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사령관’ MB의 마지막 히든카드

2008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원전수주 효과’로 MB맨들에 대한 불편한 민심이 수그러들고 있다. 정권 초기 ‘고소영 내각’ ‘부자내각’의 오명을 뒤집어썼던 이명박 정부 1, 2기 참모진들이 대규모 원전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며 국민적 ‘호감’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 특히 현 정권 2인자로 상당기간 자리를 지킨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인기가 수직상승했다. 지난달 27일 한국전력이 주도하는 한국컨소시엄이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400억 달러(약 47조원)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수주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과 더불어 한승수 전 총리가 성공신화의 숨은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1월 이명박 대통령의 비밀특사 자격으로 UAE 왕실, 정부 최고위층과 막후 협상을 벌인 한 전 총리는 ‘MB 자원외교’의 시작이자 완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승수 전 총리는 지난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요르단에서 재정고문을 지낸 ‘중동통’이다. 중동경제에 대한 책까지 출간했을 만큼 상당한 네트워크를 가진 한 전 총리는 이번 수주전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선택한 마지막 히든카드였다. 그 결과 이 대통령은 원전 선진국 프랑스를 따돌리고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50조원 대의 원전수주를 이뤄냈다.

한 전 총리는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사업을 수주하기까지 ‘발로 뛰는 자원외교’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원전수주 기획 사령탑 역할을 했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특사로 UAE에 급파됐다.


“촛불시위만 없었다면…”

한 전 총리가 UAE 원전수출에 뛰어든 건 지난 2008년 6월이다. 1978년 국내 첫 원전인 고리 원전이 건설된 지 30돌을 맞아 원전을 차세대 핵심 수출품목으로 만들기 위한 특별팀(TF-태스크포스)이 꾸려진 것. 그러나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등으로 정부가 치명타를 맞으면서 한 전 총리를 위시한 ‘자원외교’는 빛이 바랬다.

한 전 총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로 정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다시피 했다”며 “하지만 한국이 원전 수출국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UAE 원전수출의 본격적인 포석을 깐 것은 쇠고기 파동이 벌어진지 꼬박 1년 만이었다. 지난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 참석을 위해 프랑스로 향하던 한 전 총리는 도중에 UAE 아부다비에 들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왕세자와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총리 등 정권 실력자들을 잇달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국 원전기술의 강점을 설명하고 여타의 원전 강국과 비교해 한국이 가진 기술 경쟁력을 소상히 알렸다. 프랑스의 원전 기술력이 국제 시장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상황에서 한국의 수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한 전 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러나 한국 제품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설명하자 UAE 측도 조금씩 반색했다”며 “1400MW(메가와트)급 원자로를 58개월 안에 짓는 곳은 우리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한 전 총리에 따르면 우리 원전의 고장률은 0.6% 정도로 상당한 안정성을 자랑한다. 1400MW(메가와트)급 원전을 기준으로 공사 기간은 평균 58개월 정도이며 최대 48개월에 공사를 완료할 수 있어 평균 100개월 이상 걸리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경쟁력이 높다.


터키, 요르단 등 추가수주 가능

한국에 원전수주 의사를 타진한 것은 UAE가 처음이 아니다. 당초 한국형 원전에 관심을 보인 첫 국가는 터키였다. 한 전 총리에 따르면 당시 한전은 조건이 맞지 않아 수주전에서 빠졌다.

하지만 이후 공사를 맡은 러시아가 진행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자 터키는 최근 한국에 또 다시 수주의사를 타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시노프에 2차 원전을 추진 중인 터키를 상대로 한전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 위해 뛰는 중이다.

터키 말고도 한국형 원전에 관심이 높은 나라는 또 있다. 역시 중동국가인 요르단이다. 한 전 총리는 인터뷰에서 “압둘라 요르단 국왕도 원전에 관심이 있다고 해 지난 3월에 요르단 아카바에 가서 현장을 보고왔다”고 말했다.

5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를 따 왔지만 한 전 총리의 걱정거리는 줄지 않았다. 바로 인력난과 우라늄 확보 문제다. 앞으로 추가 원전수주가 이뤄진다면 이를 감당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동력’인 까닭이다.

한 전 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앞으로 원전을 수주하면 할수록 사람이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원전 인력은 2000명 정도다. 원전 1기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기술자는 200명 수준으로 현재 계약이 체결된 아부다비 건설현장에는 총 1000명의 기술자가 파견돼야 한다. 현재 국내 대학에 원자력관련 학과가 개설된 것은 불과 4개 학교 뿐이다.

한 전 총리는 “공사를 따와도 기술자가 없으니 결국에는 국제 컨소시엄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제대로 된 세계적인 기업이 되려면 지금보다 좀 더 조직화하고 국제적인 기업의 면모를 갖춰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능력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인력난과 함께 고민거리로 떠오른 우라늄 수급 문제도 넘어야할 산이다. 원전을 가동하는 원료인 우라늄을 확보하는 것은 수주량이 늘어날수록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008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때 우라늄 1년 반치를 확보했다”며 “수주를 해 지어놓고 운영하다 원료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자원외교 4단계 구상 중 3단계

이번 UAE 원전수주는 한 전 총리가 재직시절 구상한 자원외교 4단계 구상 중 세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008년 취임과 함께 4단계 자원외교를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1단계는 아직 자원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투르크메니스탄 등 미개척 국가를 상대로 석유·가스 등을 공동으로 개발해 이를 나누는 것이다. 2단계는 원유를 수입하는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산유국을 통해 원유 수급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3단계는 현재 진행된 원자력을 수출산업화 하는 것이고 마지막은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확보해 수출상품으로 삼는 것이다. 다시 말해 1, 2단계는 안정적인 수입원 확보 차원의 문제이고 3, 4단계는 저탄소 전기를 생산해 수출하는 산전국으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었다.

한 전 총리의 구상은 MB정권이 유지되는 동안 연속성 있는 자원외교 지침이 될 전망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그를 비밀특사로 파견한 이 대통령의 의중이 누구보다 완강한 까닭이다. 한 전 총리는 이번 원전수주 성과의 공을 이 대통령과 원전 관련 연구원, 기술자들에게 돌렸다.

그는 또 우리와 막판까지 경쟁을 펼친 프랑스 아레바사도 자원 강국을 위해 함께 가야할 동반자임을 강조했다.

한 전 총리는 “우리가 이번 수주전에서 프랑스 아레바사와 경쟁해 이겼지만 사실 아레바도 훌륭한 기업”이라며 “경쟁자로 여길 것이 아니라 앞으로 원전시장에서 서로 협력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상대로 여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한승수 전 총리 프로필

▶출생 : 1936년 12월 28일 (강원도 춘천)
▶가족관계 : 슬하 1남 1녀
▶학력 : 요크대학교대학원 경제학 박사

수상
▶2007. 제7회 자랑스런한국인대상 국위선양부문
▶2004. 영국 왕실 대영제국 명예기사
(KBE: Knight of the British Empire)

경력
▶2009. 10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2008 OECD 각료이사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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