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문제 일으켜” vs “민주노총이 99% 도발”

성남시 금광1구역 재개발 현장에 걸린 현수막 [사진=황기현 기자]
성남시 금광1구역 재개발 현장에 걸린 현수막 [사진=황기현 기자]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 따르면 국내 노동조합의 수는 5868개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의 숫자는 233만1000명으로 2017년에 비해 24만3000명(11.6%) 증가했다. 전체 조직대상 노동자(임금 노동자 수에서 노조 가입이 법으로 금지된 5급 이상 공무원이나 군인, 경찰 등을 제외한 수) 수 대비 조합원 수 비율을 나타내는 노조 조직률 역시 동기 대비 1.1%포인트 증가한 11.8%에 달했다. 노동자들의 인식이 개선되며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노동조합 가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띄는 점은 노조 조합원의 대부분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41.5%·96만8000명) 혹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40.0%·93만3000명) 소속이라는 것이다. 이들 두 노총이 한국 노동계의 ‘공룡’으로 불리는 이유다.

성남 금광1구역·청량리4구역 등 곳곳서 충돌
노총 지지 받은 文정부는 ‘난감’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동조합의 활동은 응원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부 건설업 현장에서는 ‘공룡 노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전국 건설 현장 곳곳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 금광1구역 아파트 공사 현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9일부터 양대 노총 조합원들이 집회를 벌였다. 아파트 39동에 5320가구가 건설되는 대규모 현장에 골조 공사를 맡은 업체 측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만 120명을 고용하자 한국노총이 공정한 기회 보장을 이유로 집회에 나선 것이다.
한국노총은 24시간 집회 신고를 한 뒤 오전 5시 30분경부터 오후 7시 안팎까지 온종일 집회를 진행했다. 조합원 중 1명은 20m 높이의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자 민주노총도 조합원 보호를 이유로 맞불 집회를 벌이기 시작했다. 고성과 폭언, 몸싸움이 오가는 집회에 8명이 폭행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다. 오는 2022년 11월 완공을 목표로 하던 공사 역시 20일 가까운 기간 중지되며 차질을 빚었다.

‘폭언’ ‘욕설’ 난무한 집회 현장
인근 지역 초등학생들은 ‘무섭다’ 토로

지난 20일 찾은 현장에서는 양대 노조의 충돌이 고스란히 주민 피해로 돌아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집회를 벌인 금광1구역 재개발 현장 8-1번 출입구 바로 옆에는 금상초등학교가 있었다. 주변은 빌라와 원룸 등이 밀집한 주거지역이었다. 이날 양대 노조는 집회를 진행하지 않았지만, 20일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주민들이 입은 피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양대 노조의 집회 현장에서는 폭언과 욕설은 물론 몸싸움까지 난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8-1번 출입구 인근에는 주민들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0여 개의 현수막은 ‘아이들이 보고 있다! 공포분위기 조상마라!’, ‘무서워서 못 살겠다!! 건설노조는 공포 조성 하지마라!’, ‘아이들이 공포 분위기에 집밖을 못 나간다! 집회를 즉시 중단해라!’, ‘시끄러워 못 살겠다! 너희는 가족도 없냐?’ 등 양대 노조를 규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정면 돌파’, ‘단결’ ‘투쟁’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건설 노조의 차량은 주민들의 호소와 대비돼 아이러니함을 자아냈다. 금상초등학교 앞을 지나는 57번 버스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은 “방학이라 학교를 안 간다”면서도 “시끄럽게 소리 지르고 싸우는 걸 보며 무서웠다. 친구들도 무섭다고 했다”고 토로했다.
무섭기는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인근 식당 사장 A씨는 “(양대 노조의 집회 때문에) 매일 같이 난리도 아니었다”라며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장사도 잘 안 되는데 새벽부터 몰려와 싸우니 스트레스가 막심했다”고 호소했다. 근처 빌라에 거주중이라는 B씨 역시 “새벽 확성기 소리에 깬 적이 있다”라면서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아침 시간 1분 1초가 소중한데 당연히 짜증났다”고 비판했다.

주민 여론 인식한 양대 노조
‘협의체’ 구성에 집회 ‘잠정 중단’

주민 여론이 악화되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한 발짝 물러섰다. 성남시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지난 17일부로, 한국노총은 20일부터 집회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성남시와 고용노동부, 주민·학부모 대표 등이 ‘금광1 재개발사업 양대 노총 집회 대책협의회’를 구성한 뒤의 일이다. 시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지난번에 한창 격렬하게 집회를 할 때 주민피해가 가중되다 보니까 성남시랑 고용노동부랑 공동 주관해서 주민 위주의 대책협의회를 꾸렸다”라면서 “대책협의회에서 입장문을 채택해서 양측 노조와 대림산업에 전달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2월 17일에 집회 중단을 선언해 계속 안 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20일부터 집회를 잠정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협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대림산업하고 협력사, 양대 노총이 계속 협의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어느 정도 마무리 되니까 집회를 풀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양대 노총도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현재 (충돌은) 약간 소강상태인 거 같다”면서도 “뭔가 진전이 있는 건 아닌 거고”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관계자는 “어쨌든 문제를 일으킨 쪽은 한국노총이신 거다. 자기들도 일자리 달라고”라면서도 “여론이 안 좋아지니까 한국노총이든 민주노총이든, 그렇다보니까 그쪽도 약간 부담이 있어서 약간 소강상태인 거 같은 그런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공개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여러 논의가 내부에서 있고 반응도 보고 있다”면서 “매일매일 그렇게 (충돌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부연했다.
한국노총 측 역시 “민주(노총) 쪽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다 보니까 지금 소강상태인 거 같다. 협의체하고 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저희는 민주(노총)가 시비를 안 걸면 대응을 안 한다. 우리 조합원이 타워 점거하고 있는 중이지 않느냐. 그래서 식사를 챙겨줘야 한다”며 “민주가 식사 들어가는 걸 막는다. 굶겨 죽인다고. 저희가 당연히 밥은 먹여야 하니까, 그때나 부딪힐까 저희가 싸움을 걸거나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거의 99%는 그쪽에서 도발한다. 밥이 들어가야 하는데 (민주노총이) 경찰도 못 들어가게 한다. 우리 조합원이 위에서 춥게 있는데 밥도 못 먹으면 어떻게 하냐”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 분들이 항시 계시니까 큰 싸움은 안 일어나는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양대 노조의 다툼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지난 20일 확인한 현장에서는 공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이권 다툼’ 이어져

문제는 이러한 노조의 충돌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 개포 8단지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자신의 노조원들의 우선 고용을 요구하며 충돌한 바 있다. 당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안전교육장에 진입하려던 한국노총 조합원들을 막아서며 몸싸움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13명이 경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고 7명은 타박상 등으로 현장 치료를 받았다.
갈등은 올해도 계속됐다.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따르면 동대문구 청량리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공사장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다툼을 벌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 30여 명과 민주노총 조합원 10여 명이 대치 중인 것을 확인하고 현장 계도 조치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고성이 오갔지만 몸싸움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14일과 15일, 17일에는 경남 합천군 핫들지구 마을정비형 공공주택사업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기사 선정을 두고 한국건설노동조합(한건노)과 한국건설노조총연맹·민주노총이 대립각을 세우며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합천경찰서는 40여 명의 경찰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고, 3개 노조에서 100여 명의 노조원들이 집회에 참가해 확성기를 통해 서로의 주장을 내세웠다.
이처럼 양대 노조의 이권 다툼이 심화되며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문 정부가 자신의 대표적 지지 세력으로 알려진 노조의 밥그릇 싸움에 섣불리 끼어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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