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그라운드 완벽 컨트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은 지난달 29일 밤 11시(한국시간) 이집트 수에즈의 무바리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7회 U-20 월드컵 C조 2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후반 26분에 터진 김민우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거뒀다. 사진은 동점골을 터뜨린 뒤 벤치로 달려와 홍명보 감독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김민우의 모습.

철저한 비디오 분석으로 익힌 해외 전략·전술 한국축구 접목

이번 U-20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홍명보 한국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주목하고 있다. 그가 보여준 리더십과 용병술이 예사롭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국내언론과 축구 전문가들은 홍 감독을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과 비교하기도 한다. 아직 히딩크 감독의 아성에는 못 미치지만 앞으로 그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토종 감독으로 기대해도 좋다는 식이다. 무엇보다 홍 감독을 돋보이게 한 것은 선수들에 대한 신뢰였다. 우리나라의 체육지도자들은 대체로 스파르타식을 지향한다. 그러다보니 코칭스태프와 선수 사이에 폭행사건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홍 감독은 이런 지도자상과는 거리가 멀다. 홍 감독은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려 노력했고 선수들의 인격을 존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을 채찍질하기보다 그들을 칭찬함으로써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홍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선수들의 움직임은 흡사 2002년 태극전사들과 같았다. ‘강한 체력’과 ‘유효적절한 압박’, 그리고 ‘높은 볼점유율’은 상대편을 두렵게 만들었다. 이를 지켜본 모든 이들은 히딩크호와 홍명보호가 오버랩 되는 듯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홍 감독이 히딩크 감독을 그대로 따라한 것은 아니다. 대표선수 시절 다양한 감독들의 용병술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용병술을 구축한 것이다. 홍 감독의 지도력을 본 이들은 그에게서 히딩크를 떠올렸지만 실제로 그가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던 감독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었다. 특히 선수들을 독려하고 칭찬하는 부분은 아드보카트의 영향이 컸다.


합리적 사고의 힘

홍 감독이 지금까지 토종지도자와 뚜렷이 구분되는 점은 바로 합리적 사고다. 홍 감독은 이름값보다 철저히 실력에 의존해 선수들을 뽑았다. 홍 감독이 생각하는 훌륭한 선수의 기준은 개인기가 아닌 팀플레이어였다. 팀플레이에 뛰어난 선수를 개인 역량이 뛰어난 선수보다 우선시 했다. 그래서 해외에서 뛰던 몇몇 재목들과 17세 이하 대표팀에서 주목받던 선수들이 최종훈련을 앞두고 제외되는 봉변(?)을 당했다.

이들을 선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홍 감독은 “자질은 있지만 팀을 위한 플레이를 하지 않는 선수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대학과 고교 무대에서 뛰더라도 팀플레이에 열정을 갖고 있는 선수들을 대거 발탁, 집중 조련했다. 홍명보호가 ‘스타는 없으나 실력을 갖춘 대표팀’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 감독이 선수들에만 신경을 썼던 것은 아니었다. 홍 감독은 스태프 구성에도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 역시 히딩크와 비슷한 점 중 하나다. 홍 감독은 부임 직후 신의손 여자축구 대교 골키퍼 코치를 데려오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는 8월 수원컵 직전 일본인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트레이너를 영입하기 위해 일본에 직접 가기도 했다. 이케다는 J리그 우라와 레즈 아카데미와 계약한 상황이어서 영입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홍 감독은 이케다 뿐 아니라 그가 속한 구단에까지 사정하다시피 해 결국 영입에 성공했다.

홍 감독이 특정 피지컬 트레이너를 영입하기 위해 이토록 애를 쓴 이유는 바로 선수관리 때문이다. 선수들의 몸이 관리되지 않으면 승리도 힘들다고 판단, 훌륭한 피지컬 트레이너를 구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스타를 꺽은 무명의 힘

홍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저력은 탄탄한 수비안정에서 비롯된다. 독일전에서 보여준 무승부, 미국전과 파라과이전의 연승은 수비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대표팀은 카메룬전에서 패한 이후 수비안정에 역점을 두고 이를 보강했다. 그 결과 연전연승의 막강 전력을 갖추게 됐다.

또 홍 감독의 왼쪽 측면 수비수(김민우·연세대) 변칙 이동(시프트) 전략이 눈에 뛰었다. 3경기에서 3골을 뽑아 이번 대회 최고 스타로 떠오른 김민우는 미국ㆍ독일전에선 측면 미드필더, 파라과이전에선 섀도 스트라이커로 깜짝 기용돼 승리를 이끌었다. 이를 두고 축구 전문가들은 “선수의 공격성향을 알고 포지션을 이동시키는 것은 선수파악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이런 점들이 주요하게 작용했다고는 하지만 대표팀이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모두를 위한 하나’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표팀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화려한 스타는 없다. 반면 이번 대회에 참가한 외국팀들은 팀원의 절반 이상이 프로팀소속이다. 그런데도 이름도 생소한 김민우는 파라과이와의 16강전에서 2골을 작렬했다. 역시 축구팬에게 낯선 김보경(홍익대)은 선제골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축구에서 팀플레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일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할 때 이번 파란은 기초를 탄탄히 하는데 집중하고 팀플레이를 주전략으로 삼았으며 선수들을 존중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홍 감독의 용병술까지 곁들여져 대표팀은 그야말로 펄펄 날았다.

해외 팀 관계자들은 홍 감독의 치밀한 전략과 과감한 판단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카메룬에 연달아 점수를 내주고 패하자 홍 감독은 주저 없이 공격진 전원을 교체했다. 대회도중 포지션을 완전히 새로 짜는 경우는 드믈다. 또 독일전에서 극적인 1대1 무승부를 일궈낸 다음에도 다시 포메이션을 전면적으로 바꿨다. 홍 감독의 과감한 결단은 이어지는 경기에서 효과를 확실히 드러냈다. 조별 리그 마지막인 미국전에서 상대 수비를 흔들며 3대0 대승을 거뒀다. 선수의 명성에 의존하기 않고 팀플레이를 위한 조합을 치밀하게 연구한 결과였다.


철저한 분석만이 살 길

선수 출신 지도자들은 많다. 하지만 그 중 성공하는 지도자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홍 감독 역시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선수 시절에는 자신만 잘하면 큰 문제가 없었지만 지도자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혼자 잘한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이들의 잘못까지 자신이 책임져야하는 자리가 지도자의 자리다. 홍 감독의 지도자 변신을 두고 믿음과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 이후 믿음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큰 대회 경험이 많지 않은 신출내기 감독이 팀을 우승까지 바라볼 정도의 강팀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홍 감독이 이 처럼 우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끊임없이 노력한 것뿐이다.

홍 감독은 틈날 때마다 파주 NFC(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비디오 분석에 모든 것을 쏟았다. 마치 고시공부를 하듯 비디오 분석에 매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용병술은 치밀한 비디오 분석 덕분이다.

홍 감독은 스스로의 약점도 잘 알았다.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요시 했다. 본인이 명성이 높았던 만큼 어린 선수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 이런 점들을 없애려 노력했다. 대표적인 것이 칭찬이다. 홍 감독은 선수들이 잘한 부분에 대해 아낌없이 박수를 쳐줬다. 잘못을 해도 면박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자신이 분석한 내용을 거부감 없이 선수들에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 3일 이집트 수에즈의 무바라크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홍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에 큰절을 올렸다. 관중들에 대한 답례가 아니라 홍 감독과 스태프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그만큼 홍 감독에 대한 선수들의 존경심은 남다르다.

홍 감독은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을 두고 “전적으로 선수들의 100% 노력 덕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겸손과 존중, 이것이 바로 유명한 스타플레이어 한 명 없는 ‘약체’ 홍명보호가 강한 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첨단 의료장비도 대표팀 실력발휘 숨은 공신

그라운드에서 거칠게 뛰다보면 부상은 달고 다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표팀 의무실은 환자가 끊이지 않는다. 국제축구연맹(FIFA) 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도 마찬가지다. 사흘 간격으로 열리는 경기에 선수들의 몸은 녹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부상자들도 마음 편히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었다.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회(위원장 윤영설 연세대 의대 교수)가 국제 대회 사상 처음으로 1억원 상당의 고가 의료장비를 가동했다. 이번 대회를 위해 기본적인 물리치료 장비 외에 개당 5000만원이 넘는 초정밀 관절 레이저와 집중형 체외충격파가 동원됐다. 의무위원회는 지난 6월 윤영설 위원장의 기획아래 ‘의무 장비 첨단화’ 사업을 추진했고, 40만달러(약 4억7000만원) 상당의 의료 기구를 들여왔다.

이 장비들이 갖는 위력은 기대를 훨씬 넘어섰다. 태극전사들은 여러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지만 이 장비의 도움을 받아 쌩쌩 달릴 수 있었다. 급성 부상 집중 치료에 효과 만점이었다. 관절 레이저는 피부로부터 1㎝ 안쪽까지 침투, 부상 관절 부위의 부기를 빠르게 빼준다. 충격파 역시 손상된 근육에 충격을 줘 회복을 돕는다.

예컨대 오재석은 미국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왼쪽 허벅지 근육을 다쳐 사실상 대회를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레이저와 충격파 치료를 꾸준하게 받은 그는 경기에 곧바로 뛸 수 있을 정도로 회복 단계에 접어들어 장비의 중요성을 실감케 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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