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미친 그가 ‘영화박물관’이다

photo@dailypot.co.kr

영화연구가 정종화(67)씨의 인생은 영화를 닮아있다. 그의 모습은 영화에 미쳐 비극적인 삶을 사는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와 영화를 좋아하는 한 소년과 늙은 영사기사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평생을 영화와 함께 살아왔다. 영화사, 극장, 출판사, 영화전문 잡지에서 일했다. 그를 가리켜 영화인들은 ‘걸어 다니는 영화사전’ ‘움직이는 영화박물관’이라 평한다. 그 만큼 영화에 대한 지식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정종화씨가 꿈꾸는 ‘시네마천국’을 찾아가 본다.

“수집은 아마추어처럼, 기록은 프로처럼”

영화연구가 정종화 씨의 철학이다. 그는 한국영화 역사의 산증인이다. 영화에 대한 기록이 미비하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영화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해 온 충무로에 독보적인 ‘영화 기록가’이다.

정씨는 1919년 <의리적 구투>에서 2010년 <의형제>까지 50여년간 영화전단, 포스터를 비롯해 방대한 양의 영화자료 2만여 점을 수집했다. 이 가운데 <님자없는 나룻배>(32), <황혼열차>(57), <두만강아 잘있거라>(62), 만추(66)등은 희귀본으로 손 꼽힌다. 그가 모은 영화자료들은 한국영화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그는 “영화 포스터는 당대 사람들의 기호와 그 시대의 삶이 담겨있다.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영화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영화가 제작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영화의 자료 역시 시대를 담고 있다.

그는 이 땅에서 제작됐거나 개봉된 모든 영화의 제작년도, 흥행기록, 감독, 배우, 스텝 등을 비롯해 뒷이야기까지 모두 머릿속에 담고 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물어보면, 메모 한 장 보지 않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소상히 들려주기도 한다. 7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억력은 20대 못지않다.

정씨는“한국영화·외국영화는 막론하고 이 땅에 개봉된 모든 영화는 내 머릿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기록은 ‘암기’가 아니다. 일생을 바쳐 영화자료를 수집,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공기’와 같다. 영화가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의 자료 수집은 예술에 가깝다. 365일 외출할 땐 가방을 메고 다닌다. 그 가방 안에는 칼에서부터 고무밴드, 끈, 스카치테이프 등이 담겨져 있다.

그는 영화포스터, 전단을 비롯해 극장입장권, 영화필름, 스틸사진까지 영화와 관련된 것이라면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모았다.

그의 영화인생은 피난 시절에 시작됐다. 42년 안동생인 그는 6·25동란 때에 부산으로 가족들과 피난을 온다. 53년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는 형과 함께 존 포드 감독의 서부영화 <역마차>를 본다. 그리고 돌아오던 길에 몰래 포스터를 뜯어온다. 그것이 포스터 수집 1호였다.

그는 이때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운다. 시네마 천국을 꿈꾸는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시작된다.

그는 “극장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떼다가 직원에게 걸려 수도 없이 혼쭐이 났죠. 호주머니에는 수집용 칼과 고무줄, 가방에는 사전과 옥편을 늘 넣고 다녔죠. 통금이 있던 시절 수집용 칼 때문에 소매치기로 오인 받은 것도 수십 차례나 된다”고 말했다.

그는 늘 영화자료에 목말라했다. 발품을 팔아 극장가와 충무로에서 눈에 띄는 자료를 줍고, 영화사 창고 정리를 도맡아 했다.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지옥에 까지 간다

그의 포스터 욕심은 끝이 없다. 그는 군복무 시절에도 영화자료를 수집했다. 동생에게 월급을 통째로 보내주면서 자료를 수집케 했다. 그러면서 ‘잊어버리지 마라’, ‘빌려주지 마라’, ‘보여주지 마라’ 등 3대 철칙을 가리켰다. 또 지난 93년, 두 딸을 대학에 보내느라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마부>(61)의 포스터를 80만원에 구입했다. 한마디로 영화포스터에 미친 인생이었다.

그는 “영화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지옥 끝까지 간다”고 말한다.

정씨의 영화사랑은 끝이 없다. 영화를 보는데 타인의 방해가 싫어 요즘도 캄캄한 극장에서 영화를 혼자서 감상한다. 그리고 극장에서 돈을 주고 철칙을 고수하고 있다.


진귀한 영화자료

그는 “요즘 관객들은 극장 매너가 없다. 영화를 보면서 군것질 하고, 잡담을 나누고, 휴대폰으로 통화까지 한다”면서 “특히 영화의 엔딩타이틀을 보지 않고 일어서 나간다. 이것은 예의가 아니다. 문화가 발전 할수록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고 일침한다.

정씨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의 자료 수집에 대해 주변사람의 반응은 나빴다. “쓸데없는 것을 모은다”는 손가락질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그리고 50여년을 매일처럼 수집하고 모으다 보니 이젠 그를 이해하고 인정한다. 영화에 미친 그 남자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지영 감독의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 등을 비롯해 영화와 드라마에 중요한 소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의 영화자료 수집이 이젠 역사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자료에 가치는 얼마일까. 희귀자료라는 점에서 단순한 가치 환산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 미친 사람들의 모임 ‘영광회’

그는 서라벌예대 출신이다. 영화사, 극장, 영화잡지사에서 일했고, 1988년부터 89년까지 영화전문지 ‘월간 시네마’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는 그의 저서는 <한국의 영화포스터1, 2, 3> <영화동네사람들> <자료로 본 한국영화사1, 2> <한국영화기획1, 2> <외국영화포스터1, 2, 3>, <영화의 메카, 충무로>, <영화에 미친 남자>, <세계의 종교영화> <영화감독 박상호> 등이 있다. 홍익대와 원강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영광회’ 회원인 소설가 안정효, 정건섭 씨 등 20여명과 정기모임을 가지고 있다.

[조문영 기자] news002@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