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vs 보수 대리전’ 두 논객 진검싸움으로 번졌다

변희재(좌) 진중권(우)

최근 법원의 PD수첩 광우병 보도 무죄 판결 등으로 정점에 달한 진보와 보수진영 사이의 ‘막장’ 대리전이 두 대표논객의 법정공방으로 2차전에 돌입했다.

일명 ‘듣보잡 소송’으로 알려진 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교수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사이의 법정싸움이 지난 4일 변 대표의 1승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진 전 교수가 법원 판단에 불만을 드러내는 한편 변 대표를 형사 고소하겠다는 뜻을 밝혀 두 논객의 혈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진중권 전 교수와 변희재 대표는 각각 진보와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간판급 논객이다. 두 사람은 이념적 차이만큼 감정의 골도 깊다. 서울대 미학과 선후배라는 과거의 인연이 무색할 정도다. 최근 ‘듣보잡 소송’을 계기로 진 전 교슈와 변 대표의 오랜 악연이 세간에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두 사람의 싸움이 이념,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 ‘저질 폄훼’라는 시각이 적지않다. ‘지성인의 상식’을 넘어섰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듣보잡 소송 1라운드는 일단 변희재 대표의 승으로 끝났다. 법원은 변 대표에 대한 모욕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진중권 전 교수에 대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박창제 판사는 지난 5일 모욕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진 전 교수에 대해 “검찰의 공소 사실이 전부 유죄로 인정되나 표현의 정도, 글 게시 성격 등으로 고려해 형을 정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듣보잡 소송’의 시작은?

재판부는 “진 전 교수는 변 대표에 대해 ‘함량미달’ ‘듣보잡(듣도 보도 못 한 잡스러운 사람)’ 등 경멸의 표현을 사용했으며 만화 속 악당 가가멜에 비유해 조롱하는 듯한 글을 게시했다”며 “이는 모욕적인 표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혹을 제기할 때는 수긍할 만한 자료를 제시해야 하는데 진 전 교수는 이를 제시하지 못해 허위 사실 유포에 해당한다”며 “변 대표에 대한 글은 변 대표의 개인적·사회적 비리 의혹에 대한 감정적 표현을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듣보잡 소송’의 시작은 지난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 전 교수는 지난해 1월 변 대표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과 관련, 진보신당 인터넷 당원게시판에 ‘가엾은 조선일보’라는 글을 올렸다.

진 전 교수는 글에서 변 대표를 ‘듣보잡’으로 지칭하고 같은 해 6월에는 변 대표를 우회적으로 지칭한 ‘비욘 드보르잡’이라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역시 변 대표를 비꼬았다. 변 대표는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일명 ‘변듣보’로 불리며 상당한 곤혹을 치렀다.

검찰은 지난해 1월 14일 진 전 교수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죄(명예훼손)와 형법상 모욕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진 전 교수는 2009년 1월 진보신당 인터넷 당원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변씨를 ‘듣보잡’으로 지칭하면서 “조중동은 함량미달의 듣보잡을 방송과 인터넷을 비판하는데 효용가치를 두고, 함량이 모자라도 창피한 줄 모를 정도로 멍청하게 충성할 사람은 그 밖에 없으니 싼 맛에 쓴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물론 진 전 교수가 아무 이유 없이 가만있는 변 대표를 싸잡아 비난한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사건의 발단은 변희재 대표의 일간지 기고문이다.


“인계철선 삼아 형사 고소”

지난해 1월 26일 변 대표는 조선일보 칼럼에 올린 ‘실크세대론과 88만원 세대론의 소통을 위하여’란 글에서 “386세대의 무능력과 인맥 패거리를 상징하는 인물은 82학번 진중권”이라며 “진중권을 보면 전문성 없는 386의 무능이 보인다”고 진 교수를 신랄하게 비꼰 것이다.

듣보잡 논란이 이어지던 같은 해 6월 진 전 교수는 다시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한 ‘비욘 드보르잡의 근황’이라는 글에서 “요새 통 얼굴 보기 힘드네,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개집으로 숨어 버렸나. 비욘 드보르잡이 지금 뭐하고 있을까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소송으로 변 대표에게 ‘한 방 먹은’ 진 전 교수는 항소보다 변 대표에 대한 형사 고소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듣보잡 소송’ 2라운드의 서막이나 다름없다.

진 전 교수는 지난 4일 열린 자신의 선고 공판이 끝난 직후 “항소 여부는 변호사와 상의해서 결정하겠다”며 “매번 재판을 받으러 나오는 것도 귀찮아서 여기서 끝내고 싶은데 변호사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인계철선이라고 하나요”라며 “변 대표에 대해 형사고소를 해야 할 것”이라며 반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진 전 교수는 이번 판결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실제로 변 대표가 한예종에 대해 공격적인 발언을 했고 매체를 창간했다 망한 것도 여러 번”이라면서 허위사실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다른 나라에는 명예훼손죄 자체가 없다”며 “저는 이런 거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변 대표가 왜 고소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며 항소를 망설였다.

최근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과 관련해 명예훼손죄로 보는 판결이 잇따르는 가운데 진 전 교수는 “예전에는 제약이 없었는데 점점 제약이 늘어간다”며 안타까워했다.


‘10년 스토킹’의 진실

진 전 교수와 변 대표의 악연은 근 10년 째 이어지고 있다. 동문 선배이자 10년 이상 연상인 진 전 교수에 대한 변 대표의 비난과 진 전 교수의 대응은 비생산적인 소모전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일각에는 한때 진 전 교수를 선배로서 동경하던 변 대표가 자신이 쓴 책(스타비평)을 진 전 교수에게 선물했는데 그가 ‘쓰레기 같은 책’이라며 화장실 소변기 위에 두고 나온 사건 이후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도 있다.

진 전 교수는 변희재 대표에 대해 줄곧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다. 그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변희재’에 관심이 없다. 그와 엮이는 것도 기분 나쁘다”며 “그런데도 변희재는 사사건건 나를 물고 늘어진다. 빅뉴스에서 ‘진중권’을 검색하면 1백개가 넘는 글이 검색된다”고 말한 바 있다. 변 대표가 자신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 전 교수는 “아마 나를 이용해 유명해지고 싶은 모양이다. 예를 들어 사이트(빅뉴스)에서 나를 씹으면 페이지 뷰가 엄청 늘어난다”며 “소통에는 건전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장사를 하려는 속셈이다. 변희재가 먹고 사는 방법이 그것이어서 소모전은 끝나지가 않는다”고도 밝혔다. 아예 “지금까지 10년 동안 변희재에게 일방적인 스토킹을 당해왔다”고까지 주장했다.

물론 변 대표는 이 같은 주장에 펄쩍 뛰었다. 변 대표는 진 전 교수의 인터뷰 내용이 보도된 직후 본인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빅뉴스’를 통해 즉각 반박했다.

그는 “빅뉴스에서 ‘네이버’나 ‘다음’이나 ‘포털’을 검색하면 아마 200개 이상 글이 나올 것”이라며 “(나는)시가총액만 10조 가까이 되는 거대 포털과 5년 이상 싸우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일개’ 네티즌에 불과한 진씨를 공격해서 유명해지려 한다는 건 과대망상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변 대표는 또 “다만 진중권의 거짓말을 하나씩 잡아주면 미디어워치 독자들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즐거워하는 측면이 있다”며 “미디어워치가 미디어 전문 매체이다 보니 기사가 전문적인데 쉬어가는 코너로 독자들 스트레스해소용으로 진씨를 다루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듣보잡 논쟁’을 둘러싼 두 논객의 신경전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본인들도 인정한 ‘소모전’을 지켜봐야하는 대중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변희재 “반성 안 하는 진중권에 민사소송도 걸겠다”

진중권 전 교수의 형사고소 발언이 이어진 직후 변희재 대표 역시 소송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변 대표는 지난 5일 언론을 통해 “진 전 교수가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변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진 전 교수가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것”이라며 “진 전 교수는 허위사실로 글을 쓴 사람으로서 (그 내용이) 허위사실이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다. 언제까지 여기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며 “항소 여부는 진 전 교수가 알아서 할 일이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하는 지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변 대표는 “진 전 교수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라는 등의 헛소리를 해대며 반성의 뜻을 보이지 않을 경우엔 민사소송에 들어갈 것”이라며 날 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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