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호 준위, 대한민국 대표적인 군인정신의 표상이 되다

백령도 인근에서 침몰한 천안호에 대한 수색작업을 벌이다 지난달 30일 사망한 해군 특수전여단(UDT·Under water Demo lition Team) 故 한주호 준위가 사고 전날인 지난 3월 29일 동료들과 함께 해군 상륙함 성인봉호에 서 있는 모습.

지난 3월 26일 천안함 사고 발생 후, 실종자 장병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임무를 수행하다 30일 순직한 한주호(53) 준위. 천안함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에 뛰어든 그였다. 차가운 바다도, 높은 풍랑도 그에게는 어떠한 장애물도 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대표 군인, 대표적인 군인 정신의 표상이라고 칭송받고 있는 그의 사망 소식은 전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3월 30일 오후, 서해 백령도 부근 천안함 침몰 현장에서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이던 해군 특수 전여단(UDT) 대원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UDT요원 한주호 준위. 사고 발생 당시, 지인들은 “바다가 너무 거칠다. 잘못될까봐 걱정된다”며 그의 행보를 만류했다. 53세 나이의 30여년 잠수 베테랑 한주호 준위. 이제는 물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나이, 물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군번의 그였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실종된 장병들을 구해야 한다”며 강한 유속과 높은 수중 압력 등 열악한 환경이 기다리는 사건 현장으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달렸다.


위험한 사고 현장에서 4일 동안 쉬지 않고 구조 작업 벌여

“내가 경험이 많고 베테랑이니 직접 들어가겠다” 故 한 준위의 마지막 말이었다.

지난 29일, 외신 기자의 카메라에 찍힌 53세 노병(老兵)의 모습은 군인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연상케 했다. ‘하루 잠수하면 이틀을 쉬어야 한다’는 안전규칙도 바다 밑 캄캄한 어둠에 갇혀 있는 후배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집념에 차있는 그를 말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한 준위는 내리 나흘 잠수했다가 싸늘한 몸으로 떠오르고 말았다.

사건 현장은 유속이 최대 5노트에 이를 정도로 거센 조류와 단 1cm 차이로 무려 3.9도c로 떨어지는 엄혹한 환경에서 구조 작업하기는 어려운 곳이다. 유속이 5노트라면 태풍에 몸이 날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해 자칫 휩쓸릴 위험까지 있었다.

그가 꼭 직접 물속에 들어가 구조해야 할 상황도 아니었다. 지난 35년간 수중폭파(UDT) 요원과 교관으로 뛰면서 얻은 지식으로 후방에서 후배들을 배치·지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2년 뒤 전역을 앞두고, 오는 9월 직업 보도군으로 나설 채비를 시작하는 그에게 부대는 “이제 그만 쉬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조국과 해군을 위해 직접 나서야 할 때”라며 잠수복을 챙겨 입었다.

천안함이 동강나 가라앉은 수심 45m 현장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압의 다섯 배가 넘고, 반면 공기양은 1/5 밖에 되지 않는다. 그 곳에서 5분만 작업해도 급격히 피로해지고, 숨이 가빠질 정도로 열악하다고 한다. 수온도 체감온도 영하에 가깝다. 입에 끼우는 호흡기가 얼어붙을 만큼 차갑다. 가뜩이나 흐린 바닷물에 바닥까지 뻘이어서 바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뿌옇다.

한 준위는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급히 나오느라 얼굴도 못보고 나온 아내가 몇 차례 전화를 했는데도 모를 정도로 구조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다 그는 결국 3일이 넘는 시간동안 쉬지 않고 구조작업을 벌이다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故 한 준위는 함수에 탐색줄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장에서 함께 구조작업을 벌였던 한 해군 관계자는 “함수가 침몰한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부이를 설치하기 위해 직접 들어가겠다며 자원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우직한 군인 한 준위는 ‘호랑이 교관’이자 ‘아버지 같은 선배’

“그는 전 군인을 사랑한 진정한 군인이었다”

故 한주호 준위와 군 생활을 함께 했던 해군특수전(UDT) 전우회 소속 회원들은 그를 이같이 회상했다.

지난 1978년 해군에 입대해 故 한 준위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김모(49)씨는 “교관님은 한국 최고의 잠수 전문가였다”며 “아마도 후배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먼저 뛰어들었다 변을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후배 홍모씨는 “한 교관은 항상 후배 장병들을 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줬다”며 “잘못된 시스템이 (한 준위를)죽음으로 내몬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한 준위는 1975년 2월 군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해 군 생활 36년, 해군특수전(UDT) 부대 경력 35년의 베테랑 수중폭파 전문가다.

지난해에는 청해부대 1진에 자원해 소말리아 해역에서 파병 임무를 수행한 바 있다. 그는 청해부대 1진에 지원한 뒤 작년 9월에 귀국했을 정도로 열정적인 군생활을 했다.

청해부대 1진 최고령자였던 한 준위는 임무수행 중 총 7차례에 걸쳐 해적퇴치 작전에 참여했고, 지난해 8월 바하마 국적의 노토스스캔호가 해적들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는 해적선에 직접 승선해 해적을 퇴치하기도 했다.

1975년 해군에 입대(준사관 41기), 이듬해 미 해병 단기과정을 수료했다. 해병단 수중파괴대(UDT 전신) 소대장을 지냈다. 이어 특수전여단 대테러 담당, 폭발물처리대 중대장, UDT/ SEAL 소대장 등을 지냈다.

15년이 넘게 수백 명의 특수전 요원을 양성해 낸 ‘호랑이 교관’으로도 유명하다. 얼마 전, 한 준위의 교관 시절 동영상이 공개됐다. 그 동영상에는 KBS 수요기획 ‘지옥에서 살아오라’에 출연했던 모습이 담겨있었다. 당시 특수전 교육반장을 맡고 있던 한 준위가 붉은색 팔각모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채 엄한 모습으로 훈련생도들을 교육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후배들로부터 ‘대한민국 UDT의 산 증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그는 ‘최고의 요원’이었고, ‘아버지 같은 선배’였다.

후배들을 아끼고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정 많은 선배로 수많은 후배들 사이에서 깊은 존경과 신뢰를 받아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소하고 자상한 아버지

후배들에게 엄한 모습 뿐만이 아니라 따스한 정을 보였다는 것은 그의 성정을 그대로 나타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한 준위의 유족들은 그는 “책임감 있고 따뜻한 가장”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 김말순씨(56)는 경남 진해 자은동 더산 해군아파트 자택에서 한 준위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오열했다. “모든 생활에 적극적인 분이었고,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었다”며 눈물을 삼켰다. 앞집에 사는 박영란씨(46·여)는 “부부싸움 한 번 하지 않을 정도로 온화하고 자상한 분으로 아파트에 소문났다”고 회상했다.

한 준위를 더욱 그립게 하는 것은 비단 그의 ‘자상함’ 뿐만이 아니다. 그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촌지 한 번 받지 않았을 정도로 ‘청렴’한 봉사자였다. 지난 설에 한 준위와 마지막 가족모임을 가졌던 막내동서 강동석씨(50)는 “집안 대소사를 가장 먼저 챙길 만큼 책임감 강한 집안 어른이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강씨는 “오로지 부대 봉급만으로 생활하며 두 자녀를 대학에 보낼 만큼 검소하고 가정적인 형님이었다”고 말했다.

1996년 24평 해군 아파트로 이사 온 한 준위는 검소한 생활을 시작했다. 도배와 장판은 입주 당시 그대로였고, 침대, 장롱, 식탁 등의 가구는 1983년 결혼할 때 장만한, 다 낡은 것들이었다. 전자레인지는 옛 삼성 마크가 선명했고, 냉장고는 LG상표가 아니라 ‘금성’이었다.

친척들은 “오로지 해군 봉급만으로 생활했고, 자식들 교육비 때문에 좋아하는 술도 집에서 마실 정도로 검소했다”고 말했다.

한 준위는 슬하에 아들 한상기(25·육군1사단)와 딸 한슬기씨(20·경산대)를 뒀다. 아버지 같은 사나이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상기씨는 그 바람대로 현재 육군 장교로 재직 중이다. 그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하고도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머릿속에 험한 물살과 아버지 나이가 자꾸만 겹쳐 “이젠 그만두시라”고 했던 장교 아들도 가슴 속 아픔을 누르고 반듯하게 서서 추모객을 맞았다. 그런 한상기씨를 보며, 조문객들은 “한 준위가 살아온 35년 군(軍)생활이 헛되지 않았다”고 칭찬했다.

딸 한슬기씨는 슬픔에 몸을 가눌 수 없는 듯했다. 뒤늦게 비보를 접한 그는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오후 8시 반께 집으로 들어왔다. 안방에 들어서면서 “아빠한테 언제 가냐. 빨리 가야한다. 아빠 빨리 보고 싶다”고 울먹거렸다.


故 한 준위 조문 행렬 이어져

故 한주호 준위의 빈소에는 시신이 안치된 30일 밤부터 살신성인의 정신을 애도하는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빈소에서는 유가족을 비롯해 해군 2함대 및 국방부 관계자들이 나와 하루 동안만 1,500명이 넘는 조문객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31일 참모들에게 “(한 준위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이다. 35년을 나라에 바쳤다”면서 “최고의 예우를 갖추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 날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빈소에 보내 유족들에게 위로 서신도 전달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이 날 오후 5시40분께 빈소를 찾아 “이런 사고가 발생해 훌륭한 군인을 잃게 된 것에 대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추서된 보국훈장 광복장을 유가족들에게 수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김성찬 해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육ㆍ해ㆍ공군 장성 및 해군 특수전여단(UDT) 선ㆍ후배들도 빈소를 찾아 슬픔을 나눴다. 앞서 오전 10시40분에는 천안함 실종자 가족 대표 7명이 조문했다.

이들은 유가족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위로했다.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이 날 국회 본회의 직후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와 의원, 당직자 등 20여 명도 빈소를 방문,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정세균 대표와 김진표 송영길 최고위원 등 민주당 지도부는 오후 빈소에 헌화하고 고인의 영면을 기렸다. 앞서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빈소를 조문한 뒤 방명록에 ‘진정한 영웅’이라는 글을 남겼다. 경남 진해 해군기지사령부에 차려진 故 한주호 준위 분향소에도 조문의 발길이 이어졌다.

일반 시민들도 한 준위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한편 故 한 준위는 바다에 들어가기 직전 동료 구조 대원과 마지막 통화를 하며 UDT 최고참 요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되뇌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UDT동지회 특임사업단 유호창(52) 부단장은 “형(한 준위)이 30일 점심 시간에 전화를 걸어와 ‘오늘 내가 물에 들어가서 함수 객실을 전부 탐색하고 오겠다’고 했다”며 눈물지었다.

영결식이 3일 날 이루어진 가운데, 당일 부인 김말순씨와 딸 슬기씨는 9시께 진해 해군부대에서 헬기를 타고 경기 분당에 위치한 국군수도병원으로 향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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