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1366년(공민왕15) 4월초.

최영 장군이 귀양을 간 지 일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국권을 한 손에 휘어잡은 신돈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으나, 조정대신 모두가 그 위세에 눌려 감히 탄핵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임금보다 더 큰 권력을 쥐고 있는 신돈의 잘못을 간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우정언 이존오(李存吾)는 약관 26세였다. 그는 58년 전 충선왕이 복위한 해(1308)에 우탁이 지부상소를 올린 것을 떠올렸다. 그는 ‘나라가 어지러운데 침묵하는 건 참선비가 아니다’라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좌사의대부 정추(鄭樞)와 함께 목숨을 걸고 공민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방약무도한 신돈은 말에 오른 채 궁궐을 드나들고 있으며 황공하옵께도 전하와 더불어 한자리에 앉아 꺼릴 줄을 모르옵니다. 신돈의 집에 재상이 찾아가더라도 저는 높은 자리에  버티고 앉아 재상에게 뜰아래에서 절하게 하니 그 오만함과 방자함은 과거의 이자겸(李資謙)보다 심하옵니다.

또한 신돈은 부녀자의 송사가 있을 때 용모가 수려하면 겉으로 불쌍하게 여기는 척하고 간음한 다음 송사에 이기게 해주었습니다. 때문에 과부들은 그를 위해 화장을 하고 여알(女謁, 여자가 신돈을 찾아가는 것)이 크게 성행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신돈은 국가의 원훈 이제현 대감을 ‘나라의 도둑’으로 비방하고 구국의 명장 최영 장군을 귀양 가게 했습니다. 전하께오서는 이 나라 사직을 위해 이같은 요물을 속히 물리치시어 조정을 광명정대(光明正大)히 하시옵소서.

나라를 걱정하는 추상(秋霜)같은 상소문은 조정을 힘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게 만들었다.

공민왕은 이존오의 상소문을 읽고 노발대발하여 상소문을 불에 태워 버렸다. 이존오는 입궐하여 공민왕 앞에 꿇어앉았다.

공민왕은 신돈을 옆에 앉혀놓고 이존오를 호되게 꾸짖었다.

“네 감히 이 나라의 큰 동량을 모함하다니, 괴이하도다! 무슨 음모가 있는지 이실직고 하렸다.”

“전하, 상소장에 적힌 내용은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의 생각을 그대로 전한 것뿐이옵니다.”

“네 이놈! 네 눈에는 왕사가 그런 인물로 보이더냐?”

“전하께오서는 지금 요승에게 홀리고 있사옵니다.”

“이놈, 발칙하도다! 감히 누구를 능멸하려 드느냐!”

“전하, 소신은 오로지 종사를 위해 충간을 드린 것뿐이옵니다.”

공민왕은 수염발이 빳빳이 곤두서고 어깨가 들먹거리고 숨소리가 가빠졌다. 신돈을 대신한 공민왕의 한풀이 꾸짖음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존오는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어버렸다. 그는 공민왕의 책망이 끝나기가 무섭게 임금과 나란히 앉아 있는 늙은 여우 신돈을 향해 벼락같은 호통을 쳤다.

“네 이노옴! 간특한 중놈이 감히 전하와 자리를 나란히 하다니, 어찌 이다지도 무례할 수 있느냐. 그러고도 네가 고려의 신하라 할 수 있다더냐!”

이존오의 청천벽력 같은 호통과 범 같은 기개에 눌린 신돈은 저도 모르게 아랫자리로 내려와 앉았다.

 

공민왕은 더욱 노발대발하여 명했다.

“저 놈을 당장 순군옥에 하옥하라!”

“예, 전하!”

한편, 이제현은 이때 동주(東州, 철원)의 지장사에 있었다. 이제현은 치사(致仕) 후 개경에서 지친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지장사를 자주 찾았다. 지장사는 궁예(弓裔)의 철원 궁전 뒷산인 고암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년 전 홍건적의 침입으로 불타 삼분의 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초입에 들어서기만 해도 자생하는 차향(茶香)을 마신 것처럼 흐렸던 정신이 맑아지는 청정한 곳이었다.

이제현은 지장사의 주지인 자혜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자혜 스님은 당대의 큰 스승이었던 무외 스님의 제자로 출가하여 40년 전 민천사에서 득도(得道)를 하였다.

이 당시 ‘비승비속(非僧非俗)이 나라를 망친다고 《도선비기(道詵秘記)》에 쓰여 있는데, 이는 바로 신돈을 가리키는 말이다’라는 풍문이 지장사까지 전해졌다. 그만큼 신돈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농단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려 삼천리 방방곡곡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백성들은 신돈의 망동을 불안한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가복인 만복은 개경에서 지장사까지 말을 타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쉴 틈도 없이 이존오의 옥사사건 전말을 낱낱이 이제현에게 아뢰었다.

“이존오가 신돈을 탄핵한 상소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목숨이 명재경각(命在頃刻)에 달려있습니다. 신돈은 원송수(元松壽)와 경복흥(慶復興) 대감 등을 배후로 지목하여 반대파들을 일망타진하려는 대형옥사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으음…….”

이제현은 만복의 보고를 듣고 나서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조용히 말했다.

“만복아, 행장을 꾸려 개경으로 가자꾸나.”

이제현은 서둘러 노구를 이끌고 개경으로 출발했다.

이틀 후. 송림현(松林縣) 도원역(桃源驛)을 거쳐 개경의 수철동 자택에 당도한 이제현은 급히 제자 이색을 찾았다.

이색은 신돈에 의해 한 때 추방당할 위기에 봉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공민왕이 그를 교육과 과거제도 개혁의 중심인물로 임명했기 때문에 신돈은 어쩔 수 없이 신진 유교 세력의 동조를 얻기 위해 이색을 비롯해서 그의 제자 정몽주, 정도전, 이숭인 같은 선비들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노 스승의 부름을 받은 이색은 급히 이제현의 집으로 달려왔다.

“스승님, 부르셨사옵니까?”

“목은, 이존오의 옥사사건 전말을 알고 있는가?”

“예, 알고 있사옵니다.”

“이존오가 걱정이 되어 급히 귀경했네.”

“곧 국문(鞠問)이 열릴 예정이옵니다.”

“이존오는 자네와 함께 고려 조정을 이끌어 나가야 할 동량이 아니던가. 그는 목숨을 걸고 신돈을 탄핵했네. 늙어 쓸모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을 대신해서 사지(死地)로 나선 것이네.”

“고려의 인재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사옵니다.”

“목은, 자네가 정녕 이존오를 살려 낼 수 있겠는가?”

“스승님, 금상과 신돈을 설득해서 스승님의 뜻을 받들도록 하겠사옵니다.”

며칠 후. 초여름 밤인데도 날씨는 후텁지근했다. 타오르는 관솔불의 주위는 하루살이들이 떼를 지어 날고 있었다. 원덕전(元德殿) 앞뜰에서 국청이 열렸다. 형틀까지 준비 되었다. 공민왕은 찬성사 이춘부, 밀직부사 김란, 그리고 첨서밀직 이색, 동지밀직사사 김달상(金達祥)으로 하여금 국문하게 하였다.

이춘부는 이존오의 배후를 캐기 위해 얼굴을 붉히며 추궁했다.

“너는 아직 구상유취(口尙乳臭)한 어린 동자인데 어떻게 스스로 세상물정을 알겠느냐. 반드시 사주한 놈들이 있을 것이다. 어서 이실직고 하렸다!”

이존오는 털끝만한 흔들림도 없이 쓴웃음을 머금은 채로 대답했다.

“나 혼자 하였소. 나라에서 동자(童子)가 아는 것이 없다고 여기지 않고 언관에 두었으니, 감히 간언을 하지 않고 나라를 저버리겠소이까?”

마치 이존오가 이춘부를 국문하는 것 같은 심문과정이었다. 이춘부는 턱수염을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저 발칙한 놈을 매우 쳐라!”

“예!”

이춘부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살점이 퉁겨지는 잔혹한 매질이 이어졌다. 잠시 후 최영에게 구원(舊怨)이 있는 밀직부사 김란이 다시 국문을 주도했다.

“너는 경복흥(전 시중), 원송수(전 정당문학)와 공모한 것이 틀림없으렷다!”

“그 두 사람은 모두 요승 신돈이 거세하려 한 분들이라는 것만 알 뿐이오. 나는 누구와도 공모한 적이 없소.”

“네가 상소문에서 익재 대감과 최영을 비호했는데, 그 사람들도 너의 배후가 되느냐? 내가 이미 알고 있거늘!”

“그 두 분을 아끼고 걱정하는 백성들의 심정을 전했을 뿐이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