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 남용하지 말아야”

지난 4일 서초동 대검찰청에 개관한 '검찰체험관 Prospia' 오픈식에 참석한 임채진 검찰총장이 행사가 끝난 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결과와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임채진 검찰총장이다. 특히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어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 총장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둘 사이의 미묘한 기류가 이번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건이다. 한편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며 기획통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임 총장은 검찰 내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 장악력을 높이 평가받은 바 있다. 깐깐하기로 소문 난 임 총장의 가치관과 삶을 들여다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가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구속수사를 할 것인가에 세간의 초점이 맞춰진 상태다. 이번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임채진 검찰총장은 독자적인 판단으로 구속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정치권과 일반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불구속 수사를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수사팀의 경우 원칙대로 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임 총장은 신중한 판단을 하기 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임 총장과 노 전 대통령의 특별한 인연이 어떻게 작용할 지 주목되고 있다.

임 총장은 지난 2007년 11월 참여정부 임기 말 임명됐다. 당시 유력한 모 인사가 신변상의 이유로 제외되면서 법무연수원장이었던 임 총장이 급부상하게 됐다.

당시 청와대 안팎에서는 임 총장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임 총장이 워낙 기가 센 편이고 자신의 소신을 분명하게 피력하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임기말 등용

법조계 한 인사는 “임 총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 판단한 일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이런 모습은 당시 청와대에서 ‘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인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임인 정상명 검찰총장이 “총장자리는 조직을 어떻게 장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이런 면에서 임 총장이 적임자다”라며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한다.

결국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에 임 총장을 내정했다.

그러나 곧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삼성 떡값 검사에 임 총장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의구현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과 관련해서 법조계 관리대상자 3명 중 한명으로 임 총장을 지목했다.

당시 전종훈 신부는 “임채진 내정자는 고등학교 선배인 이우희 구조조정본부 인사팀장이 관리 담당자로 있었으며 현금이 정기적으로 제공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주장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은 김용철 변호사의 주도로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임 총장이 거론된 것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임 총장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삼성으로부터 어떤 청탁이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없다. 김용철 변호사와 만난 적도 없고 왜 로비대상 명단에 들어가게 됐는지 아는 바 없다”고 해명했다.

로비 대상자였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청와대는 이를 개의치 않고 임 총장 임명을 강행했다.

이런 인연으로 임 총장이 혹시나 노 전 대통령을 구속수사 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주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임 총장을 잘 아는 지인들은 괜한 노파심이라며 일축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임 총장은 공과사를 확실하게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원리원칙을 중요시한다. 이런 면에서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공적인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신 있는 발언으로 화제

임 총장의 이런 성격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2004년 법무부 검찰국장 재직 시 당시 여권에서 ‘공직부패수사처’를 신설할 것을 요구하자 “옷을 벗으면 벗었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중수부 폐지, 형사소송법 개정 등 논란이 제기되는 현안에 대해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 법무부 장관에게 직언하는 등 소신 있는 발언을 하기로 유명했다.

법조계의 또 다른 한 인사는 “당시 내부적으로도 많은 갈등을 빚고 있는 현안들에 대해서 중재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런 면에 있어서 리더십도 갖춘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서울중앙지검장 때는 기업인들의 수사에 대해서 ‘비겁한 짓’이라고 꾸짖기도 했다. 당시에는 수뢰혐의로 조사를 받던 기업인들을 탈세 등 다른 혐의로 압박하는 수사 방식이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이를 임 총장은 비겁한 짓이라며 비난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중 굵직한 대형 사건들인 ‘법조비리’, ‘바다이야기’ 사건 등을 깔끔하게 처리해 관심을 집중시켰다. 특히 ‘일심회’사건에서는 청와대 386인사들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 만큼은 대쪽 같은 남자

임 총장은 항상 후배들에게 “검찰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를 남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한다.

또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취임하면서 “검찰은 수사의 양적 확대 보다는 수사의 질과 품격을 높여야 한다. 또한 검찰이 인권을 침해하는 일은 검찰 제도의 본질을 모욕하고 자존심에 훼손이 가는 행위”라며 인권 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임 총장은 이런 확고한 의지와 소신 있는 모습 때문에 항간에서는 다가가기 힘들고 깐깐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임 총장은 자신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취임식에서 임 총장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취임사 원고를 곧바로 읽지 않고 직원들을 향해 “얼굴이 굳어 있는 직원들이 있는데 편하게 하자”면서 “내가 엄격하기로 소문이 나서 그런 것 같은데 함께 일을 했던 직원들은 나를 ‘따뜻한 사람’이라고 평한다”며 분위기를 풀었다.

자신의 강경하고 딱딱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신경을 쓰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다.

임 총장은 ‘청명정온’을 삶의 모토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은 ‘맑고 밝고 바르고 따뜻하다’는 말로 평상시에 임 총장이 ‘마음엔 평화가, 얼굴엔 미소를’이란 글귀를 생각하며 삶의 신조로 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을 제외한 일반적인 모습일 것이다. 일에서 만큼은 ‘부드러운 남자’ 보다는 ‘대쪽 같은 남자’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올해 시무식에서 임 총장은 “세계적 불황을 위해 기업 활동이 자유롭고 생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기업 신용을 훼손하는 행위, 주가조작 및 부정한 인수합병, 기업자금의 불법 정치자금 및 뇌물 유용 등을 집중 단속하라고 지시했었다.

임 총장은 “민주적인 기본 질서를 공고히 하는 게 기본 전제가 돼야 한다”며 “법질서를 확립해야 경제난을 타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친북좌익 이념으로 사회 혼란을 야기시키는 세력의 발본색원과 불법집단 행동에 대한 엄정한 대처를 주문하기도 했다.

임 총장은 또한 부정부패에 대한 강력한 수사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부정부패는 일류국가로 한 단계 올라서는데 걸림돌이 된다. 특히 권력형 비리는 어떤 성역도 없이 철저하고 엄정하게 처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첫 번째 대상자가 자신을 믿고 임명했던 노 전 대통령이 될 줄은 당시엔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공과사를 구분할 줄 아는 임 총장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에 합당한 이유가 국민들에게 공감을 산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한편 임 총장은 1952년생으로 경남 남해 출신이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77년 사시 19기로 검사로 임명됐다.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법무부 검찰국 검사,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등 평검사 시절을 요직에서 보냈다.

1995년 대검찰청 범죄정보관리과 과장, 법무부 검찰 제2과장, 서울지방검찰청 형사6부장 검사를 거쳐 대전지방검찰청 차장검사까지 승승장구했다. 2004년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2007년 11월 36대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임채진프로필

▶ 생년월일 1952년 4월 12일
▶ 출 생 지 경남 남해 출생
▶ 학 력 1971년 부산고등학교 졸업
197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경 력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 합격
1979년 동경사 보통 군법회의 검찰관
1982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1988년 법무부 검찰제4과 검사
1990년 법무부 검찰국 검사
1991년 춘천지방검찰청 속초지청 지청장
1995년 대검찰청 범죄정보관리과 과장
1996년 법무부 검찰 제2과 과장
1998년 서울지방검찰청 형사6부장검사
1999년 대전지방검찰청 차장검사
2000년 수원지방검찰청 차장검사
2002년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장
2004년 법무부 검찰국 국장
2006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2007년 법무연수원 원장
2007년 11월~ 대검찰청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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