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향한 거침없는 쓴 소리 속에 ‘촌철살인’ 담겨있다

지난해 KBS개그콘서트 10주년에 특별 출연한 김미화(왼쪽에서 두번째)씨가 ‘분장실의 강선생님’ 코너에서 연기하고 있다.

한국 코미디 여왕 김미화(45)가 위기에 놓였다. 지난 5일 KBS 김인규 사장이 김미화의 퇴출을 지시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내레이션 부족이라는 것. 하지만 방송계 안팎에선 윤도현, 김제동 등에 이은 표적 퇴출이라는 분석이다. 모 방송사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맡은 그녀는 개그맨이지만 해박한 정치 지식으로 ‘촌철살인’ 방송진행자로서 인정을 받았다. 현재 그녀는 방송과 더불어 시민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 때문인지 그녀는 손석희 아나운서와 더불어 정계 러브콜 대상 1순위에 꼽히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을 때까지 정치는 하지 않고, 개그맨으로 남겠다고 한다. 못생겼단 이유로 설움 받던 신인 시절, 유산의 아픔과 이혼에서 재혼까지 바람 잘 날 없었다던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반추해본다.

김미화의 본명은 박미화다. 때문에 한때 그의 성이 새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에 2005년 김씨는 ‘호주제 폐지’를 앞세워 자신의 가슴 아픈 사연을 공개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그래도 웃는다

김씨의 아버지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문제는 아버지가 집에는 말도 하지 않고 그녀와 혼인신고를 하고 살았던 것. 그러나 이내 그녀가 도망을 갔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는 김씨의 출생신고를 위해 면사무소를 찾았을 때 비로소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시골에서는 혼인신고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등록되지 못한 채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그나마 김씨는 아버지의 호적에 등록이 돼 박씨 성을 가졌지만 어머니는 호적상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 그저 한 ‘아가씨’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김씨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는 폐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 때부터 그의 호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김씨가 호주제 폐지에 목소리를 높인 이유도 자신이 겪었던 경험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호적상 처녀로 있던 어머니의 호적으로 나와 동생이 올라가면서 내 이름은 박미화가 아닌 김미화가 됐다”며 “아이들 유학 때문에 비자 신청을 하러갔을 때야 내 호적이 아버지와 어머니 쪽에 다 기재된 사실을 알았다”고 호주제 문제를 지적했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출연 기회 조차 없어

김씨는 결국, 2005년 자신의 이야기를 세간에 공개하며 호주제 폐지홍보대사 활동에 박차를 가했고, 현재 호주제는 폐지됐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를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한 입담과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오프라 윈프리. 그 역시 어린 시절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오프라는 자신의 상처를 가감 없이 세상에 털어놓으며 각종 사회 내 문제점을 지적, 공감을 얻어냈다. 김씨는 “오프라가 내 역할 모델”이라며 “(오프라처럼)따뜻함이 배어나는 진행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비록 슬픈 어린 시절이었지만 타고난 ‘끼’는 숨길 수 없었다.

대여섯 살 무렵부터 동네 사람들 앞에서 배삼룡, 서영춘 흉내를 내며 코미디언을 꿈꿨던 그였다.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 없는 아이’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억척스러울 정도로 밝았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런 노력 끝에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KBS개그맨 공채 2기로 합격,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대개 사람들은 김미화는 신인시절부터 승승장구해 무명시절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혜성처럼 등장한 순악질 여사의 캐릭터가 강렬하게 각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뷔 시절 김씨는 가난과 세상의 편견때문에 무명의 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여자 코미디언은 남자 코미디언의 보조 역할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그는 “여자는 남자 옆에서 환하게 웃고만 있으면 OK였다”며 “동기들은 전부 배역을 맡았는데 2년이 넘도록 배역이 없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출연할 기회가 없으니 당연히 출연료도 받지 못했다. 배고픈 시절의 연속이었다.

눈치가 보여도 악착같이 동기생들에게 따라 붙어 밥을 얻었다. 그때마다 혼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는 김씨. 슬픔은 배고픔만이 아니었다.


최고 자리에서 경험한 유산 그리고 이혼

김씨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방송국과 세상의 편견이었다.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방송에 출연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방송국 계단에 앉아 연습만 하길 2년.

드디어 그에게 인생 최대의 기회가 온다. 바로 ‘쓰리랑 부부’의 ‘순악질 여사’역할을 맡게된 것이다.

아직도 선명히 그어져 있을 법한 굵고 검은 그의 눈썹. 순악질 여사로 김씨는 단숨에 국민적 스타로 발돋움한다. 시청률도 70%에 육박, 동시간대에 적수가 없었다.

그는 “순악질 여사 덕에 한 달만에 CF만 대여섯 개가 들어왔다”며 행복했던 당시를 회상한다. 매일 이어지는 각종 행사와 밤무대 출연으로 돈과 인기, 명예까지 그는 거침없이 성공가도를 달렸다.

특히 ‘쓰리랑 부부’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한국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다.

실제 부부로 오해받을 만큼 찰떡궁합을 보여줬던 터라 세간에서 ‘혹시 진짜 부부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는 것. 특히 워낙 많은 스케줄을 함께하느라 진짜 배우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심지어 지방 공연을 갈 때는 서로의 배우자들끼리만 경치 구경을 하는 경우가 많아 ‘차라리 짝을 바꾸자’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둘의 인기는 대단했다.

모든 것이 순탄대로였다. 그러던 중 그에게 또 다시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깡’으로 버텼지만 원래 약한 몸이었던 까닭에 그는 결혼 후 임신한지 6개월 만에 유산의 아픔을 겪는다. 특히 그는 임신 중에도 모든 스케줄을 했던 자신의 탓만 같아 극심한 유산 우울증에 시달렸다. 누구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는 그에게 유산의 아픔은 그 어떤 것보다 괴로웠다.

특히 그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가장 절망적인 일을 당했다”며 “아이를 잃어가면서까지 ‘남을 웃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자살의 검은 유혹까지 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올 것 같지 않을 정도로 운 뒤에야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코미디에 매진하기로 했다. 그렇게 가슴 한켠에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오던 7년 만에 그녀는 드디어 두 딸을 출산했다. 늘 바빠 제대로 딸들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김씨.

그러나 행복도 잠시, 2004년 4월 돌연 그는 이혼 신청을 했다. 전 남편의 부정과 상습적인 가정 폭력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사건은 그와 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다.

모두가 그의 팔자가 사납다고 말했다. 아니 여자 코미디언들의 삶이 그러하다 수근댔다.

그러나 김씨는 피하지 않고, 적극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고, 자신보다 힘든 상황에 놓인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주요 이슈마다 촌철살인 속 시원한 멘트로 어느덧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그를 응원하고 있다. 그 사이 현재의 남편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린 그는 더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평생 코미디 하고 싶어”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를 시작으로 김씨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꾸준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비롯해 KBS 1TV ‘TV 책을 말하다’ 등 무려 5개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 중인 그는 코미디언에서 벗어나 시사, 교양 분야로 영역을 넓혀왔다. 이 밖에도 녹색연합,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유니세프 등 홍보대사까지 숨 가쁘게 살아온 김씨.

그 덕에 유독 연예인의 사회 참여가 으레 ‘정치욕(欲)’으로 귀결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김씨 역시 표적이 됐다.

그때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모든 일을 정치와 상관 지어서는 안 된다”며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못박았다.

어느새 코미디언 김미화가 아닌 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자신을 보는 것이 어색하다는 그는 아직도 몸 개그가 하고 싶은 진짜 코미디언이다.

그러나 최근 KBS 김인규 사장은 지난 5일 열린 임원회의에서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의 내레이터를 맡은 김미화의 출연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내레이션 역량 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부분 여론은 “KBS가 윤도현과 김제동에 이어 김미화까지 퇴출시키는 것은 암묵적인 정치색 탄압이다”라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지난해 MBC가 김씨와 손석희를 퇴출하려다 역풍을 맞고 중단한 데 이어 벌어진 사건이라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그만큼 정치권을 향한 그의 입담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여자 손석희’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그저 ‘코미디언’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PD들이 자신에게 몸 개그를 마음껏 시켜주길 바란다며 아직도 몸 개그를 구상한다고.

굴곡진 삶 속에서도 받은 것이 많아 그만큼 주고 싶다는 따뜻한 영혼의 소유자 김미화. 솔직한 입담으로 국민의 애환과 공감을 이끌어 내는 그의 열정과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 김미화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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