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기사 회생’…꿈에 그리던 월드컵 눈앞

지난 3일 이동국이 영국 런던의 로프터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코트디부아르 간의 A매치 데이 평가전에서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그야말로 기사회생이다. 자칫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또 다시 기회를 놓칠 뻔 했던 ‘라이언 킹’ 이동국이 마지막 기회를 힘차게 움켜잡았다.

이동국은 지난 3일(한국시간) 열린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 전반 4분 그림 같은 논스톱 슈팅으로 한국의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다름아닌 그의 주특기인 발리슛을 성공시켰다.

이로써 이동국은 주전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게 됐다.

지난해 8월 파라과이 전부터 쭉 대표 팀에 합류했던 이동국은 그동안 허정무 감독이 원했던 이른바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다.

동아시아대회에서 두 골로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지만 그나마 한 골은 손쉬운 페널티킥이었다. 이동국에게 끝까지 기회를 줬던 허정무 감독도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고 여전히 이동국에게는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코트디부아르전의 이동국은 달랐다. 전성기 시절 동물적인 골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기성용의 프리킥이 상대 수비수 머리에 맞고 흐르자 기다렸다는 듯 논스톱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허정무 감독도 “아주 좋은 골이었다. 이것이 이동국의 감각이고 위치 선정”이라면서 “세게 때리기보다 적절한 타이밍으로 맞췄다. 이런 것이 순간순간 나와 준다면 이동국이 대표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모처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비도 적극적이었다. 앞선 부터 적극적으로 코트디부아르를 압박했다. 경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심판의 휘슬도 못 듣고 상대 수비가 가지고 있는 공을 뺏기도 했다. 그만큼 이동국에게 월드컵은 간절한 목표였다.


부상·슬럼프 등 역경 이겨내

이동국 선수는 사실 98년 K리그에 데뷔해 신인왕을 거머쥘 때만해도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듭된 부상과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실패, K리그 복귀 후 부진 등의 시련으로 어느 순간 그는 팬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만큼 이동국의 축구 인생에는 많은 굴곡이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지난 1998년 포철공고 졸업 후 그라운드에 뛰어든 그를 두고 ‘라이언 킹’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만큼 그에 대한 기대는 엄청 났다.

185㎝의 키에 탄탄한 체격, 말끔한 얼굴, 여기에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의 능력에 많은 축구팬들은 환호했다. 축구 실력에 잘생긴 외모까지 갖춘 이동국 이었기에 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 스탠드는 오빠부대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같은 해 차범근 감독의 눈에 들어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하는 등 성장기회도 빨리 찾아왔다. 하지만 가파른 상승곡선을 보이던 그의 인기는 독이 됐다. 데뷔 첫해 11골을 기록, 신인왕을 거머쥐었던 이동국은 이후 부진한 플레이와 부상 등 불운이 겹치면서 그의 축구인생의 하향곡선을 그렸다.

1999년 8골, 2000년 4골, 2001년 3골 등 ‘특급 골잡이’라는 명성을 얻었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부진했다.

과거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이동국을 두고 “열심히 뛰지 않는 선수는 필요 없다”는 냉혹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결국 이동국은 히딩크 감독이 4강 신화를 써내려갔던 2002한·월드컵 당시 태극마크를 얻지 못했다.

이후에는 부상이 이동국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딕 아드보카트 대표 팀 감독이 이동국을 선택하려는 순간 부상이라는 악재가 터져 더욱 그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 결국 이동국은 2006독일월드컵 역시 TV로 경기를 지켜봐야했다.

이동국의 굴곡진 축구인생은 이게 끝이 아니다. 십자인대 부상을 딛고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 진출했지만 적응에 실패한 채 1년 만에 성남 일화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K리그에서도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한 해 동안 2골을 기록, 쫓겨나다시피 올 초 전북 현대로 옮겼다. 빅 리그 진출에 실패, K리그에서조차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그를 두고 많은 축구인 들은 축구인생이 끝났다고 평했다.

또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에 소속돼 있던 2007년에는 대표 팀 선배인 이운재, 김상식, 우성식 등과 함께 원정숙소를 이탈해 현지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여 1년간 국가대표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사건도 빚어졌었다.

더욱이 이동국은 월드컵과 인연이 없는 선수로 낙인 찍혔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로 데뷔했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6년 독일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2002년엔 슬럼프에 빠졌고 2006년에는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자신감 충만 100%

하지만 이날 득점으로 기다리던 월드컵 본선행이 눈앞에 다가왔다.

허정무 감독도 “이동국에게 부탁이 있다면 본선에서 더욱 잘할 수 있게 몸도 만들고, 칼도 갈았으면 한다”고 말해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이동국을 데려갈 것임을 시사했다.

입국 기자회견에서도 이동국은 “상대 수비수가 걷어낼 줄 알았는데 공이 내게 와서 발을 갖다 댄다는 생각으로 슛을 했다”고 골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동국은 “경기를 할 때마다 점점 약속된 플레이가 많이 나오고 있다. 코트디부아르전 승리의 원동력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동국은 이어 “지금부터 (월드컵 본선) 준비를 잘해야 한다. 아직 최종명단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월드컵을 준비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때문에 그의 활약이 다시 한 번 주목받는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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