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전 대표 양산 출마로 ‘어부지리’ 당권 접수 성공

정몽준 한나라당 신임 대표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당사에서 가진 취임 기자회견에서 재벌 출신 당대표라는 일각의 우려려에 대한 질문에 6.25 전쟁 피난시절 찍은 가족사진을 보이며 어린시절 가정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위) 박희태 전 대표의 사퇴로 한나라당 대표직을 이어받고 당 대표로서의 공식일정을 시작한 정몽준 신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 한 상점에서 삼치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야인(野人)’ 정몽준이 마침내 집권여당의 수장으로 등극했다. 지난 7일 한나라당 ‘정몽준호(號)’가 닻을 올린 가운데 그의 역할과 한계를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 신임대표가 ‘어부지리’격으로 당권을 접수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는 전임 박희태 대표가 오는 10월 28일 열릴 경남 양산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를 선언하며 대표직에서 물러남에 따른 것이다. 한나라당 당헌ㆍ당규에 의해 지난해 7월 전당대회 차점 득표자였던 정몽준 최고위원은 곧바로 대표직을 승계하게 됐다.

정 신임대표에게 있어 집권당 대표직 승계는 여러 의미에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으로 당내 차기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으며 동시에 자신의 정치력을 검증받는 시험대에 선 것이다.

정 신임대표는 친(親)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로 양분된 당 내 갈등을 봉합하는 것은 물론 가깝게는 내달 재보선, 멀게는 내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야할 부담감을 지게 됐다.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아들로 태어나 ‘부잣집 도련님’으로 성장한 그의 인생은 줄곧 탄탄대로였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현대중공업 오너로 막대한 부를 이뤘으며 울산을 연고로 5선에 성공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역임하며 2002 한일월드컵 공동개최의 공을 세운 그는 해외에서도 상당한 인맥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 신임대표에게 ‘성공한 주류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는 어색하다. 지난 2002년 대선 출마를 결심, 대권주자에 도전했지만 최근까지 정 신임대표의 위치는 주류보다 ‘야인’에 가까웠다.

성공한 기업인이자 체육계 거물이지만 그에게 정치판은 여전히 황무지나 다름없다. 그런 그가 168석의 거대 여당 수장에 등극한 것이다. 정몽준 한나라당 신임대표가 넘어야할 뚜렷한 한계와 가능성을 집중 분석했다.


6선 ‘이방인’서 주류로

정몽준 신임대표 체제는 그가 비주류에서 주류로 편입됐다는 반증이다. 울산 지역에서 5번, 지난해 서울 동작에서 1번 총 6선의 중견 국회의원이었지만 정작 그는 5선을 하기까지 제대로 된 당적을 갖지 못했다. 정 신임대표가 확실한 당적을 가진 건 지난해 대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거대여당의 우산 밑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정 신임대표의 위치는 불안했다. ‘친이’와 ‘친박’이 첨예하게 대립한 상황에서 ‘이방인’인 그가 뿌리내리기는 사실상 어려웠던 까닭이다.

정 신임대표의 입지가 굳어진 것은 지난해 7월 전당대회 이후다. 당시 박희태 전 대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한 그는 당 최고위원에 오르며 당권획득의 기반을 다진 셈이다. 입당 2년 만에 당대표직을 승계한 그는 여당 주류인사로 정치인생 제2막을 열게 됐다.

더구나 신임 총리 후보로 지명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박근혜 전 대표 등 쟁쟁한 대권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치적 동력을 얻었다는 점도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대표직 승계가 그에게 마냥 호재인 것만은 아니다. 정 신임대표는 스스로 얻은 것 이상으로 혹독한 시험대에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 내에 ‘정몽준계’라고 불릴 인맥이 전무하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자칫 앞으로 당 운영에 있어 정 신임대표가 속칭 ‘바지수장’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나마 한나라당 내에서 정 신임대표에게 우호적인 인물은 그에게 지역구(울산 동구)를 물려받은 안효대 의원, 현대건설 출신 신영수 의원, 처조카 사위 홍정욱 의원, 국민통합21 출신 전여옥 의원 정도다.

정 신임대표는 한나라당 입당 이후 170명 가까운 당 내 의원과 한 번 이상 식사를 하는 등 인맥 넓히기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친이’와 ‘친박’이 공고하게 경계선을 이룬 한나라당에서 그가 ‘자기사람’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구두쇠 재벌 도련님’ 고정관념 깨라

최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계파 간 벽을 허물겠다’고 선언한 정 신임대표는 당장 10월 재보선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아야한다. 재보선 승패에 따라 그가 당권을 넘어 대권후보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여부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정 신임대표가 넘어야할 두 번째 한계는 고정된 이미지다. ‘부잣집 도련님’과 ‘인색한 구두쇠’로 대표되는 그에 대한 편견은 상당한 약점이다. 대중은 정 신임대표를 ‘부잣집 도련님’의 관점으로 본다.

그는 재벌가 현대의 일원으로 풍족한 삶을 살았다. 지금은 현대중공업 고문으로 일선 경영에선 손을 뗐지만 여전히 현대중공업은 정 신임대표를 오너로 모시고 있다. 기업 최대주주인 그의 주가가치는 무려 1조5000억원이 넘는다.

그는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에 이어 국내 주식부호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각에서는 정 신임대표의 막강한 재력이 ‘부자정당’으로 낙인찍힌 한나라당에 누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최근 친서민 정책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에 있어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 신임대표는 18대 국회 입성 뒤 전용차를 현대자동차 ‘카니발’로 바꾸는 등 이미지 개선에 신경써왔다. 또 당대표직에 오른 이후 수산시장 등을 돌며 연일 서민유권자를 만나는 그의 행보는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제스처로 볼 수 있다.

또 하나 정 신임대표가 인간적으로 변화해야 할 점은 몸에 밴 ‘아집’을 떨치는 것이다. 정치권 인사들에 따르면 정 신임대표는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지난 2006년 국감도중 벌어진 ‘반말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무소속이던 정 의원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구희권 수석전문위원을 ‘너’로 부르며 호통을 쳐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국정감사 도중 피감기관이 상의 없이 바뀐 것을 문제 삼는 과정에서 불거진 소동은 방송사 카메라에 찍혀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정 신임대표는 지난 6월에도 최고위원회의 도중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상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고 담당자인 김광림 제3정조위원장을 공개석상에서 면박 주기도 했다.

정 신임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정 대표가)수평적 관계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지 않다”고 전했다.

‘돈 쓰는 방법을 모른다’는 점도 정 신임대표가 극복해야할 인간적인 평가다. 현직 의원 중 가장 부자인 그는 오히려 ‘밥값을 잘 안내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정 신임대표를 두고 ‘짠돌이’라는 농담을 던지곤 한다.

그가 과거 모교 동창회에 참석해 회비로 딱 20만원을 낸 일은 유명한 일화다. 이런 탓인지 몇 달 전 이 대통령은 정 신임대표와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돈 잘 쓰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대표 승계, 대권전망 ‘바로미터’

넘어야할 산이 많지만 정 신임대표의 취임은 향후 대권도전을 위한 사전 포석이자 시험대의 성격이 강하다. 정몽준호(號)의 최대 우선 과제는 당내 화합이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대가로 정 신임대표는 친이 측과 가깝지만 그가 친이계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친박과는 박근혜 전 대표와 경쟁구도를 이뤄 소원한 사이다. 가뜩이나 당 내 지지기반이 없는 그가 친이 또는 친박 어느 한 쪽과 반목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정 신임대표의 역할이 우려만큼 작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감이 엿보이는 대목이 있다. 그는 줄곧 공천제도 개혁과 당헌·당규 개정, 당·정·청의 실질적 협력 관계를 강조하며 당 안팎의 지지를 얻고 있다.

정 신임대표가 취임일설을 통해 “국민에게 당의 대문을 넓게 열어놓겠다”고 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나라당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측근에 따르면 이는 ‘정치인 정몽준의 새로운 색깔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야당과의 관계 정상화도 큰 문제다. 일단 그는 “여야관계만 너무 부각됐지만 동료의원이라는 게 중요하다”며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친이계 핵심으로 대야 강경론을 주도하고 있는 안상수 원내대표와의 내부 조율에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돼 귀추가 주목된다.

‘정치인 정몽준’의 인생 2막이 될 이번 기회를 그는 어떤 묘수로 살릴까. 이명박 정권 2기를 맞아 부상한 ‘정몽준 카드’에 대해 한나라당은 물론 대중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정몽준 한나라당신임대표 프로필

▶직업 : 국회의원
▶출생 : 1951년 10월 27일 (부산광역시)
▶소속·직위 :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가족관계 : 아버지 정주영, 형 정몽구, 형 정몽근, 형 정몽헌
▶최종학력 : 美 존스홉킨스대학교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수상경력 : 2009년 말레이시아 다투 작위

경력 :
▶2009 -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2008 - 18代 국회의원(한나라당, 서울 동작을, 現),
한나라당 최고위원
▶2005 -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서강대 겸임교수(現)
▶2004 - 17代 국회의원(울산 동구),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
▶2000 - 16代 국회의원(울산 동구), 국회 통일외교통상 위원회 위원,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위원,
2002년 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장
▶1996 - 15代 국회의원 당선(울산 동구), 국회 통일외교
통상위원회위원, 국회 국제경기지원특별위원회 위원
▶1993 - 대한축구협회 회장(現)
▶1992 - 14代 국회의원 당선(울산 동구), 국회 국방위원회, 문화체육공보위원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1988 - 13대 국회의원 당선(무소속, 울산 동구)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경제과학위원회 위원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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