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안 부결에 전적으로 책임지겠다” 정치권 술렁

지난 1월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종시 입주예정 기업과 대학 MOU 체결식에 앞서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종시 수정안 부결과 관련,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밝혀 정치권에 논란이 일고 있다. 정 총리는 지난달 30일 수정안 부결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하지 못한 데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정 총리의 거취를 두고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부는 수정 작업을 진두지휘한 만큼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수정안 부결이 그의 거취 문제와 직결하진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정 총리는 담화문을 통해 “더 이상 이 문제로 국론이 분열돼서는 안 되며 모든 논란과 갈등이 해소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거취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정 총리는 담화문을 통해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옳은 일을 추진해도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면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면서 “국가와 충청 지역의 미래를 위한 호소가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인들의 목소리에 묻혔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략적 이해관계가 국익에 우선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수정안 부결을 비판한 뒤 “국회 표결이 끝난 지금 국무총리로서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앞으로 세종시를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담화문을 통해 “세종시 수정안은 제가 짊어져야 할 이 시대의 십자가로, 지난해 9월 취임 당시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제 선택은 똑같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 총리는 또 국회와 정치권에 대해서는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해도 국민 과반수 지지를 업고도 현실정치의 벽을 못 넘으면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했다”면서 “안타깝지만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며, 국회 결정에 따라 행정중심복합도시법 취지대로 세종시를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 총리의 “책임지겠다”는 발언을 놓고 청와대 주변과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사의를 표명할 상황이라면 굳이 안 피하지만 야권의 요구대로 무조건 사퇴하진 않겠다는 뜻을 정 총리가 밝힌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정 총리의 사퇴시기가 임박했다는 전망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정치권에 나돌았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결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본회의 부결 때) 책임을 지라고 하면 책임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에선 정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사실상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정 총리는 이명박 대통을 조만간 이후 직접 만나 사의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의 사의 표명은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것에 이어 이번이 2번째다.

그러나 정 총리는 이 대통령과 거취문제에 대해 아직 논의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 총리는 그동안 ‘책임질 일은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수없이 표명했고, 이번에도 같은 연장선상의 발언”이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이 정 총리의 사의를 수락할 경우 청와대와 내각의 개편 폭은 당초 예상했던 중폭 이상의 개편이 될 것으로 보이며, 그 시기도 당초 ‘7·28재·보선’ 이후에서 이전으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측은 이와 관련, 정정길 대통령 실장의 사의표명 등과 관련, 후임 인선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소용돌이 속으로

국회는 지난달 29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찬성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으로 세종시 수정 법안을 부결했다. 총리실을 비롯한 정부 기관 9부2처2청의 세종시 이전을 백지화하고 ‘기업·과학중심의 경제도시’를 건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세종시 수정 법안이 부결됨에 따라 여권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한나라당내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간 계파갈등도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간에는 ‘교육·과학·비즈니스 벨트’ 및 대기업·대학 유치 등 ‘세종시+α’의 추진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또 야당의 공격도 한층 거세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 총리는 사의를 표명한 이상 더 이상의 자리보전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과 관련해 민주당이 이명박 대통령에 정운찬 총리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퇴진과 정부기관 이전 고시 즉각 시행을 강하게 촉구했다.

충청 출신인 홍재형 국회 부의장은 지난 2일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의 소신이 국민의 전당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이제 대통령은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행복도시 건설이 1년여 늦게 추진되고 있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속히 9부2처2청의 이전고시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정운찬 총리와 함께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등의 경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운찬 총리,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등은 그동안 세종시 원안을 ‘국가의 대재앙이 되는 사업’이라고 해왔다”며 “세종시 원안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전면 개각을 실시하고 행복도시청 등 수정안을 찬성했던 이들을 모두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물난’에 허덕이는 청와대

정 총리가 사실상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내각과 청와대 개편 속도가 빨라지는 분위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늦어도 7월 중순 경에는 본격적인 인사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1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와 7·28 재보선 등의 일정을 고려해 7월초 청와대 참모진 개편, 7월말 내각 개편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됐던 시기는 재보선 이전으로 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개각의 경우 8월 초중순께로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는 정 총리 후임으로 세대와 지역, 그리고 친이-친박으로 나뉜 당내 화합을 추스를 수 있는 인사를 대상으로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다.

그러나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들이 기존의 여권 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정부의 인재난을 그대로 보여준다.

6.2 지방선거 참패와 세종시 수정안의 부결 등으로 정부 입장에선 인사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상 주요직책에는 정치색이 명확하고 마음이 통하는 인물을 심을 것으로 보여 인재풀은 더욱 더 좁혀진다.

정계만 해도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자유선진당으로 나누어져 있어 범 보수진영에서도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게다가 이미 정권 후반기에 들어선 만큼 정 총리와 같은 외부 인사를 영입하기에도 어려워 보인다.

현재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들을 보면 총리직에는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김태호 경남지사, 강현욱 새만금코리아 이사장,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MB 후반기 줄줄이 인사 교체 바람

정운찬 총리가 사퇴를 시작으로 청와대는 본격적인 인재 교체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총리와 함께 장관 7~8명도 함께 교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권 출범 당시 임명된 정종환 국토해양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과 더불어 국회 복귀를 희망하는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교체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비서실장에는 박형준 정무수석,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 백용호 국세청장,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청와대 수석 비서관에서는 정무, 국정기획, 홍보, 민정수석 등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참모진 개편 시기는 오는 12일쯤 발표될 것으로 전해졌고, 개각의 경우 재보선 이전에 단행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총리직에 거론되는 김덕룡 국민통합특보는 이 대통령과 40여년이 넘는 친분이 있고, 지난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 후보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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