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 떠나 ‘MB코드’ 조력자로 나서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가 9월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문을 정의화 위원장에게 전달하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9월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무총리(정운찬)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정운찬 후보자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9월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정부측 관계자와 질의답변 자료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9월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9·3개각’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두 번째 총리로 화려하게 부활할 채비를 마쳤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해 왔던 그였지만, 최근 MB와의 같은 정책을 통해 관가 입성을 준비중이다. 참여정부 시절 대권후보 물망에 올랐고,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그를 서울시장 후보 영입을 극비 추진했었다. 그러나 대표적 진보성향 경제학자였던 그가 MB코드로 돌아선데 대해 세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는 할 말을 하는 소신 총리를 지향하고 있다. 향후 정부의 경제정책은 물론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도 주목 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전 100승이다’

정운찬 총리 내정자와 MB를 두고 현 정부가 하는 말이다. 그는 그동안 MB정책의 비판론을 펼쳤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MB코드에 맞춰 ‘경제 살리기’ 선봉장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때문에 자연스레 이 말이 회자되고 있다.

서울대총장 출신 경제학자인 정운찬 총리 내정자는 상아탑을 나와 관가에 입성 준비중이다.

서울대총장 출신 조순, 이수성 등에 이은 정 총리 내정자의 관가 입성은 새삼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런데도 그가 국무총리 내정자 직을 맡게 된 점에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정운찬이 가진 코드 때문이다.

정·운·찬. 대표적 경제학자이자, 대학개혁의 상징적인 인물. 또 MB정부 비판자였다.

그런 그의 관가 입성 준비는 정치권은 물론 재계에서도 충격이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총리 내정자감으로 꾸준히 거론돼 왔고, 대권 후보자 물망에 올랐기 때문이다. 또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로도 거론됐다. 그렇기에 정운찬 총리 내정자에 공들였던 민주당의 실망과 상처는 크다.

지난 9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은 애정이 증오로 바뀐 날선 질문으로 그의 도덕성을 집중 공격했다.

민주당은 ▲Y사로부터 용돈 수수 ▲D그룹의 서울대총장선거 지원설 ▲기업 고문료 1억원 받아 겸직 금지 의무 위반 논란 ▲세종시 수정발언 문제 등을 지적했다.

그때마다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주관을 폈다. 총리 직을 맡게 되면 ‘할 말은 하는 소신총리’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피력했다.


스타경제학자 급부상

그는 젊은 시절 한국은행에서 잠시 근무하다 프린스턴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총장까지 지낸 스타 경제학자이다.

누구보다 경제에 있어 자신감을 표출할 정도로 배경이 탄탄한 인물이다.

비록 상아탑에만 머물러온 이른바 강단 학자는 아니지만 IMF 경제위기의 본질을 파헤친 평론집과, 현안을 분석한 글들을 신문이나 잡지에 꾸준히 발표해 현실 참여형 경제인으로 성장한다.

이에 정계는 그를 평소 우리 경제 현실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인물로 평가한다. 특히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정부의 무분별한 시장규제 완화를 강하게 비판하는 등 소신 발언을 펼쳐왔다. 이 때문에 경제철학이 다른 정 내정자의 MB정부 합류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야권에서는 “한복 바지에 양복 상의를 입은 격”이라는 냉소적 반응을 보인다. 여권 내부에서도 정 내정자의 총리 지명을 반대하는 기류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표방한 중도강화론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중도실용주의 노선인 정 내정자의 발탁을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은 아니다.

경제계에서는 그가 중도적 성격을 띠면서도 소신 발언을 하는 스타일이어서 어느 한 쪽으로 경도되지 않고 합리적인 정책을 펼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의 애제자로 알려진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정 총리 내정자는 부유층만을 위한 경제정책에 반대해 왔다는 점에서 최근 정부의 노선 변화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배경…MB와 같기도

정 총리 내정자의 인생역정도 어린 시절 가난을 딛고 대기업 CEO, 대통령으로 성공한 MB와 닮은 꼴이다.

정 총리 내정자가 태어난 고향은 충남 공주시 탄천면 덕지리의 한 시골마을이다. 아버지 정창성씨와 어머니 이경희의 다섯 남매(형 정운혁, 큰누나 정운기, 둘째 누나 정등운, 셋째 누나 정분자, 정운찬)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정 총리 내정자는 어머니가 43세 되던 해에 늦둥이로 태어났다. 사실 그는 태어나지 못할 운명(?)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 아기가 생기자 아이를 지우기 위해 독초를 먹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태어났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가족들은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로 이사한다. 버스가 하루에 딱 3회만 오는 산골마을이다. 그는 4km나 떨어진 초등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당시 가난했던 정 총리 내정자 가족은 하루하루 먹을 쌀이 없어 죽을 쑤어먹기도 하고 배를 곪을 때가 더 많았다고 한다.

그가 9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둘째 숙부 정윤원씨는 딸만 넷 두었기에 그를 양자로 입적했다. 그러나 양아버지는 정운찬을 입적만 시켰을 뿐이지 보살핌은 없었다고 한다. 양아버지 집안 또한 피죽도 못 끓여먹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 이 때문에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립심을 키웠다. 어릴 때부터 총명했던 머리는 독립심과 함께 그의 능력을 향상 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중학교 내내 상위권에 등재됐다. 경기고·서울대에 이어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다. 서울대 경제학 교수에서 서울대 총창 자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총리 내정자로 발탁됐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단지 가난한 시골소년이 성장해 총리로 내정됐다는 식의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역경을 딛고, 미래를 위한 철저한 준비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사업보다 탁월한 두뇌와 성실성으로 학업에 전념했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주어지듯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가 왔을 때 잡았다.

지난 정권에서 총리에 물망에 올랐고, 대권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를 거부한 것은 자신의 기회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결과 자신과 코드가 비슷하고 인생역정이 비슷한 MB정권에서 총리로 일할 기회가 주어지자 기회를 잡는다.

그는 “나의 생애는 이름 그대로 운이 가득 찼다”고 말하곤 한다.

실제 사주에서도 그의 대성은 예견됐다. 정운찬의 이름은 주역에 따라 지어졌다. 사주에 ‘운이 꽉 차 있다’ 해서 운찬이라 했다. 또한 그의 돌림자인 구름 운(雲)에 빛날 찬(燦)을 붙였다.

그의 운은 인생에서 따라 다녔다. 학비나 진로의 고비마다 멘토(mentor)가 나타나 길을 인도해 주었다.

그의 멘토는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 경제학과로 이끌어준 고교 1년 선배 김근태(전 열린 우리당 의장), 사회의식을 일깨워준 가정교사 선배 신영복(통혁당 사건 20년 복역, 현재 성공회대 교수), 미국 유학으로 인도한 조순 교수(전 경제부총리)등이다.


‘떠오른 정운찬’ 與 권력지도 요동

정운찬 총리 내정자는 벌써부터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선 벌써부터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 꼽고 있다. 하지만 정 총리 내정자는 “대권 출마 의사가 없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정 총리 내정자의 관가 진출은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관계, 한나라당내 계파전쟁, 세종시 수정발언,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대학과 달리 생물처럼 변화무쌍한 정·관계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성공한 총리 내정자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정 총리 내정자만의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재계에선 “정 총리 내정자는 경제를 잘 아는 경제학자로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실무형 · 화합형’총리 내정자”라는 평가이다.

성공한 대통령을 지향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중기에 총리 발탁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정 총리 내정자의 리더십에 세인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운찬 총리내정자 프로필

학력사항
▶ 1972 ~ 1976 프린스턴대학교대학원 경제학 박사
▶ 1971 ~ 1972 마이애미대학교대학원 경제학 석사
▶ 1966 ~ 1970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 2009 제1대 서울대학교 금융경제연구원 원장

경력사항
▶ 2006. 7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1999 예금보험공사 자문위원
▶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 회장
▶ 2002. 7~2006. 7 제23대 서울대학교 총장
▶ 1978.12~2002. 7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교수
▶ 2002. 2~2002. 6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 1998~2002 한국금융연구원 자문위원
▶ 2000~2001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
▶ 1998~1999 제8대 한국금융학회 회장
▶ 1996~1997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학부장
▶ 1993. 8~1995. 2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무학장보
▶ 1986. 9~1987. 8 영국 런던정경대학
경제학과 객원 부교수
▶ 1983. 7~1983. 8 미국 하와이대학교 초빙 부교수
▶ 1976. 7~1978. 12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조교수
▶ 1970. 2~1971. 8 한국은행 행원
▶ 2005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
▶ 2003 한국야구위원회 총재고문
▶ 2002 보건복지부 국민연금발전위원회 위원장
▶ 1999 독일 보쿰대학교 초빙교수
▶ 1996 수암장학문화재단 이사
▶ 사이언스코리아 공동의장
▶ 제36대 한국경제학회 회장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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