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피겨계 ‘연아’와 ‘非연아’로 양분 된다”


‘김연아 선수’가 또 다시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었다. 141일 만에 세계 랭킹 1위에 복귀. 그의 우승은 이제 놀라울 것도 없다. 한 외신 기자는 “피겨계는 김연아 선수와 김연아가 아닌 선수로 구분된다”고 말할 정도다. 그만큼 그의 위신은 하늘 높다. 그는 지난 18일 끝난 ISU시니어 그랑프리 1차대회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세계 랭킹 순위에서 랭킹 포인트 3960점을 마크,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이로 인해 적수가 없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전세계가 주목하며 열광하고 있는 그의 성공비결을 알아본다.

국민여동생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 하는 그녀, 피겨 마왕! ‘김·연·아’선수.

90년대 IMF를 벗어나는 원동력을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와 LPGA 골퍼 박세리 선수가 일임했다면, 2010년 새 경제 지표를 여는데는 그녀의 활약상이 돋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빛 요정이라는 닉네임에서 알수있듯이 그의 가냘픈 체구에서 나오는 모습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이제는 우리나라 국민들 뿐 아닌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더욱이 그를 동경하는 후배들도 늘어나면서 그녀는 ‘1인 기업’으로 성장할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번 공식대회에서 우승함에 따라 그의 과거는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그 힘든 과거를 이겨낸 원동력이 되었다는 그의 인터뷰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힘든 시기를 이겨냈기에 우승 트로피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변 이야기다.

그의 어머니는 “남 몰래 흘린 눈물이 많다. 연아가 지금도 많은 노력을 하며 세계 정상을 위한 순항을 이어가지만, 많은 고통을 동반했다. 아프다고 울 때면 내 마음도 아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만큼 그의 주변에서 눈물과 고통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그 역시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우승트로피를 손을 거머쥘 때면 자신 주변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지난달 18일 막을 내린 ISU피겨스케이팅 대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훈련 모습은 물론 모든 것이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스포츠 정신’이란 포장된 틀에서도 많은 선수들은 그의 훈련 모습을 조심스레 관찰하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시합 당일에는 ‘해바라기 씨앗 논란’이 불기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중 트리플 플립 점프를 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바 있다. 이는 김연아에 앞서 연기를 한 아사다 마오(일본)의 연기가 끝난 후 아사다 마오의 팬이 던진 해바라기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

일부 피겨 팬들은 경기장에 던져진 해바라기에서 씨가 떨어져 김연아의 연기에 지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아사다 마오 다음 순서로 연기를 펼친 나카노 유카리는 경기장에 떨어진 해바라기 씨가 제거되기까지 프리스케이팅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김연아는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김연아는 “얼음이 패여 있었던 것 같다. 스케이트 날이 얼음에 걸리면서 스리턴(점프에 앞서 몸을 360도 돌리는 자세)이 빨리 됐다. 타이밍을 잃어서 넘어질까 봐 아예 점프를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내 실수를 다른 이유에 끼워 맞추고 싶지 않다. 남 탓하는 건 싫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또 한 번 세계적인 스타의 대범함을 보인 것이란 호평이 줄을 잇는다.


007시리즈 주제곡은 최고 아이디어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인 ‘영화 007시리즈 주제곡’은 이번 대회 최고의 관심거리면서 아이디어였다. 남자 선수들이 갈라쇼 프로그램으로 주로 쓰던 음악을 쇼트프로그램에 사용하면서 어떤 작품이 나올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쇼트프로그램 역대 최고점(76.12점)에 단 0.04점 차인 76.08점을 받으며 호평을 받았고, 의상과 안무의 조화가 뛰어났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특히 김연아의 마지막 연기가 본드걸의 이미지를 잘 살렸다는 평이다.

김연아는 “음악과 의상만 신경 썼는데 마지막 총 쏘기 동작에서 뭔가 허전해 손톱에 검은색 매니큐어를 칠했는데 손동작이 많았던 관계로 더욱 돋보였던 것 같다”며 “작은 것 하나가 분위기를 바꿨다”고 미소 지었다.

또한 그가 보여준 자신감도 이번 대회 우승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프리스케이팅 1차 연기 중 트리플 플립 점프 타이밍을 놓쳤지만 당황하지 않고 다음 연기를 훌륭하게 마무리 지었다.

대회 결산 인터뷰에서 그녀는 “어릴 때는 실수하면 당황하고 다리까지 후들거렸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극복했다. 이제는 실수를 해도 나머지 연기요소에서 잘하면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김연아는 “지난 세계선수권 때 스핀과제 ‘0점’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에도 실수를 했다. 그런데도 오히려 점수가 높아져 ‘앞으로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대회 때마다 여운을 남기는 게 더 발전할 기회가 된다”고 덧붙였다. 보통 선수들이 중압감에 심리치료를 받고 평소에 잘 되던 점프도 경기 당일 실패하기 일쑤인 점에 견주면 정신력은 놀랍기까지 하다.


피겨여왕의 놀라운 정신력

빙상장 밖에서도 그의 활약은 대단하다. 그를 활용한 기업들이 마케팅에 불을 댕기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가을세일 마지막 주인 지난달 20일부터 26일까지 이번 경기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영화 007시리즈 테마음악과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를 전국 10개 점포의 실내 BGM(매장음악)으로 하루에 20번 이상 방송했다.

백화점 BGM은 하루 100여곡 가량 방송되는데, 월별 150~200곡을 선정해 돌려가며 사용하기 때문에 한 곡을 하루에 20번 가량 방송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백화점 측은 설명했다.

이번에 매장에서 이들 음악을 방송하게 된 것은 ‘쇼핑할 때도 김연아 선수가 연기했던 음악을 듣고 싶다’는 고객들의 요청이 40여건 이상 접수됐기 때문이라고 백화점 측은 전했다.

1990년대에는 백화점에서 고객의 신청곡을 받는 것이 활발했지만, MP3 보급 등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인터넷에서 쉽게 내려 받아 들을 수 있게 된 뒤로는 신청곡 접수가 뜸한 상황이었다.

현대백화점 백성혜 고객서비스 팀장은 “세일막판 백화점을 찾은 고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매장음악을 김연아 선수의 경기 곡으로 교체했다”며 “김연아 선수의 활약을 떠올리며 고객들의 기분이 좋아지고 소비심리가 회복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연아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연아빵’과 ‘연아 케이크’를 판매하는 CJ푸드빌의 뚜레쥬르 역시 김연아 선수와 관련된 이벤트를 마련해 진행 중이다.

그랑프리 시리즈 일정 중 김연아 선수가 출전하는 1차전과 5차전 일정에 맞춰 뚜레쥬르 매장에서 연아빵을 사는 고객들에게 오는 12월 일본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파이널 전을 직접 관람하며 응원할 기회를 준다.


마케팅 기업 ‘함박웃음’

김연아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주얼리 브랜드 제이에스티나는 최근 김연아의 꿈을 주제로 만든 스케이트 주얼리 ‘09 김연아 스케이트 컬렉션’을 새롭게 출시했다.

또한 국민은행 적금인 ‘김연아 적금’이 또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출시된 ‘피겨퀸 연아사랑적금’은 이달 19일까지 4943억 원을 유치했다.

김연아의 우승 소식이 전해진 19일 하루 동안에는 무려 1100여 계좌, 107억 원이 팔렸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 상품은 출시 초기에 고객들의 주목을 받았다가 한동안 주춤했는데 최근 김연아 선수 우승소식에 또 다시 가입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아사다를 비롯한 경쟁자들은 ‘김연아 따라잡기’에 혼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김연아는 그동안 고질적으로 괴롭혔던 허리와 고관절 부상을 훌훌 털어버렸고 컨디션도 완벽하다. 결코 안주하거나 긴장의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김연아의 독주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연아는 이제 ‘마이웨이’만 가면 된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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