점으로 한 권력 암투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친박계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의 귀국이 한나라당 계파간 싸움에 불을 지를 수 있는 휘발유와 같다. 지금이야 여기 저기 눈치 보는 곳이 많지만 조만간 임무를 부여 받고 일부분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친이계 의원들 중 이 전 의원계 인사들이 상당수 있다. 친이계 구심점 역할을 본인 스스로는 거부할지 몰라도 친이계 인사들은 다르다. 현실 정치에 복귀해 친이좌장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친박과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며 친이계와의 대립이 조만간 형성될 것이라 주장했다.

이런 정치권의 시각에 대해 이 전 의원 본인은 거부감을 나타냈다. 귀국에 앞서 자신의 귀국을 친이계 의원들에게 조차 알리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귀국이 현실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자신의 귀국으로 인해 한나라당이 내홍에 휩싸이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긴 것 같다. 귀국 후 현실정치는 일선 정치인들에게 맡기겠다는 의미의 발언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과 정치권의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동안 친이계와 MB정권을 출범시킨 공신들이 모래알처럼 결집하지 못하면서 MB정부 초기 상당한 내환에 시달렸던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친이계 인사들이 이 전 의원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전했다.

당장 코 앞으로 다가온 당협위원장 선출 문제와 5월 원내대표 경선 등에서 친이계가 일정 부분 세력을 넓히려 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당협위원장 선출 문제는 원외 친이계 인사들과 복당한 현역 친박 의원들 사이에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전 의원의 차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실제 친박계에서는 원외 당협위원장을 막후에서 조종하는 것이 이 전 의원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친박계 관계자는 “국내에 있지도 않았던 이 전 의원이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배후 세력이라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당협위원장 선출 문제는 향후 당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와 이 전 의원간에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 2004년 대표 경선에서 이 전 의원은 박 전 대표에게 ‘독재자의 딸’이라며 직격탄을 날렸고 이후 둘 사이의 관계는 등을 돌린 상태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박 전 대표와 이 전 의원 사이의 관계는 되돌리려 해도 되돌릴 수 없는 관계다. 대표 경선 후 대통령 경선에서도 서로의 약점을 건드리며 헐뜯었다. 그러다 18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친박계 인사들을 공천 탈락 시키는데 앞장섰던 것도 이 전 의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의원을 축으로 하는 친이계와 친박간의 갈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고 말했다.

친이계의 핵심축인 이상득 전 부의장, 정두언 의원과의 관계정립도 이 전 의원의 정계 복귀에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 전 부의장은 친이재오계와 관계 정립을 새롭게 하기 위해 물심양면 노력해왔다. 계파를 막론하고 MB정권 성공을 위해 화합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낸 바 있다.

이 전 부의장도 이 전 의원의 복귀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었다.

정 의원도 마찬가지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 의원은 “이 전 의원을 싫어하지 않는다. 정권창출에 일등 공신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지금은 조용한 행보를 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며 정계 복귀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MB정권의 성공을 위해서 범 친이계가 화합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전 의원의 국내 복귀는 친이계로선 화합의 길로 가는 구심점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이 전 의원은 자신을 지칭해 ‘일원산 촌놈’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이 태어난 곳이 워낙 시골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애착도 강하다.

1945년 경북 영양출생인 이 전 의원은 경북 영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은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의 연속이었다. 소작농이었던 부모 밑에서 어렵게 자란 탓에 절약정신이 몸에 뱄다고 한다.

졸업 후 대학은 자신과는 먼 얘기였다. 형제들 모두 농사를 짓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전 의원이 대학을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배워야 한다는 집념하나로 공부에 매진했고 4년 장학금을 타면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다 중앙대 재학시절 한일회담 반대 투쟁 운동을 시작했다. 여기서 당시 고대에서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이끌던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 전 의원은 6.3항쟁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제적을 당하게 됐다. 이 전 의원은 이 때문에 옥고까지 치르게 된다. 이후에도 군부 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긴급조치 9호 위반 등 5번이나 투옥을 당한다.

6.3 항쟁으로 중앙대에서 재적당한 이 전의원은 72년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해 국어교사로 임용된다. 이 때문에 이 전의원의 닉네임은 국어선생님이다.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의원시절 의정보고서의 토씨 하나하나를 깐깐하게 고쳐 얻은 별명이 ‘국어선생님’이다.

이 전 의원이 정계에 뛰어든 것은 1990년 민중당 창당 때부터다. 당시 이 전 의원은 사무총장으로 14대 총선에서 지금의 지역구인 은평구에 출마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정치 신인에게 원내 진입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던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 인생에 결정적인 인사를 만나게 된다.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공천을 받은 이 전 의원은 신한국당 후보로 당선되면서 화려한 정치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MB의 남자로 거듭나

이후 자신과 함께 6.3운동을 전개했던 이 대통령이 2002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자 선거대책 본부장을 맡는다. 당시 김민석 후보에게 뒤지는 상황에서 ‘청계천 공약’을 내세우며 역전해 본선에서도 이 대통령을 서울 시장에 당선시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때부터 이 대통령과 이 전 의원 간에 상당한 교류가 형성됐고 차후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서도 맹활약해 MB정권을 탄생시켰다. 학창시절부터 인연이 된 이들의 관계는 웬만한 측근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 의원의 복귀는 이 대통령에게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MB정권의 실패는 자신의 정계은퇴라고 말하는 이 전 의원. 친이 좌장인 이 전 의원의 귀국이 집권 2기를 맞은 MB정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재오 프로필

▶ 1945년 1월 11일 경북 영양 출생
▶ 1963년 경북 영양고등학교 졸업
▶ 1963년 중앙대학교 입학, 65년 제적
▶ 1966년 국민산업대 입학, 70년 졸업
▶ 1972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 1996년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32년만에 졸업
(63항쟁으로 제적된후 30년만에 복학)
중앙대학교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 수위
▶ 2001년 한나라당 원내총무
▶ 2002년 한나라당 이명박 서울시장후보 선거대책 본부장
▶ 2002년 제 32대 서울시장 직무인수위원회 위원장
▶ 2002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 2003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 2004년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5년 국회 대법관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5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 2006년 국회문화예술연구회회장
▶ 2006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 2008년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한반도대운하태스크포스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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