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라이온스클럽 부산세계대회 성공 확신”


세계 최대의 민간봉사단체인 국제라이온스협회 부산지구 ‘라이온’들이 ‘국제라이온스클럽 제95차 부산세계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2012년 세계 200여 개 국에서 5만여 명의 글로벌 리더들이 참가하는 부산세계대회는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항도부산의 비전을 각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최중열 대회 준비위원장을 비롯하여 박희채 총재, 이병재 당선 부총재, 총재고문회 이달수(李達洙) 회장 등 7300여 회원들의 부산세계대회 성공개최를 위한 열정이 오대양 육대주를 뒤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위치한 동해통상(주)과 서울 용산구 원효로의 (주)대성반도체 대표이사 집무실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이달수 회장은 자리에 앉을 틈도 없이 “주위 많은 라이온들로부터 2012년을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물심양면에서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고언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가난 속에서 꽃피운 리더십

그는 “1996년 JC세계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7300여 라이온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훌륭한 분이고,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출중하기 때문에 그 열정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면 역사에 길이 남을 대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 최고행정관리자과정, 동서대학교와 부산외국어대학교의 A.M.P 과정을 수료하고 부산지구 청년회의소 25대회장, 한국청년회의소 부회장, 재단법인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뼈은행장, 부산시 하키협회장, 대한하키협회 부회장, 2002아시안게임 대회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인물.

소판 돈 35만원을 마중물로 삼아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자수성가한 그는 경남 창녕군 남지읍 월하리 22번지, 30여 가구가 사는 조그마한 동네인 월평부락에서 6남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집안일보다 마을이나 문중의 일에만 신경 쓰는 말 그대로 ‘선비’였고, 동네 이장이었다. 남의 산에 가서 나무할 줄도 모르는 그런 성품의 소유자여서 나무하는 것은 순전히 그의 몫이었다. ‘공부를 해봤자 면서기나 할텐데’ 하는 회의 때문에 공부보다는 운동을 좋아했고 싸움에서나 나무하는 일은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동생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어 산에 가서 나무를 해 팔았던 ‘조로(早老)의 장남’이었다.

60년 만에 찾아오는 백말띠 해에 태어난 준마였을까. 그는 시골농사보다는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부산으로 올라왔다. 고향의 어른이 하던 국제시장의 잡화점 점원으로 취직을 했다. 말이 취직이지 월급도 없이 1년간 밥만 먹여주는 조건으로 일을 배웠다.

빨리 창업해 버젓한 점포하나 갖고 싶었지만, 6남1녀의 빈농의 집안에선 엄두도 못 냈다. 1977년에 결혼한 뒤 시골에 내려갈 차비도 없던 시절, 결혼반지를 잡혀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소 판돈을 선뜻 아버님이 주셔서 부산으로 와 시작한 것이 그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자전거 루트 세일’이었다.


근면과 성실로 자수성가

“하루는 서면에서 서대신동과 하단으로, 하루는 서면에서 부산대학교까지 (그래서 지금도 하체가 튼튼하다) 다녔어요. 당시 봉급쟁이 월급이 5만원에서 10만원 하던 시절인데 열심히 땀 흘려 내 장사해보니까 월수입이 50만원이 넘어요. 신바람이 났죠. 시골 부모님께 다달이 10만원씩 보내드리곤 했죠.”

전국에서 최초라고들 했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오토바이로 루트 세일을 했고 그 다음에는 자동차로 했다고 한다. 부산에 있으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현시대에서 말하자면 성과급제도라고 할까 직원들이 매출을 올리면 일정금액의 원가는 회사에 입금하고 남는 이익금은 직원들이 가져가는 제도를 도입해 잡화업계에서 전국에서 가장 매출이 많은 가게로 키워나가면서 세상을 향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근면과 성실함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는 서면시장부근 우인들의 권유로 청년회의소(JC)활동을 시작했고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생활의 틀을 깨고 타인들에 대한 봉사를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적게 가진 사람이면 그대로 많게 가진 사람은 또 그대로 인류에의 봉사가 우리들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경이로움을 배워 나갔다고 했다. 처음 분과위원회를 개최할 때 잊을 수가 없었던 에피소드. 10명도 안 되는 회원들 앞에서 연설할 때는 대통령 취임사보다 더 엄숙하게 한 것 같았다. 열심히 봉사해 사무국장, 상임부회장, 회장의 소임을 두루 역임하며 리더십과 소양을 길렀다.

한국JC부회장을 끝으로 쉬고 있을 때 장석봉 회장의 끈질긴 설득으로 광복라이온스클럽에 입회한 것이 라이온과의 질긴 인연이 된 것. 1년 만에 세종라이온스클럽을 창립해 초대회장까지 맡았다. 지금 5년차에 접어드는데 75명의 회원들과 열심히 봉사에 매진하고 있다. 세종라이온스클럽 김문대 회장은 “이달수 창립회장의 ‘앞서가는 봉사, 으뜸가는 클럽’의 표어처럼 보이지 않게 소외된 불우이웃들에게 정성을 다해 봉사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의 봉사

바쁘게 앞만 보며 달려온 그에게 아름다운 봉사의 인생을 살도록 이끌어 준 사람이 바로 동반자인 부인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묵묵히 믿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부인에게 항상 고맙다고 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정을 부인에게 받는 것 같아 시간이 흐를수록 애틋한 정이 더욱 깊어만 가는 것 같은 부창부수의 이달수-이하숙 부부. 책과 그림을 좋아하는 부인에게 뜰이 넓어 꽃을 가득 심고도 과일나무를 많이 심을 수 있는 조그만 갤러리 하나 지어주고 싶다고 했다. 사람을 좋아해 밤늦게 찾아가도 웃으며 맞이해주는 두 부부의 열매가 잘 영글어 가고 있어 머잖아 예쁜 꽃을 피울 것 같다. 언제나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이달수 회장 부부의 A형과 B형이 빚어낸 찰떡궁합의 하모니가 아름다운 봉사로 승화돼 어둡고 까칠한 이 세상의 등불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태규 부산취재본부장]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