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은 산울림일 뿐’독보적 음악 영역 개척했다


밴드 산울림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팀이다. 데뷔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록과 동요 사이를 오가는 독특한 음악적 행보를 걸어왔다. 아일랜드 출신 세계적인 록 그룹 ‘U2’를 설명할 때 ‘U2는 U2일 뿐’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처럼 산울림도 그들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트로트와 사랑노래 일색이었던 국내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문화적 충격을 안겨준 산울림에 대해 알아봤다.

산울림의 등장은 1970년대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과 함께 한다.

유신정권은 당대 현실을 노래에 담은 음악인들에 대한 탄압을 자행했고, 대마초 파동은 신중현, 한대수, 김민기 등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맥을 끊어 놓았다.

그런데 산울림은 멀쩡했다. 산울림의 데뷔앨범 ‘아니벌써’의 노랫말은 시대적인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동요처럼 해맑고 순수했다.

김창완의 보이스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무미건조 했다. 군부정권이 소리만 듣고 자신들에게 비판적인지 아닌지를 알 리가 없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렇게 해맑고 순수한 노랫말, 바이브레이션 없는 무미건조한 김창완의 보이스에 ‘퍼즈(소리를 뭉개버리는 이펙트 장치)’ 톤 기타 사운드가 앨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퍼즈 사운드는 일렉기타 영역에서 혁명을 일으킨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미국, 1942~1970)와 영국 밴드 킹크스가 원조 격으로 통한다.

특히 헨드릭스는 ‘사랑과 평화’, ‘저항’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는 격한 퍼포먼스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1967년 데뷔 무대인 몬터리 팝 페스티벌 공연 중 기타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 것과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 하며 베트남전을 상징하는 총소리, 폭발음 등을 만들어 자신의 조국을 비꼰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산울림은 이런 저항적 성향을 가진 음악인의 음향 기법을 차용했다는 점에서 보면 단순히 동요 같은 록을 하는 밴드로 단정 할 수도 없다. 암울했던 시대를 대변하는 그럴싸한 메시지는 앨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산울림은 동심과 명쾌함, 그리고 실험적인 사운드로 부조화 속에 조화를 창조해 내며 그 당시 청년들이 갈망했던 자유와 해방감을 군사정권도 모르게 느끼게 해줬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산울림의 음악 세계로 들어가보자. 산울림은 3인조 형제 밴드다. 동네 음악학원 조차 다닌 적 없었다는 형제는 대학시절 아마추어리즘으로 무장한 채 주말마다 모여 연습을 했다.

대학밴드가 외국의 유명 곡들을 카피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들은 자작곡 만들기에 비중을 뒀다. 100곡이나 되는 곡을 작곡해 미8군 무대에서 ‘무이(無異)’라는 이름으로 연주했다.

이후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서울대 농대 록 밴드 샌드 페블스 6기가 ‘나 어떡해’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 곡의 작곡자는 삼형제 중 둘째 김창훈이다. 즉각 삼형제에게 음반 기획사로부터 앨범 제작 제안이 들어왔다.

우여곡절 끝에 삼형제는 스튜디오 녹음을 마쳤고 이흥주 사장은 그들에게 ‘산울림’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산울림의 데뷔 앨범은 그들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인정받게 만들었다. 지금 내놓아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센스로 무장했다.

앨범의 대표곡 ‘아니 벌써’는 황당한 느낌이 들 정도로 유머러스한 가사에 지글거리는 퍼즈 톤 기타 리프와 경쾌한 베이스 연주가 일품이다.

단조로운 코드 진행에 감미로운 선율이 가득찬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와 경직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또박또박한 베이스라인에 중간 중간 터지는 오르간의 자유분방한 연주가 인상적인 ‘청자(아리랑)’는 앨범에서 꼭 들어봐야 할 곡들이다.

처음 이 앨범이 발표 됐을 때 대중들은 한마디로 ‘골 때리는 음악’이 나왔다면서도 산울림 돌풍에 휩싸이게 됐다. 산울림 1집은 20일 만에 40만 장을 팔아 치웠다. 산울림은 데뷔 1년 만인 1978년 문화체육관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고, 같은해 TBC 가요대상 중창부문상을 수상하며 메이저 음악시장까지 평정하는 기염을 토했다.

산울림은 1977년 데뷔 이후 1997년까지 13장의 정규앨범과 4장의 동요앨범을 발표했고, 지난 2008년에는 이들 17장의 앨범을 모두 담은 산울림 전집 박스 세트를 발매하며 그간 산울림 음악 20년사를 정리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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