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 토론> 진행자는 나 회사에 아쉬운 소리 안했다”

지난해 11월 KBS 심야토론 진행자 시사평론가 정관용(사진 왼쪽)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제작비 절감의 이유로 하차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손석희(사진 오른쪽) 교수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100분 토론"을 진행하면서 단 한번도 제작진이나 회사 눈치를 본적이 없다. 물론 얼마 전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주제로 끝장토론(2003년 6월·총 4시간 51분 간 방송)을 진행했을 땐 당일 편성을 조절하기 위해 회사 측과 협의를 거쳤다. 그것 말고는 진행자로서 제작진에 아쉬운 소리 할 일이 없다. <100분 토론>에서 내 일은 양쪽에 싸움을 붙이는 것이다. ‘쟁반노래방’(당시 동시간대 KBS에서 방영된 예능 코너)은 이겨야 될 거 아닌가.” (2003년 9월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특강에서.)

20~30대 젊은층 사이에서 ‘손석희’는 가장 성공한 언론인이자 냉철한 지식인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가장 영향력 있는 국내 언론인 순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고수해온 손석희(53) 성신여대 교수. 그가 본인의 프로그램과 강단에서 보인 자신감은 전혀 과장됨이 없었다. 시청자 상당수는 국내 간판 토론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MBC <100분 토론>의 진행자로서 ‘손석희’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고 여전히 그렇다. 때문에 그가 <100분 토론>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하차 이유가 ‘비싼 출연료’(회당 200만원)와 ‘식상한 진행자’라는데 시청자는 물론, 관련 업계 종사자들마저 물음표를 찍고 있다. 일부 언론과 네티즌은 ‘퇴출’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손 교수의 하차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엄기영 MBC 사장이 현 정권과 타협하기 위해 손 교수를 제물로 바쳤다는 주장까지 불거졌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손석희 교수의 하차 내막과 손 교수의 심경을 <일요서울>이 짚어봤다.

MBC가 올 초부터 소문으로만 떠돌던 <100분 토론> 진행자 교체를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석희 교수는 다음달 17일을 끝으로 7년 10개월 만에 <100분 토론>에서 물러난다. 비용절감과 프로그램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라는 게 MBC가 공식적으로 밝힌 교체 이유다.

그러나 노조와 진보매체를 중심으로 방송국 안팎에서는 엄기영 사장과 경영진이 친 정권 성향 인사들의 압력에 무릎을 꿇고 손 교수를 ‘제물’로 바쳤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지난달 엄 사장이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에서 ‘조건부 유임’ 결정을 얻은 뒤 정권과 방문진에 일종의 ‘성의’를 보이려 ‘손석희 하차’라는 선물을 마련했다는 얘기다.

엄 사장은 1985년 프랑스 특파원을 거쳐 보도본부장 이사를 지냈고 손 교수는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1989년 노조 간부와 아나운서국 국장을 역임, 두 사람은 대표적인 ‘MBC맨’으로 꼽힌다.


‘손석희 퇴출’은 엄기영 보신용?

<100분 토론> 제작진과 일부 방송관계자들도 손 교수의 교체 이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전 시사교양국 프로듀서 K씨는 “손석희 교수라고하면 최고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자랑하는 언론인이다”며 “매년 출연료를 올려주며 붙잡아도 시원찮을 판인데 MBC가 큰 실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MBC는 지난 봄 개편 때도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를 무리하게 하차시켜 네티즌의 비난에 시달린 바 있다. 신 앵커는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현 정권의 부조리를 꼬집어 큰 화제를 모은 보도국 간판스타였다. 신 앵커의 교체 역시 현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추측이 꼬리를 물면서 MBC는 안팎으로 내홍에 시달렸다.

손석희 교수 하차와 맞물린 이번 사태도 비슷한 전개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이하 MBC노조)는 지난 12일 성명을 내고 “회사가 아무리 외부 압력이 아니라 순수하게 프로그램 경쟁력 강화와 비용 절감을 위한 것이라 주장해도 곧이곧대로 믿을 상황이 아니다”며 “진행자 교체가 결국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권력에 대한 굴종이요 눈치 보기라는 구성원들의 의심조차 해소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이번 MBC의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불 보듯 뻔하다”고 성토했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단체와 보수 언론이 현 정권 출범 이후 꾸준히 <100분 토론> 폐지와 진행자 교체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상당부분 수긍이 갈 수밖에 없다.


‘유일한 맞수’ 정관용, 손석희와 닮은 꼴

이와 똑 같은 상황이 지난해 11월 KBS에서도 벌어졌다. KBS 심야토론 진행자였던 시사평론가 정관용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 2개에서 줄줄이 손을 뗀 것. 토론프로그램 MC 가운데 손석희 교수의 유일한 맞수였던 정씨는 22년 전통의 KBS 심야토론(1TV)을 5년 간 진행했었다. 또 토론 프로그램으로는 유일하게 매일 전파를 탔던 ‘열린토론’(1라디오)을 6년 동안 이끈 실력자였다.

그의 하차 이유 역시 손 교수와 같다. ‘제작비 절감’ 즉 외부인사보다는 내부 직원을 진행자로 내세워 출연료 지출을 막겠다는 것. 그러나 방송가에 떠도는 소문을 달랐다.

진보 인터넷매체 ‘프레시안’ 이사 출신이자 전임 정연주 사장 계열에 속한 탓에 이병순 신임 사장이 부임하자 곧바로 물갈이 대상이 됐다는 루머가 사실처럼 떠돌았다. 속칭 ‘좌빨 코드’인 정씨가 이 사장 취임 직후 ‘끈 떨어진 갓’ 신세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지난해부터 논란이 돼 온 KBS, MBC의 친정부적 개편은 이번 가을 절정을 이룰 듯 보인다.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보수 진영에서 퇴출을 요구하던 진행자를 교체할 것이라는 계획이 알려지자 지상파 방송사가 ‘뉴라이트 편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KBS는 가을개편에서 시사 프로그램 <생방송 시사360>을 폐지하기로 했다. 또 <스타골든벨> 진행자 김제동씨에 대해 일방적으로 하차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 사회를 보고 ‘쌍용차 사태’에 관해 “쌍용을 잊지 말자. 우리 모두 약자가 될 수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해 보수 진영에서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아왔다.


손석희 “하차설 내가 퍼트렸다고?”

한편 이번 논란과 관련해 손석희 교수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MBC의 공식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어떤 답변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손 교수는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인터뷰 요청이라면 거절한다”며 “특히 그것(하차설)과 관련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아직 회사(MBC)에서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그에 대해 나서서 할 말이 없다”며 “나와 통화도 하지 않은 것으로 해 달라. 미안하다”고 말했다.

MBC 측은 손 교수의 교체 소식이 언론에 전해진 이후 15일 현재까지 명확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MBC 내부 인사의 말을 인용해 그의 하차가 사실상 확정됐다는 보도만 이어졌을 뿐이다.

미심쩍은 것은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손 교수의 하차 시기까지 내달 17일로 못 박았으면서도 손 교수 본인은 물론 MBC조차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 평론가 변희재(미디어워치 대표)씨는 ‘빅뉴스’ 기고를 통해 손 교수와 엄 사장이 고의로 하차설을 퍼트려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변씨는 또 “손석희 하차설을 처음 언론에 흘린 것은 손 교수 본인”이라며 일련의 상황은 MBC와 손 교수가 합작한 ‘쇼’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그는 “정상적인 나라의 정상적인 언론인이라면 스스로 부끄러워서 출연 못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손 교수를 겨냥했다.

이 같은 변씨의 주장에 손 교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손 교수는 변씨의 ‘하차설 자작극’ 주장에 대해 “답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전혀 금시초문”이라며 허탈한 심경을 드러냈다.


#손석희 프로필

▶ 출생 : 1956년 6월 20일
▶ 신체 : 178cm/75kg
▶ 혈액형 : O형
▶ 소속 :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가족 : 아내, 슬하 2남
▶ 방송데뷔 : 1984년 MBC 앵커
▶ 학력 : 휘문고-국민대 국문학 학사-
미네소타대 저널리즘 석사

경력 :

▶ 2006.03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문화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 2005~2006.02 MBC 아나운서국 국장
▶ 2004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 2003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1부 부장대우
▶ 2002.03~2003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2부 부장
▶ 2000.09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 1999.04~2002.03 MBC 아나운서국 차장
▶ 1997.04~1999.04 MBC 아나운서국 차장대우
▶ 1989.11~1992.10 MBC 노조 교육문화부장,
대외협력위 간사

수상경력 :

▶ 2008 MBC 브론즈 마우스상
▶ 2007 제3회 한국참언론인대상 (시사토론부문)
▶ 2006 제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라디오진행자상
▶ 2003 한국아나운서 대상
▶ 1995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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