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부 실세 K, H씨가 날 죽였다”


DJ정부시절‘이용호 게이트’의 주인공 이용호(52) 전 G&G그룹 회장이 10년 만에 입을 열었다. 지난 2001년 구조조정전문회사인 G&G그룹의 경영자인 이 회장은 대검에 의해 기업구조조정자금 횡령,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구속된바 있다. 이 회장은 99년 10월부터 2000년까지 KRP전자(주), (주)인터피온(전 대우금속)등을 인수한 뒤 전환사채를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거나 제3자에게 매각하는 수법으로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생대금 451억 여 원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았다. 정·관계를 비롯해 검찰, 국세청, 국정원 등 고위 인사들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일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당시 특검이 구성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에 대해선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DJ정부의 최고 실세였던 K씨와 H씨가 K씨로부터 로비를 받아 정치검찰을 통해 나를 주가조작 혐의를 뒤집어 씌었다”고 말했다. [일요서울]은 지난 5월 18일, 이용호 전 G&G회장을 만나 최근 근황과 자신과 DJ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내막들을 들어봤다.

-이용호 게이트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났다. 권력이 개입된 주가조작 사건이라고 했지만 실체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의 당사자로 이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 DJ정부 말기인 2001년의 정치현실을 지켜봐야 한다. 99년 이종기 변호사가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을 비롯 검사 25명에게 금품을 건넨 ‘대전법조비리’사건이 발생해 6명의 검사가 옷을 벗었다. 당시 심 고검장이 소위 ‘항명 파동’으로 이어져 정권 내내 검찰을 괴롭힌 ‘검난’(檢亂)의 시초가 됐다. 여기에 이어 ‘옷 로비 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이 발생해 DJ정권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혔다. 2000년 말과 2001년에 KDL의 ‘정현준 게이트’, MCI코리아의 ‘진승현 게이트’가 연이어 터졌다. 두 게이트에 DJ정부 실세가 개입됐다. 신용금고를 인수하기 위해 정관계 로비를 하던 G백화점 K씨로부터 로비를 받은 DJ정부 핵심실세인 K씨가 청와대를 통해 검찰에 지시 하면서 만들어진 사건이다.

-K씨가 직접 개입한 물증은 있는가.
▲ 내가 구속되기 3일전 모처에서 국정원, 금감원, 검찰청, 국세청 고위관계자들이 만나 정보동향에 대해 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안다. 당시 검찰고위관계자가 나를 구속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때 국정원 관계자는 “기업인의 구속은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검찰 관계자가 “청와대의 하명사건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DJ정부는 레임덕과 차기 대선 구도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특히 DJ의 아들들과 이른바 동교동계 가신들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그런데 호남 출신 무명의 사업가 이용호가 상장사 19 개(자기자본 4000억 원대 부채 10%)의 계열사를 거느린 회장으로 재계에 이름을 올리게 되자 타깃이 됐다. ‘DJ정권-호남정권-권력비호 기업-호남출신 신생 기업인 이용호’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고리가 성립됐다. 당시 세무조사를 받던 유력 언론사들은 일제히 정권비리로 확대 해석해 기사를 생산해 내면서 ‘주가조작’혐의를 뒤집어 씌었다. 실제 나는 DJ정부보다는 민자당(현 한나라당)에 가깝다. 광주에서도 민자당 시·지부 부위원장을 역임한 바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DJ정권과 가까운 것으로 묘사됐다. 검찰총장의 지시로 수사는 급속도로 빨리 진행됐다. 한마디로 검찰수사는 나를 구속시킨 뒤에 ‘짜 맞추기’식으로 진행됐다. 그래서 삼애인더스의 ‘보물섬 주가조작’사건이 터졌다. 실제 삼애인더스의 주가조작으로 나는 이익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주가조작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99년 KEP전자가 삼애인더스를 인수했다. 당시의 주가는 주당 2만 원대였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의 조사와 부도설 등이 시중에 유포되면서 주가는 2천 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사제 225억 원을 털어 회사에 제공했다. 회사가 정상화됐고 주가도 14000원대를 회복했다. 처음부터 주가가 2000원대 밖에 안 되는데 14,000원이 됐다면 주가조작 혐의를 부인하기 어렵겠지만, 원래의 주가는 20,000원을 상회했다. 한화 등 대기업의 주가는 당시 몇 천원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몇 만원 씩 한다. 기업이 좋아지면 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주가조작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법원 판례에서도 알 수 있다. 계열사 간의 거래에 대한 업무상 횡령, 배임혐의를 인정받았을 뿐, 미공개정보를 이용하여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에 대해선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 확정됐다.

-당시 삼애인더스의 ‘보물섬’사업은 화제였다. 호재에 힘입어 주가가 상승한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보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필리핀의 마르코스가 2차 대전 당시 일본에 숨겨둔 보물을 찾아 이것을 토대로 부를 축적, 대통령에 오른 바 있다. 또 경남기업을 인수한 대아건설 또한 ‘보물’을 통해 기업을 확장시킨 바 있다. 보물이라고 하면 금은보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물도 보물이다. 유물은 신안 앞바다를 비롯해 보령, 군산 등 여러 곳에서 출토된 적이 있다. 이것들을 찾자는 뜻이었다.

-90년대 후반 광주에서 아파트 시행업을 하다 서울에 진출해 19개 상장사를 인수하면서 급성장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 90년도 삼성, 한신, 삼호, 반도, 현대산업개발 등이 시공한 아파트의 시행을 담당했다. 그런데 95년 무등건설과 덕산건설이 부도가 났다. 덕산건설 정상화추진위가 구성되었다. 그때 나는 YS정부로부터 1300여억 원의 정책자금을 받아 라인건설, 대주건설, 남양건설 등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기업 정상화 작업을 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로 올라온 뒤 본격적인 기업구조조정 전문가로 나서게 됐다. 97년 IMF로 부도기업이 속출하자 부실기업을 인수해 우량기업으로 키웠다. 부실기업의 주식을 인수하거나 당해 기업에 대한 채권을 인수하여 출자전환하는 등의 방법으로 경영권을 확보한 후 채무조정, 신규투자 등을 통해 재무상태 건전화, 신규 사업 진출, 사업부분 통합·조정 등을 통해 수익구조 개선 등의 방법으로 기업을 정상화시켰다. 당시까지만 해도 M&A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좋지 않았다. 남이 키워놓은 기업을 빼앗는 기업사냥꾼이라는 인식이었다. 요즘은 어떤가. 세계적인 기업들이 M&A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 M&A는 기업사냥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 동력이다.

-19개 기업을 인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 매일 아침 종합일간지와 경제지를 읽는다. 그날의 기사를 검색하고, 급변하는 트렌드를 읽는다. 그걸 통해 기업에 대한 비전을 읽는다. 부실기업에는 원인이 있다. 경영자의 마인드 미숙, 도덕적 헤이, 변화하는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과거에만 집착하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기업을 인수할 때, 그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주안점을 둔다. 가령 A기업의 장점과 B기업의 장점이 합쳐지면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면 과감히 통합시킨다. 회사가 정상화된 뒤 분할하거나 분사하면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이지만, 사회적 기업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M&A의 철학은.
▲ 구조조정을 통한 내실 경영에 주력, 기업의 사회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모기업이 부도나면 하청기업까지 연쇄부도가 났다. 어음제도 때문이다. 내가 인수한 회사들은 당좌발행을 하지 않았다. 기존에 당좌거래를 하던 기업들도 당좌거래를 정지시켰다. 대신 회사에 부족한 자금을 내 개인 자금을 투입하여 빠른 시간 내에 기업의 재정을 건전하게 하는데 주력했다. 그래서 내가 구속 된 이후 당좌부도 난 회사가 없다. 이것이 노하우라면 노하우이다.

-향후 뜨는 기업분야를 말한다면.
▲ 바이오산업이 뜰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늘고 있다. 이젠 먹고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오산업이 미래에 가장 각광받는 산업이 되지 않을까 본다.

-주식에 대해 해박하다. 주식투자에 대한 비법은.
▲ 한마디로 주식은 쪽박과 대박이 공존한다. 자신이 투자하게 될 기업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공부를 해야 한다. 남들이 투자한다고 해서 따라가는 식의 투자는 안 된다. 기업의 미래가치, 존속가치, 청산가치 등을 철저히 따져서 투자해야 한다. 기업이 미래 존속 가능성이 낮거나, 기업을 청산했을 때에 현재의 가치보다 떨어질 경우 투자자는 리스크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

-MBA출신들이 러시를 이루는 M&A시장에서 고졸 출신 신화를 만들어냈다.
▲ 전남 영광에서 출생했다.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 고학으로 야간상고를 졸업했다. 상고를 다니면서 상법을 배웠다. 이것이 향후 내 인생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 가난 때문에 배움의 기회가 적었기에 더더욱 독학으로 처절하게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쉼 없이 공부한다. 학력이나 스펙보다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4월, N사의 주가조작혐의로 고소된 바 있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
▲ 금감원에서 고발한 N사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한 수사를 벌이던 중 내가 주식을 대량보유하고도 금융당국에 미신고 했다는 의혹을 샀다. 지난 2007년 5월 주식투자 목적으로 코스닥 상장사인 N 사 주식 173만 주를 대주주 김 아무개 씨로부터 매수해 대량 보유자가 됐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하지 않았고, 생명공학 자원개발사업 관련 허위 공시로 시세를 부풀린 뒤 주식을 팔아 79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이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나는 N사의 대주주 김 씨에게 주식을 담보로 돈을 대여해 줬다. 주식은 담보로 받았기 때문에 금융위에 보고할 의무가 없었다. 과거 회사가 힘들던 시절 내 개인 돈을 이곳에 투자했다. 그것이 논란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건도 큰 오해 없이 풀릴 것이라 자신한다.


재기 모색보다는 억울한 오명 벗고 싶다

-이용호 회장에 대한 선입견이 많다. 기업구조조정 전문가보다 주가조작 전문가라는 선입견이다.
▲ 나는 분명 ‘구조조정 전문가’다. 이에 재기 보다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 사회에 객관적 평가를 받고 싶다. 97년 IMF이후 한국경제와 이용호의 M&A에 대한 실질적 평가를 받고 싶다. 기업의 경영활동 가운데 M&A는 당연하다는 판단이다. 기업이 망해 문을 닫게 되면 수많은 종업원들은 길거리에 나안게 된다. 부실기업을 인수·합병해 정상화시키는 것도 기업인이 해야 할 몫이다. 나의 모든 치부가 들어날지라도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다.

-가족관계는.
▲ 이젠 적어도 가족들이 맘 고생하지 않도록 조심스럽다. 구속 될 당시 큰 딸이 고 3이었다. 이젠 결혼적령기에 들어선 딸은 중국에서 대학을 마쳤다. 아버지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 자식들을 힘들게 했다. 그래서 미안함 마음을 갖고 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정권이나 검찰,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를 더 크게 쓰시기 위해 시련과 연단을 주었다고 생각 한다. 이젠 세간의 이목을 벗어나 자유인 이용호, 기업구조조정 전문가 이용호로 인정받고 싶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사진·맹철영 기자] photo@dailypot.co.kr


#이용호 프로필

▶ 광주상고 졸업
▶ 광주대학 2년 중퇴
▶ 전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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