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탄생 100주년

이병철 회장의 생가(아래)

호암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가 열리는 등 호암 재조명 열기가 뜨겁다.

호암은 현대그룹의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 경영자로 꼽힌다. 일본의 소니 등 세계 최고의 기업을 제치고 넘버원 자리를 꿰찬 삼성전자의 저력은 호암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돈벌이에 집착한 경영인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기업을 경영하는 철학이 있었다.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인간본위 경영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는 생전에 인재를 육성하는데 기업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의 이런 철학은 오늘날 전 세계 경영자들이 익혀야 할 필수 항목으로 자리 잡았다.

대구 에서는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 대구상공회의소와 대구시는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일인 이달 12일을 하루 앞둔 11일 동상 제막식과 기념 포럼, 음악회 등을 열 계획이라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대구는 삼성의 모태인 삼성상회가 최초 설립된 곳이다.

또 지역 상공계와 대구시는 삼성상회 터에 삼성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제일기획이 디자인 안을 마련하고 있고 설계가 끝나는 대로 오는 3~4월 공사를 시작해 내년 상반기 완공할 예정이다.

삼성상회 터는 28세 청년이었던 고 이병철 회장이 1938년 청과물과 건어물, 국수를 파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한 삼성의 발상지이다. 대구상의는 앞으로 중구 인교동 삼성상회 터 인근에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의 생가 기념사업 등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기업 발자취’ 정리 사업을 검토할 계획이다.


호암의 인재중심 경영

호암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은 대구시 뿐 아니라 곳곳에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호암은 타고난 선견지명과 뛰어난 식견 그리고 인재를 귀하게 여기는 경영철학으로 세계최고의 기업을 일궈냈지만 정작 그에 대한 조명은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호암에 대한 연구와 조명은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활발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호암에 대한 평가가 매우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일본 기업인들 사이에선 호암의 정신이 투영된 삼성이 일본의 기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반면 국내에선 재벌들의 부(富) 세습을 문제 삼고 비리를 캐내는 데만 관심이 모아졌다. 이에 이제라도 국가 경제를 일으키고 세계 최고 기업을 만든 위대한 기업인인 호암에 대한 조명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호암은 인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는 진리를 일찌감치 간파했다. 이는 유대인이 남긴 신비의 경전 ‘캅베드’ 내용과 일치한다. 호암의 인재육성은 주변의 경영인들도 감탄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삼성에 근무한 경험을 타 기업에서 높이 사는 이유는 바로 삼성의 인재육성 노하우 때문이다.

호암은 생전에 “내 일생을 통해 80%는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 데 시간을 보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또 “기업은 사람”이라는 이념을 경영철학으로 삼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 연수원인 삼성연수원을 세운 인물도 호암이다.

호암은 1957년 국내 기업 최초로 사원 공개채용 제도를 실시했다. 공체 1기 사원은 모두 27명으로 그중 5명은 전문경영인으로 육성돼 삼성 계열사 사장직에까지 올랐다.

호암은 학벌보다 인성을 중시했다. 이것은 그의 인재채용시험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채용 시 학력과 인성을 각각 50:50으로 평가했다. “아무리 우수한 두뇌라도 인간됨됨이가 앞서야 한다.” 호암이 남긴 말이다.


선구적 안목 최고 기업 일궈

1968년 2월, 호암은 전자산업에 뛰어들었다. 이때는 보릿고개를 완전히 넘어서지도 못했던 시기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전자사업을 시작하려하니 준비를 하라”는 호암의 지시에 윤종용 현 삼성전자 고문을 비롯해 열정을 가진 젊은 삼성 직원들로 준비팀이 꾸려졌다. 윤 고문은 ‘삼성전자 신화’를 일궈낸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196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자공업의 연간 수출액은 4200만달러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우리나라의 저임금을 활용한 미국계 회사들의 전자부품조립수출이 70%를 차지할 정도로 전자산업의 조건은 열악했다.

이때 호암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본은 1950년대에 전자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 불과 10여년 만에 서구와 겨루게 되었다. 기술만 도입하면 삼성도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나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확신한다.”

그의 자신감은 현실이 됐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기업이 됐다.

호암의 3대 경영철학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다. 이 철학의 중심은 사업보국이다. 사업으로 나라에 보답한다는 의미의 사업보국을 위해 기업을 경영하려면 인재를 육성하고 합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호암의 생각이다.

호암은 자신의 ‘경영 비결’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나는 사원이 입사를 하면 영원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공정한 승진의 기회를 주고 적재적소에 배치해 정당한 보수를 줬다. 또 사장에서 말단 사원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지도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모든 책임을 맡겨 자기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각별히 신경을 기울여 공정한 인사원칙에 어긋남이 없도록 노력했다. 이것이 나의 확고한 경영방침이다.”


안일과 안주는 나의 적

호암은 스스로 경영자가 아닌 기업가로 불리길 원했다. 호암의 에너지는 ‘창조적 충동’이었다. 그는 안주와 정체를 매우 싫어했다. 호암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따금 나의 생명감을 확인하고, 또 언제까지나 청신한 창조력을 지속시켜 나가기 위해 쉴 새 없이 사업을 벌여나간 것이 아니가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언제나 안일을 혐오하고 도전과 시련을 반겨왔던 것도 이런 때문인 것 같다. 한마디로 나에게 사업의 확장은 내 자신의 인간적인 원숙도와 평행돼 나간 게 아닌가 여겨진다.”

성공대로를 달렸을 것 같은 호암의 삶은 사실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시련과 좌절을 반기며 도전을 즐겼다.

호암은 처음 손댄 정미소 사업에서 큰돈을 벌었지만 그 돈으로 나중에 땅을 샀다가 낭패를 봤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은행에 돈이 묶이면서 크게 손해가 난 것이다.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결심은 이때 한 것이다.

그러나 실패와 좌절은 계속됐다. 삼성물산을 통해 많은 돈을 모았지만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됐고 시중은행을 인수해 현대적 은행업에 도전하고자 했던 꿈은 5·16군사쿠데타로 물거품이 됐다. 또 한국비료는 불미스런 사건으로 국가에 헌납해야 했고 12·12사태로 야심차게 시작했던 동양방송을 신군부에 내줘야 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호암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그게 터특한 것이 ‘보보시도량(步步是道場)’이다. 호암이 생전에 종종 인용한 경구로 인생걸음 하나 하나가 곧 수행이라는 의미다.

호암은 이에 대해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로 도량이라는 생각 아래 사업을 계속 일으켜 왔다. 인생은 도량이고 나에게는 끊임없이 사업을 일으켜 가는 것이 나 자신에 대한 연마였다. 인생이라는 석재에 신의 모습을 새기는 것도 좋고, 악마의 모습을 새기는 것도 좋다. 다만 나는 그 석재에 사업을 위해 산 한 사나이를 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본을 두렵게 한 호암

일본 경제계는 오래전부터 삼성을 주목해 왔다. 그리고 삼성을 견제하기 위해 삼성의 뿌리인 호암을 치밀하게 연구해 왔다. 일본의 경영 평론가 기타오카 도시아키는 2005년 <삼성이 두렵다>는 제목의 책을 썼다.

그는 삼성을 ‘에일리어’으로 비유하며 삼성의 위협을 일본에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지금 일본에 뼈아프게 파고들고 있다. 삼성은 일본을 넘어 세계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도입부에 “세계 최강의 삼성전자를 만들어낸 최대 공로자는 창업자 이병철이며, 그를 말하지 않고는 오늘의 삼성을 말할 수 없다. 아들인 2대 회장 이건희도 천재적인 경영자이지만, 맨주먹으로 거대 그룹을 길러낸 부친 이병철은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호암이 추구한 경영자적 자질에 대해 ▲높은 이상을 가질 것 ▲독립독보, 고고한 정신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변신해 갈 것 ▲변혁과 위기에 대한 정세 판단력 ▲사전준비와 계획의 용의주도함 ▲과감한 결단력 ▲눈앞의 이익과 효과에 구애되지 않는 대국관(大國觀) ▲사업의 기회를 재빨리 간파하고 창조하는 날카로운 안목 등 이상 8가지로 정리했다.

저자는 특히 호암의 제일주의 정신을 주목하고 있다.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이 정신이 아들인 이건희 회장에게도 그대로 계승돼 오늘날 삼성 신화의 근본적인 추동력이 된 것으로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삼성은 일본 기업에 두려운 대상이다. 일본을 너무나 잘 아는 2대에 걸친 최고경영자가 경영해 온 회사다. 그리고 지금도 일본을 연구하고 있다. 이것 하나만 봐도 삼성은 아주 힘겨운 상대다. 이에 반해 일본 기업은 오만해져 적을 알아야 한다는 손자병법을 잊은 지 오래”라고 탄식했다.

또 저자는 국내에서 삼성비판의 주재료가 되고 있는 세습경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삼성을 옹호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책에서 “위대한 창업자의 뜻을 이어받아 기업을 어떻게 성장,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그 힌트가 삼성 이병철, 이건희 부자 2대의 이야기 속에 있다. 삼성이 세계의 초우량 기업이 된 최대 요인은 이병철, 이건희 부자의 2대 60년간에 걸친 원맨형 경영에 있다. 일본에서는 원맨형 경영, 오너 경영, 독재형 경영이 의심할 여지없이 나쁜 것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삼성을 보면 이 상식에 의문의 부호가 붙는다. 더욱이 오너 경영이 나쁘다는 논리적인 근거는 없다. 독재형 경영이든 미주형 경영이든 좋은 경영은 좋은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liysun.co.kr


#호암의 경제 기여도 압도적

국내 경제 경영학자들 가운데 호암이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는 시각이 90%이상을 차지한다. 이코노미플러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호암의 경제발전 기여도에 대해 응답한 학자들 58.5%가 ‘매우 크게 기여했다’고 답했다. 또 ‘크게 기여했다’고 응답한 이들은 36.5%였다. 학자들이 꼽는 호암의 업적 중 가장 큰 것은 반도체 사업 투자다.

학자들은 호암의 반도체 사업 진출과 대대적 투자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IT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합리적 경영과 관리기법을 도입해 삼성그룹의 경영시스템을 확립한 점도 같은 점수를 받았다.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저력은 이런 경영시스템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으로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투자해 경제 발전 및 수출 증대에 만은 기여를 한 점이다. 또 인재경영도 호암의 업적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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