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WTO제소, 다음 수순 결합심사승인 거절할까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7만㎥급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 설비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7만㎥급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 설비 [현대중공업]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올해부터 적용되는 해양 환경 규제 강화가 한국의 조선업에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일본이 한국 조선업의 발목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달 31일 세계무역기구(WTO)에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지분 취득을 위한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구조조정 관련 조치 등을 두고 분쟁해결절차상 양자협의를 요청했다.

 

빅2 글로벌 조선업 생산능력 20%, LNG 분야 전 세계 60% 차지

日, ‘한국 발목 잡기’…WTO 제소 경제산업성 전문가 지원 투입 

 

일본은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5970만 주를 현대중공업에 현물 출자하고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으로부터 전환주 912만 주와 보통주 610만 주를 받기로 한 내용과 함께 추가적인 1조 원 재정지원 약속 등을 문제 삼았다. 

앞서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8년에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을 문제 삼으며 WTO에 분쟁해결을 요청한 바 있어 일본의 한국 조선업에 대한 발목잡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WTO 관련 양자협의 요청 주체가 일본 ‘국토교통성’으로 기업결합 심사를 주관하는 ‘공정취인위원회’와 다르므로 이와는 무관하다”고 공식적으로 밝힌바 있다. 즉 우리 정부의 보조금이나 지원 등에 대한 부분을 두고 제소한 것으로 기업결합 승인과는 관계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일본의 이번 제소 과정을 들여다보면 WTO제소 경험이 있는 경제산업성 등에 소속된 전문가들이 국토교통성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를 지원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만에 하나라도 일본이 승소하게 된다면, 한국 조선업 두 기업의 합병에 반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 조선업, 글로벌 점유율 일본의 3배 넘어

현재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과 초대형 유조선(VLCC) 등 고부가가치 선박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60~70%로 이미 압도적이다. 이와 함께 까다로운 규제가 지속되는 환경은 우리나라 조선업 확장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풀이도 이어진다. 

국제해사기구(IMO)의 CO₂ 및 질소·황산화물 배출 규제에 따라 글로벌 조선사들이 기존의 디젤 선박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경오염물질 배출량이 적은 LNG 연료선 등의 건조에 나서고 있지만, 한발 앞서 LNG 관련 선박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해온 우리나라 조선업계는 이미 이 분야를 90% 이상 선점 및 독점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2014년 기준 3.6% 수준에 머무르던 LNG추진선의 비중은 현재 약 13%까지 성장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조선해양 분석기관 클락슨 등에 따르면 향후 5년 안에 전 세계 신조발주 시장의 60.3%를 LNG 연료추진선 시장이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따른 우리나라 조선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함께 확대될 전망이다. 

조선소별 LNG선 건조현황 [클락슨]
조선소별 LNG선 건조현황 [클락슨]

LNG추진선에 이어 LNG 선복량에서도 우리나라가 상대적 우위에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 글로벌 LNG선 선복량은 총 582척으로 이 가운데 우리나라가 373척(64%)을 차지했고 뒤이어 일본 131척(23%), 중국 38척(7%), 기타 40척(7%)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우조선해양 145척, 삼성중공업 124척, 현대중공업 92척에 이어 일본 기업 MHI 57척, 가와사키 35척 그리고 중국의 후동중화 20척 등의 순으로 확인된다. 

2016년에서 2017년 초만 하더라도 일본의 조선업 수주량은 1위 중국에 이어 한국과 2,3위를 다투는 수준이었고, 당시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비롯한 중소형 업체들의 문 닫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지원과 조선업계의 자체적인 변화 시도에 성공하며 지난해는 중국과 나란히 1,2위를 다투는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지난해 일본은 글로벌 조선업 점유율 8% 선에 머물며 한 자릿수 점유율로 실적 부진을 면치 못했고 우리나라 조선업은 28~30% 수준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일본 조선업 위기, 한국 빅2 막아라

조선업 부진에 빠진 일본이 우리나라 조선업계 빅2 기업의 결합에 따른 대형조선사 탄생을 반대하는 것이 일본 조선업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최종적인 견제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IMO환경 규제 따라 LNG 위주로의 전환을 잘 준비해온 한국 조선업을 견제하기 위한 최종 카드로 결합 반대를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즉 일본과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한국 조선업의 발목이라도 잡기 위해 내밀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결합 반대인데 이번 WTO 제소가 이를 위한 전초전이 되는 셈이다. 

특히 현재 단행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나 무역 관련 문제 등 복잡한 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 조선업의 결합 승인 요청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업계의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국내 빅2 조선사의 결합 과정에 앞서 일본의 공업전문지 일간공업신문은 “세계적 과잉선복 가운데 낮은 비용을 무기로 삼은 한국과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으로 일본 조선업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어 (일본)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사이토유지 일본 조선업회장의 의견을 인용 보도했다.

사이토유지 회장은 “매우 위협적이고 압도적인 대형 조선그룹의 탄생을 각국의 (기업결합심사)승인 당국이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저가 수주나 공정 경쟁이 왜곡되지 않도록 국제 공조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본의 조선업을 지키기 위해 민간이나 기업의 힘이 부족한 곳은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카자흐스탄 승인 당국은 지난해 10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결합심사를 승인했고, 현재 EU와 싱가포르, 중국 등은 2단계 심사 과정에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도 빅2의 기업결합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WTO제소를 단행한 일본은 아직 심사 전 과정인 사전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어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는 만큼 결과를 단정 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승인을 위한 심사국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EU, 중국, 일본,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등 총 6개국이지만 이 가운데 한 곳만 반대하더라도 모든 과정을 원점에서 다시 준비해야 한다.

일본이 자국 조선업 보호 차원에서 결합을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의견도 있으나, 조선업 부진이 심각한 일본도 특정 상황이 도래하면 결합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 때 우리나라와 입장이 바뀌게 되므로 굳이 모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결합심사는 기준을 두고 그에 맞춰 심사를 하므로, 일본이 글로벌 공정거래 컨센서스 범위 밖의 판단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동일한 판단 기준을 근거로 승인했음에도 일본만 이를 거절한다면 글로벌 경제를 거스르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올 상반기 안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6개국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심사 통과 소식이 들릴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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