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과 통일 문제 관심 보인 ‘운동권 스님’


요즘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 있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61)이다. 봉은사는 서울 강남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사찰이다. 그런데 요즘 말이 많다. 봉은사 ‘외압설’ 때문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봉은사의 조계종 직영사찰 전환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발단은 지난 3월 21일 열린 일요법회에서 명진 스님이 한 발언으로 시작됐다. 명진 스님은 이날 안 원내대표가 봉은사 사찰에 압력을 가했다고 폭로했다. 안 원내대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남의 진보적 스님으로 알려진 명진 스님에 대해 알아봤다.

명진 스님은 2006년 11월 8일 23대 봉은사 주지로 임명됐다. 취임 직후인 같은해 12월 5일부터 1천일 기도를 올리며 수행에 전념했다. 봉은사를 도심속 수행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개혁 의지 때문이다. 봉은사는 1960~ 1980년대부터 조계종 이권 다툼의 온상으로 인식됐다.

1988년에는 조직폭력배가 사찰에 난입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봉은사 주지로 임명된 뒤 1천일 기도와 함께 재정 공개, 봉은사 비전 발표 등으로 혁신적인 개혁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직후 등록신도가 20만 명으로 대폭 늘었고 기존 80억 원대인 연 예산 규모는 2010년 136억 원으로 늘었다는 점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고교 졸업 후 해인사 성철 스님 밑에서 1년 동안 수행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인 1974년 법주사에서 탄성 스님을 은사로 정식 출가했다. 1969년 백련암으로 성철 스님을 찾아가 법명을 받았지만, 성철 스님이 일본어 공부를 하라고 하자 도망쳤다는 일화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강남의 노른자 땅에 위치한 부자 사찰 봉은사 주지로 임명되자 불교계에서는 경계했다. 하지만 1천일 동안 사찰 밖을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매일 1천배씩 실천에 옮기자 신도들에게도 긍정적 평가를 받아냈다. 기도 기간 동안 매일 새벽 4시30분, 오전 10시, 오후 6시30분 3차례에 걸쳐 1천 배 절을 올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일인 지난해 5월 29일 단 한번 사찰 밖을 나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1천일 기도가 끝난 직후에는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법난 규탄대회로 감옥살이

명진 스님은 오랫동안 시민운동과 통일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운동권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봉은사와의 인연도 1985년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 시절 운동권 인사들에 대한 공안탄압에 반발, 봉은사에서 투쟁을 벌이면서 맺게 됐다. 그는 같은해 10·27 법난 규탄대회로 인해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94년 조계종 종단 개혁 당시에는 승복을 벗어 불전에 올린 뒤 종단 개혁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대로 옷을 벗겠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수많은 스님들의 마음을 움직여 종단개혁의 촉매제가 됐다. 그는 2000년부터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으며 대북 교류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 2006년에는 ‘민족21’이라는 진보성향 잡지의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이적단체로 규정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범민련은 결성 단계였던 1991년 11월 16일 이미 사법기관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됐다. 이 단체는 또 1997년 5월 16일 대법원에서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이적단체로 재차 규정된 바 있다. 명진 스님은 이 같은 이적단체 후원활동으로 인해 불교계에서도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일부 불교 관련 단체는 지난 22일 성명을 통해 “봉은사 주지 자리에 목숨을 걸겠다고 신도들과 언론에 선언한 명진스님이 수행자의 인격으로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총무원과 일전불사의 막말 언행을 보이는 것은 승려가 된 초심,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크게 벗어나 봉은사 주지자리에 대한 탐착을 부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 장례식 참석 고민

정치권 문제에도 관여했다. 그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 탈당 여부를 고민하던 2007년 3월, 손 전 지사의 탈당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지사는 탈당 직전 봉은사에서 열린 법회에 참석해 “절을 하면서 문득 요즘 제 생각이 나면서 명진 스님께서 전부터 해주시던 말씀이 생각났다”며 “천길 낭떠러지를 떨어지는데, 풀포기 하나 잡으려고 안달을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손 전 지사의 지지모임에도 참여했다. 2007년 4월 결성된 ‘선진평화포럼’에는 명진 스님을 비롯해 박형규 목사, 소설가 황석영, 화가 임옥상 등 진보성향 인사들이 참여했다.

그가 세간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부터다. 불교계 안팎에서 비난이 일수도 있는 일이었다. 천일기도 기간에 산문을 나온다는 것은 자신과 신도들과의 약속을 깨는 것이 되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령 부처님이 1만일 기도를 하다가 9999일째 이런 상황을 맞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나는 부처님께서 산문 밖으로 나가셨으리라고 본다.” 그는 당시 노 전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에 깊은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권양숙 여사의 부탁을 받고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재차 부탁을 받고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는 것. 보수신도들은 그의 이런 정치적인 행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그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정부의 불교 차별에 대해 20만명의 불자가 서울광장에 모여 항의 집회를 했다. 자기들이 당한 불이익에 대해선 그렇게 분노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의 약자들이 당한 일에 대해선 정치적인 일이라며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봉은사 앞에 ‘검찰 중수부 소속 검사들은 봉은사 출입을 삼가주십시오’라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진보단체 활동에 대한 우려도 나왔지만 그는 “지켜야 할 전통의 가치를 지키는 보수도 가치가 있다. 문제는 보수냐, 진부냐가 아니라 정직하냐, 정직하지 않느냐에 있다”고 답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조계종 각종 주요 현안에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며, 2000년대 들어서는 대북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조계종단의 대표적 개혁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봉은사는 어떤 곳?

봉은사는 794년 신라 원성왕 10년 때 견성사(見性寺)란 이름으로 창건됐다. 창건자는 영축산에 은거하면서 보현행을 닦았던 신라 원성왕대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다. 조선시대 보우대사(1509~1565)가 주지를 지낸 곳으로 유명하다. 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배출한 곳으로, 승과고시를 치르던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추사 김정희가 타계 사흘 전에 친필로 ‘판전’이라는 현판을 쓴 경전보관법당인 판전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지금 봉은사 자리는 강남 한복판으로 바뀌었고, 봉은사 1년 예산은 130억 원 대에 이르는 국내 단일 사찰 중 최대 재정 규모다. 등록된 신도만 20만명에 달하는 국내 거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명진 스님 어록

▲ 남의 통화까지 엿듣고, 메일까지 공개해 남의 생각까지 통제하려 드는 그들에게 잘못 보여 좋을 것이 없겠지만, 권력의 주구가 되어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그들도 남에게 당하는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라고 그랬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중수부 검사 출입금지 현수막에 대해
▲ 힘없는 사람들은 모조리 고소고발해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법망을 다 피해가게 하는 것. 그게 정상적인 법치인가요? 저는 천성관 검찰총장 같은 사람, 뇌물죄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해야 존경받고 무섭고 그런 거지, 힘 있는 사람들 다 빠져나가는 법이 무슨 법입니까. 깡패세계와 같은 것 아니에요?
▲ 단풍놀이, 물놀이 가자는 말이 있습니다. 기차놀이 한다고 해서 애들이 허리띠에 새끼줄을 매서 칙칙폭폭 다니는 놀이가 있습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문동 재래시장에 가서 뻥튀기도 하나 들고 어묵 들고 다니는 것이 서민놀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민놀이.
▲ 시아버지는 시위하는 망루에 올라가 있다가 불에 타죽고 자기 남편은 과격시위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여인도 있습니다. 이것 어떻게 할 겁니까. 이런 문제는 국가가 해결 안 합니까? 서민정치를 한다면 용산 현장에 가서 그 사람들을 달래고 그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야 되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부끄럼 모르는 배부른 돼지들이 활개칩니다.
▲ 그 동안 불교가 권력 앞에 비루했습니다. 잘못된 것은 지적해서 고쳐야 합니다. 봉은사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가사 벗고 산문 떠나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 한국불교 문제점 굉장히 많습니다. 한국불교는 선종으로 봅니다. 그런데 과연 선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제사종, 기도종, 관광종, 입장료종입니다.
▲ 천일기도는 쇼입니다. 쇼를 하려면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좋은 모습 보이면 따라올 것입니다. 불교미래 밝히는 모델이 될 것입니다. -천일기도에 대한 비난의 시각에 대해
▲ 진짜 슬퍼봤소? 밥을 먹다가도 울고, 잠을 자다가도 울컥 울음이 쏟아져 이불을 적시는 것이오.
▲부대사(497-569)는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난다고 했는데 나는 밤마다 망상으로 잠이 들고, 아침마다 망상과 함께 일어난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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