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정치 학술 문화 교류 친선 모임 결성한 대표적 지한파

지난달 30일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민주당 대표가 선거상황판에 당선자 이름 옆에 장미를 꽂고 있다.

일본의 8·30 총선 결과 54년간의 자민당 장기 지배 체제가 막을 내렸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단독 과반수를 확보해 반백년 간 일본을 이끌어온 자민당을 대파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세계는 일본의 역사적인 여야 간 정권교체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함에 따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대표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등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강조하고 있어 차기 정권에서의 한일관계도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또 그는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긴밀하고 대등한 외교’를 천명하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日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을 누르고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장기 경제 악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이 있었다. 자민당 장기 지배로 인해 빈부격차와 도시와 농촌 등 지역 간의 격차가 심해지고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하면서 민심이 자민당을 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새로 출범하는 하토야마 정권은 내년 7월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 중의원과 참의원 과반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안정적인 국정운영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선거 과정에서 제시했던 예산의 전면적인 재편성을 통한 복지분야 지원 확대 등의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명문가 출신

민주당은 오는 16일 총리 취임을 앞두고 외교ㆍ안보정책을 비롯해 차기 정부 핵심 국가전략들의 윤곽이 곧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움직임과 관련, 일본 국민들의 71.1%가 총리에 취임할 하토야마 대표에 대해 “기대한다”고 답한 것으로 교도통신 조사 결과 집계됐다. 교도통신이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이틀간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 따르면 하토야마 대표에 대해 `기대한다`는 응답은 71.1%로 집계돼 `기대하지 않는다`는 응답(20.2%)을 3배 이상 상회했다. 이는 작년 9월 아소 다로 현 총리가 취임했을 당시 같은 조사 응답(48.6%)보다 크게 높은 수치다.

하토야마는 도쿄대학교 공대를 졸업한 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센슈대학교에서 경영학 조교수로 있다 1986년 자민당 공천으로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출마, 중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2005년 총선까지 7선을 기록했다.

그는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당 사키가케에 합류한 뒤 1998년 개편된 민주당 결성에 참여해 간사장으로 활동했으며,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민주당 대표로 당을 이끌었다. 총선을 앞둔 지난 5월 사퇴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의 뒤를 이어 민주당을 이끌어온 하토야마 대표는 도쿄(東京)의 유력 정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 하토야마 가즈오(鳩山和夫)는 중의원 의장을 지냈고,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는 1954년에 총리를 지냈으며, 1955년 자유민주당의 창당을 주도했다.

부친 하토야마 이이치로(鳩山威一郞)도 참의원으로 재직하며 외상을 지냈다. 동생 하토야마 구니오(鳩山邦夫) 역시 유력 정치인으로 장관을 지냈다. 하토야마 대표는 집안 배경 뿐 아니라 자금줄도 탄탄하다. 외조부 고(故) 이시바시 쇼지로(石橋正二郞)는 세계 최고 자동차 타이어회사인 ‘브리지스톤’ 창업자다.

그러나 하토야마 대표가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충분치 못하다는 견해도 있다. 유력한 정치 가문에서 태어났을 뿐 아니라 재력까지 겸비한 ‘완벽남’임에도 정치인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하토야마 대표의 별명은 ‘외계인’이다. 그만큼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유명하다.

또 하토야마 대표는 일본 정치계에서 친한파로 분류된다. 그는 “한·일 간 갈등을 고려해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한일의원연맹의 일본 측 고문과 민주당 내 일한교류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일본 내 한국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는 그의 아내와 함께 배우 이병헌·박용하의 열렬한 팬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토야마 反美 논란

지난 3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와 부인 하토야마 미유키는 한류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한류팬이며 특히 이병헌과 박용하의 팬이라고 보도했다. 미유키는 일본 유명 극단 다카라즈카에서 6년 간 배우생활을 했으며 자유분방한 성격에 배우 출신답게 후에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꿈인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하토야먀 대표의 어머니 하토야마 야스코 여사 또한 열혈 한류팬으로 85세의 고령임에도 불구 한류붐 속에서 한류스타를 만나기 위해 열심히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지한파인 반면 미국에 대해선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하토야마 대표는 “일본에서는 과거 식민지 침략을 미화하는 풍조가 있다”며 “민주당은 민족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반성을 통한 과거사 청산 의지도 피력했다.

하지만 미국과는 그동안 구축돼 온 동맹 관계의 강화보다는 새로운 관계 구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하토야마 대표는 미국이 이끄는 시장근본주의를 비난하며 일본과 일본 국민을 세계화로부터 지켜낼 것이라고 말해왔다. 게다가 동아시아 통화동맹을 결성하고 정치적 통합까지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일본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하토야마 대표에 대해 “반미주의자가 아니냐”는 우려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하토야마 대표는 지난 3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일동맹이 일본 외교의 기축”이라고 말하는 등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새 일본 정권에 대한 반미(反美)이미지를 말끔히 지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토야마 대표의 이런 반미논란에 휩싸인 직접적인 이유는 지난달 27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에 게재된 하토야마 대표의 ‘일본의 새로운 길’이라는 글 때문이다.

하토야마 대표는 지난 달 일본 월간지에 게재된 ‘나의 정치철학’이라는 기고문을 발췌한 이 글에서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라는 이름의 시장원리주의에 농락당해왔다”고 표현했다. 미국의 일극 지배가 끝나려 하고 있다면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영향력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미일 동맹을 중시해온 자민당 정권에 익숙한 미 정관계와 언론 등에서 연일 “반미를 경계해야 한다”는 비판적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하토야마 대표는 자신을 둘러싼 반미논란을 진화하기 위해 “글 전체를 보면 결코 반미적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것”이라며 “동아시아공동체 구상도 미국 배제가 아니라 미일관계를 기반으로 해서 동아시아의 경제와 평화, 정치적 공동체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난 3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전화 통화에서 “미일 동맹이 기축”이라며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반미 우려를 불식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미일관계에는 묘한 긴장감이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토야마 잘 해낼까

하토야마 대표의 조부도 미국과 악연이 있다. 하토야마 대표가 정치인생의 나침반으로 삼는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전 총리 역시 미국과 묘한 긴장 관계에 있었다. 조부의 총리 시절 대외 정책이 탈 미국 노선이었다.

1946년 총선 직후 제1당인 자유당 총재였던 조부는 “군부의 대두에 협력한 군국주의자”로 지목돼 연합군사령부(GHQ) 점령 하에서 총리 취임을 앞둔 상태에서 GHQ의 공직추방 명령을 받았다.

5년 뒤 공직추방 조치가 해제돼 정계에 복귀한 조부는 당시 자유당 총재이던 요시다(吉田) 반대 세력을 결집해 일본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취임한다. 그 해 요시다 정권 해산 후 정권을 잡은 조부는 자유민주당을 창당해 56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미국과의 관계가 불안한 조짐을 보이자 일본 재계도 긴장하고 있다. 일본 재계는 그동안 자민당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민주당과 다소 소원했던 게 사실이다. 이에 새로 집권한 민주당 정권과는 당분간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고용제도, 환경대책, 최저임금 등 사안별로 의견 차이가 크게 엇갈리고 있는 데다 중간에서 양측을 조율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 재계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정당에 대한 기업 헌금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민주당 측 방침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한편으론 “차기 정부에서 재계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추락할 수 있다”는 걱정을 품고 있다.

한편 하토야마 대표의 평범하지(?) 않은 부인 미유키여사에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 정치인들의 부인들은 앞에 나서지 않고 가정에 충실하며 아이들을 키우는데 전념하지만 하토야마 미유키는 이러한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미유키의 트레이드마크는 단발머리다. 하와이에서 구입한 커피색 마(麻)로 직접 치마를 만들어 입고 TV 대담프로그램 출연해 정치 이슈에서부터 종교, 음식, 조리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제에 대해 자유롭고 편안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도 했다. 미유키는 스스로를 “호기심이 그치지 않는 사람”이라 말한다.

또 미유키는 한 TV 인터뷰에서 한 번도 이루지 못한 꿈을 꿔본 적이 없다며,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꿈이라고 당당히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미유키는 톰 크루즈를 주연배우로 정할 것이라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톰 크루즈가 전생에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편 하토야마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부인이 자신의 의상과 음식을 선택하고, 가정을 꾸미는 “인생의 구도자(求道者)”라고 묘사한 바 있다.

미유키는 1943년, 당시 일본의 지배를 받던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일본 고베(神戶)에서 자랐다. 1960년대 일본의 가극단 ‘다카라즈카 리뷰’의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20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당시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지금의 하토야마 대표를 만났다. 미유키는 전 남편과 이혼 하고 1975년 하토야마 대표와 재혼했다.


#일본 정치지도 어떻게 바뀌나

여야 정권이 교체된 이번 일본 총선을 계기로 한일 의원외교의 최대 공식채널인 일한의원연맹도 조만간 민주당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1972년 설립된 일한의원연맹은 총선 전 기준으로 중의원 230명, 참의원 72명 등 모두 302명으로 구성돼있다. 중의원의 경우 자민당 171명, 민주당 37명이다. 그러나 자민당과 민주당 의석수가 역전됨에 따라 연맹 구성원도 민주당 중심으로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맹 회장은 관행적으로 여당의 총리급 의원이 맡아왔으며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현재 회장이다. 한국 측 파트너인 한일의원연맹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이다.

하토야마 차기 총리 등 8명이 고문,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 등 11명이 부회장이다. 간사장, 부간사장, 분야별 상임위원장 등 방대한 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다선 중진인 간부 가운데 상당수가 총선에서 떨어졌다. 연맹은 재편을 통해 민주당 의원을 회장으로 교체할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당엔 ‘총리급’ 경력을 갖춘 의원이 없어 결과를 알 수는 없다.

연맹이 민주당 중심으로 재편되면 의원외교의 흐름도 어느 정도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등 한국에 대체로 우호적이다. 오랫동안 집권당으로서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자민당에 비해 겉으로 드러나는 인맥은 적지만, 꾸준히 한국 문제를 연구하면서 관계 개선을 도모해온 지한파는 적지 않다.

하토야마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빅4’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대행과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대행,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은 모두 한국에 우호적이다. 오카다 간사장은 정동영 의원과 친분이 돈독하다.

연맹 고문인 하토야마 대표는 올 3월 출범한 당내 ‘전략적 일한관계를 구축하는 의원모임’의 고문이기도 하다. 소장파 중심으로 15명이 참여한 이 모임 회장은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대표다.

하토야마 대표는 2003년 일본 민주당과 한국 국회의원 간 친선을 위해 ‘일한 의원교류위원회’를 직접 만들어 의원 24명을 참여시켰다. 하지만 눈에 띄는 활동은 없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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