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당들마다 선거준비로 바쁘다. 공천 열기로 뜨겁다. 문제는 선거가 60일도 안 남았는데 아직 선거구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선거법이 지난 해 패스트 트랙 사태 속에서 늦게 개정되면서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아마 예년처럼 40여 일 앞두고 선거구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는 인구 비례에 따라 조정되는데, 몇몇 지역 후보들은 선거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 지금 각 당은 후보 공천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인데, 경기장도 정하지 못하고 팀과 선수들만 워밍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꼴이다.

선거구는 중앙선관위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라는 이름도 낯선 곳에서 결정한다. 공직선거법에 획정위가 독립적으로 결정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현실은 다르다. 선거구를 어떻게 정할지 하는 문제는 사실 국회에서 각 정당들 간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중앙선관위 산하 획정위가 일을 하려면 국회가 획정에 필요한 ‘인구상하한선 기준’과 ‘시도별 국회의원 정수’를 결정해서 보내줘야 한다. 관례상 그렇게 한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살릴 선거구와 죽일 선거구를 결정한다. 획정위는 국회의 ‘생사 기준 설정’에 따라 실무 작업을 수행할 뿐이다. 획정위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지난 2015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소속을 국회에서 중앙선관위로 옮기면서 ‘독립성’을 얻고자 했던 획정위의 꿈은 미망으로 끝나버렸다. 획정위가 이렇게 ‘말뿐인 독립기관’이 되어버린 것은 획정위원들이 각 정당에서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선거구획정위원은 공직선거법 제24조제3항,4항에 따라 9명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1명은 중앙선관위원장이 지명하고 나머지 8명은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단체, 정당에서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법에 이렇게 규정되어 있으면 여야 교섭단체에서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단체의 의견을 들어 추천한다. 그냥, 여야 교섭단체 몫이라고 보면 된다. 획정위원들은 자신을 추천해 준 정당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으니 획정위가 여야 대결장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이 다 이렇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쉽사리 ‘독립’시켜 줄 리가 없다. 선거구획정위는 지금도 국회에서 빨리 ‘인구상하한선 기준’과 ‘시도별 국회의원 정수’를 결정해서 보내주길 오매불망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선거구획정위나 사라질지도 모르는 선거구에서 뛰고 있는 후보들을 기다리게 하는 국회 사정도 단순하진 않다. 

한국 정치판에서는 선거 앞두고 늘 이합집산이 일어난다. 멀쩡하던 당이 합치고 사라진다. 이번에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중심으로 뭉친 미래통합당 말고도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이 새로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논의 테이블에 선수가 하나 더 올랐다.

여야는 선거구획정위에 24일까지 획정 기준을 통보하고 다음 달 5일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할 계획이다. 불과 선거 개시일을 한 달 앞두고 선거구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통폐합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강남이나 군포, 안산을 지역구로 둔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출마한 후보가 어느 자리에 서서 선거운동을 해야 할지도 헷갈리는 상황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이런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해 획정위를 진짜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 획정위원 추천에서 교섭단체 몫을 줄이고, 과반수만 찬성해도 의결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에서 손을 떼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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