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 리더십 ‘주목’

지난 6월 12일(한국시간)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남아공월드컵 B조 대한민국과 그리스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된 박주영을 허정무 감독이 격려하고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유명한 책이 있다. 누구나 칭찬을 들으면 기분 좋아진다. 긍정적인 모습만을 바라볼 때 더욱 발전가능성이 있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2010남아공 월드컵에서 선전을 보이고 있는 한국축구대표팀 선수단 중에도 이를 몸소 실천하는 이가 있다. 바로 허정무(55)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그의 ‘자율·긍정·뚝심’ 3박자를 강조한 리더십이 우리 선수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허 감독의 리더십 또한 정점에 자리 잡고 있다는 평도 많다. 재계에서도 허 감독의 리더십을 본받아야 한다는말 들도 나온다. 그만큼 한국축구에 활력소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다. ‘자율·긍정·뚝심’ 3박자를 강조한 신바람 축구를 통해 본전 진출의 교두부를 마련한 허 감독의 리더십을 알아본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태극영웅들이 드디어 해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23명의 태극 영웅들이 세계를 놀라게 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에 이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본선 진출 신기원을 이룩했다. 지난 그리스 전과 아르헨티나 전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온 국민에게 환희와 탄식을 자아내게 했던 우리의 태극전사들이 당당하게 월드컵 원정 본선행의 위업을 달성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이후 56년 만의 일이다.


자율·긍정·뚝심 ‘3박자’ 빛낸 리더십

선봉장에는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이 있었다.

평소 진돗개라 불릴 정도로 강한 소신과 배짱의 리더십이 월드컵 준비기간을 거치면서 자율과 긍정, 신뢰와 소통의 리더십과 결합되면서 ‘허정무 리더십’으로 승화됐다. 이로써 허 감독의 리더십 또한 조명 받고 있다.

허 감독은 박지성에게 주장을 맡기면서 “경기장에서는 네가 감독이다. 감독이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은 주장이 대신 이끌고 리드해야 한다”며 선수들의 자율성에 힘을 실어줬다. 박지성이라는 대형 스타를 구심점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젊은 선수들의 자발적인 열정을 끌어낼 수 있었다.

올 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전지훈련 때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자서전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를 읽으며 긍정적인 사고와 신바람의 중요성을 선수들에게 심어줬다. 선수들과 미팅한 후에는 선수들끼리의 대화시간을 주고 훈련 때는 밝은 표정으로 동참하며 선수들과 눈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뚝심 승부사’의 면모는 잃지 않았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번 월드컵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1대4 완패를 당한 후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는 비장한 각오를 밝혀 마침내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외신들도 한국인 감독 최초로 승리를 일궈낸 허 감독의 뚝심 리더십을 높이 샀다. 로이터통신은 그리스전 분석기사에서 허 감독의 용병술이 히딩크 등 예전 외국인 감독들만큼이나 용감하고 혁신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통신은 “한국인 감독들은 보수적인 경향이 커 나이와 경험에 무게를 둔다. 허 감독이 2007년 사령탑에 올랐을 때도 젊음과 상상력을 가로막아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감독이 거둔 성과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면서 “그러나 허 감독이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이운재(수원) 대신 정성룡(성남)을 주전 골키퍼로 세우면서 예전 한국인 감독과 자신을 차별화했다”고 소개했다.

선수ㆍ트레이너ㆍ코치ㆍ감독 등으로 잇따라 월드컵을 치러내면서 숲과 나무를 모두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 경험이 허정무 리더십을 만들어냈다는 것. 이는 허 감독의 리더십 키워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았음을 시사한다.


‘진돗개’에서 명장으로 재탄생

2007년 12월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을 당시만 해도 그는 ‘진돗개’라는 별명처럼 고집스럽고 권위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더군다나 초기 ‘허무축구’ 등의 비판이 나오자 언론에 불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축구인생이 이번 월드컵의 선전만큼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였다. 특히 감독의 길은 더욱 험난했다. 남모를 눈물도 심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2승 1패를 올리고도 첫 경기였던 스페인전을 0 : 3으로 패한데 따른 후유증 (골득실차)으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패배해 3위에 머무르면서 2000년 10월 감독직을 사퇴했다.

이후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임하면서 7년여에 걸쳐 외국인 감독 체제가 시작되었다. 당시 ‘허정무는 무능력하다’는 독설들이 흘러나왔다. 그의 과거 명성이 밑보였을 정도다. 그가 ‘성인’ 축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78년이다. 실업 축구단이었던 한국전력에서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23세의 그에게 기회가 주어지면서 그는 승승장구 했다.

차범근 감독이 1979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해 활약하자, 이에 자극 받아 그 이듬해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에 입단했다. 여기서 활약할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이 부르던 그의 애칭은, ‘용무 후’. 허정무의 이름을 네덜란드 식으로 부른 것이다.

더불어 ‘진돗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의 고향이 전라남도 진도군이라는 점과 그의 끈질긴 승부근성과 투지에 착안한 것이다.

주로 미드필더로 뛰면서 3시즌 동안 77경기에서 15골을 넣고, 1982-83시즌 팀의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치다 1983년 국내로 복귀했다.

국가대표 경력은 이보다 더 길다. 그는 1974년부터 1986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1986년 FIFA월드컵에 출전해 본선 1차전인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끈질기게 마크했다. 이 때 그는 마라도나를 발로 걷어차 한국 축구는 ‘태권 축구’라는 오명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A매치 84경기에서 총 25골을 넣은 그는 1986년 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짧은 선수 생활이었지만, 화려했던 경력을 뒤로 하고 과감히 제2의 전성기를 시작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2010월드컵을 통해 또 다시 ‘기록제조기’ 아성에 도전했다. 성공의 실타래를 만들었다. 허 감독의 별명에서도 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부임 초기 ‘허무축구’로 비난을 받았지만 원래 별명은 강한 승부근성을 빗대 ‘진돗개’였다. 이를 응용해 부진한 경기를 펼치면 ‘똥개’로도 불렸다. 2007년 12월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으면서 새로운 닉네임이 추가됐다. 바로 ‘기록의 사나이 또는 징크스를 깨는 남자’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진면목을 보여주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그리스와의 1차전 승리로 한국인 감독으로 월드컵에서 승리를 챙긴 1호 감독이 됐다. 여세를 몰아 나이지리아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한국 축구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올렸다.

그가 장도에 오르기 전에 던진 ‘유쾌한 도전’을 보기좋게 실현시킨 것이다.

한국 축구는 남아공월드컵을 포함해 8차례 월드컵에 도전했다. 하지만 2차례만 16강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그 중 한 번은 2002년 홈에서 열린 한·일월드컵에서 이룬 성과다.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 감독이 남아공월드컵 8강을 지휘한다면 이는 히딩크 사단의 4강 신화에 버금가는 한국 축구의 영원 불멸한 기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