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벽 넘고 16강 달성” 을 잇는다

지난 17일 서울워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 한국과 이란의 경기에서 박지성이 동점골을 성공시키고 환호하고 있다.

대한민국 ‘허정무호’가 7년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20년 만에 무패로 본선에 진출해 더욱 값진 선물이었다. 대표팀이 이런 성적을 거둔데에는 선수들과 감독, 코칭스태프의 노력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캡틴’ 박지성의 활약은 대단했다.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하면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독려하며 종횡무진 활약한 박지성. 이제 그의 어깨엔 본선 16강이란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역시 박지성이었다.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인 이란과의 홈경기에서 천금 같은 동점골로 ‘허정무호’의 무패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박지성의 골은 경색돼 있는 남북한의 본선 동반 출전에도 한몫해 더욱 값진 골이었다.

박지성은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모든 공을 동료선수들에게 돌리며 “승리하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남겼다.

박지성의 이런 말은 그가 매 경기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솔직히 지난 이란전은 대표팀의 정신력이 해이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다. 일찌감치 본선진출을 확정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지성은 달랐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던 박지성은 마지막 경기란 없었다.

한 축구전문가는 “박지성은 축구를 즐기는 선수다. 경기장 안과 밖에서 확연하게 달라진다. 연습을 할 때는 자유롭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눈빛부터 달라진다”고 말했다.

특히 박지성이 주장을 맡으면서 팀 내 분위기는 상당히 좋아졌다. 연습 할 때는 후배들과 장난을 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코칭스태프의 전달사항에 대해서도 많은 말을 하지 않고 할 말만 전달한다. 대표팀이 세대교체를 하면서 젊은 선수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개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준다. 이전의 주장이었던 홍명보, 이운재, 김남일이 무게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이었다면 박지성은 솔선수범형이다. 자신이 먼저 나서서 행동으로 보여주면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박지성이 카리스마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카리스마는 경기장에서 발휘된다. 그의 날카로운 패스와 돌파력, 한수 앞을 예상하는 움직임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선진유럽 축구 최고 명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박지성의 움직임은 후배들에게 모범이 된다. 이는 젊은 선수들을 주눅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투지 넘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박지성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로 다독이는 것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며 젊은 피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 빛 발하는 스타

박지성은 소속팀 맨유의 살인적인 경기일정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13경기 중 10경기에 선발로 출장했다. 10경기에 출전하면서 뛴 시간은 983분으로 대표 팀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그라운드에서 누볐다. 이렇다 보니 그의 발은 온전한 날이 없을 정도였다. 피멍은 예사였고 발톱이 깨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자신의 발을 이렇게 혹사하면서도 그는 대표팀의 대들보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박지성이 이번 최종예선에서 터트린 골은 모두 3골이다. 경기당 많은 골수는 아니지만 모두 결정적인 한방들이었다. 팀이 위기에 놓여 있을 때 한 골씩 터트려 주는 스타플레이어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한 축구 전문가는 “박지성의 골은 1골 이상의 값진 골이 대부분이었다. 동점골 내지는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한국 축구를 살렸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팀에서 박지성의 존재감은 상상 이상”이라고 평했다.

이는 비단 최종예선전에서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그의 A매치 골을 살펴보면 더욱 여실히 증명된다.

박지성의 극적인 골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난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과의 결승골과 2006년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프랑스와의 동점골이다.

지난 2002 한일월드컵은 박지성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그러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골은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최고의 골이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동점골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최강 프랑스를 맞아 투지를 불태운 박지성은 천금 같은 동점골을 터뜨리며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축구팀을 구해냈다.

이 만큼 박지성은 큰 경기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넣은 A매치 11골 중 4골은 동점골로, 3골은 결승골로 장식했다. 박지성의 골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에 터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하는 박지성은 매번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거나 도움을 주는 등 활발한 활약을 펼쳐왔다. 지난 최종예선전의 최대 고비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이란 원정에서도 박지성의 진가는 여실히 증명됐다.

19년간 사우디 원정에서 승리를 이루지 못한 대표팀은 2-0이라는 완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서 박지성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팀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이란과의 원정경기에서는 박지성이 천금 같은 동점골을 터트렸다. 당시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티움은 6만명의 이란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이 상대팀으로 하여금 기죽게 만들었다. 여기에 고지대에서 벌어지는 원정경기는 우리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 박지성은 더욱 빛을 발했다.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36분 기성용의 프리킥을 골키퍼가 쳐내다 문전 쇄도하던 박지성이 다이빙 헤딩으로 슈팅해 골로 연결했다. 박지성의 골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 위한 최대 고비를 순조롭게 넘기는 의미 있는 골이었다.

박지성은 진가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의 강인한 체력도 상대팀을 두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박지성은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A매치 11골 중 후반전에서만 8골을 기록했다. 박지성의 골이 후반전에 몰려 있는 것은 그의 강인한 체력에 그 이유가 있다. 상대 수비수들이 지쳐있는 후반전에 박지성은 지쳐있지 않은 것이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수비수들을 파고들어 찬스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들다.


남은 기간 문제점 보완해야

박지성이 대표팀의 대들보로서 비중도가 높아질수록 또 다른 고민도 생긴다. 박지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그가 빠진 경기와 뛰는 경기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특정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박지성의 무릎부상으로 뛰지 못했던 지난 2007년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은 3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둔바 있다.

허정무 감독도 특정선수에 대한 의존도 때문에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을 맡았던 허 감독은 와일드카드로 홍명보를 선발했다. 홍명보를 통해 흥분하기 쉬운 젊은 선수들을 컨트롤 시키고 수비를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홍명보는 본선을 앞두고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해 본선 출전이 좌절됐다.

홍명보가 빠진 수비진을 보강하기 위해 고심 끝에 허 감독은 강철을 선발했지만 이는 미봉책이었다. 결국 2승1패의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스페인전에서 0-3 완패를 당한게 발목을 잡고 말았다. 골득실차에서 뒤진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쓴맛을 봐야 했다.

만에 하나 박지성이 경고누적이나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를 대신할 만한 선수를 발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년여 앞둔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을 대비해 허 감독이 준비해야 할 것은 또 있다. 바로 유럽의 벽이다. 허 감독은 이란과의 경기를 마친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유럽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감독은 “본선에 나가보면 항상 유럽팀이 2팀이었다. 우리의 목표를 위해선 유럽의 벽을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치러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제외(4승 2패)하면 유럽 팀과의 전적에서 4무 8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갖고 있다.

16강이 목표인 대표팀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유럽팀들과 친선경기를 통해 유럽징크스를 깨야만 한다.

물론 이전과 달리 대표팀 선수들 중에 유럽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많은 점은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이 가운데 박지성은 유럽 최고의 명문 클럽에서 주전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고 있기 때문에 희망적인 측면이 있다. 박지성 이외에도 약 10여명의 선수들이 유럽리그에서 뛰고 있어 어느 때보다 유럽축구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한 것도 사실이다.

남아공월드컵에서 꿈의 16강을 달성하기 위해 이제 준비할 시간은 1년여 남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실전 경험을 쌓고 예선전에서 돌출된 문제점들을 잘 보완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도 있다. 이 가능성을 높이는 데 박지성의 역할은 팀 내 독보적이다. 과연 박지성이 어떤 모습으로 대표팀을 이끌고 목표를 달성할 지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