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타 팝의 ‘혁명’

왼쪽부터 이석원(보컬·기타), 이능룡(기타), 전대정(드럼)

언니네 이발관은 델리 스파이스와 함께 한국 모던 록, 기타 팝의 양대 산맥으로 분류된다. 지금까지 5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왕성한 공연활동을 벌이고 있다. 언니네 이발관이 특별한 이유는 한국 인디밴드로는 최초로 자작곡으로 데뷔 무대를 장식한데 이어 그것을 기반으로 진정한 음악적 ‘독립’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영·미의 성공한 밴드의 곡을 카피하는 선에 그쳤던 한국 인디문화에서 일종의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성공하려면 일단 저지르고 보라고 했던가. 언니네 이발관의 시작은 대형 거짓말에서부터 비롯됐다.

이 팀의 프론트 맨인 이석원(보컬·기타)은 PC통신 하이텔 음악 동호회 소모임 ‘모소모’에서 활동하며 자신을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라고 소개했다. 그 때가 1993년.

언니네 이발관이란 이름은 자신이 고등학교 때 봤던 일본 성인 영화의 제목이었다. 하지만 언니네 이발관이란 밴드는 존재하지 않는 팀이었다.

뮤지션들이 많은 음악동호회 활동을 하려면 자신도 뭔가 거창한 것을 하고 있어야 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한 거짓말이었다.

그 때부터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정말 언니네 이발관이란 팀이 있는 줄 알게 됐다. 그러다 이석원은 음악 동호회 회원 자격으로 KBS FM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나가 전 국민을 상대로 ‘뻥’을 쳤다. 여기서도 자신을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라고 소개했다.

PC통신에서 시작된 거짓말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전국에 울려 퍼졌다. 언니네 이발관은 이제 방송도 탄 유명 밴드로 거듭나게 됐다. 자신조차 있지도 않은 밴드의 리더라고 믿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이석원은 그때까지 악기하나 다룰 줄 몰랐다. 일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없는 이석원에게 키보드도 칠줄 모르는 류한길이 키보디스트로 합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류한길은 훗날 테크노 9단이라 불리는 데이트리퍼 활동을 하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어쨌든, 동호회의 시삽 류기덕이 베이스로, 유철상은 단지 팔다리가 길다는 이유만으로 드러머로 낙점됐다. 여기에 방송을 듣고 열광하던 중학생 정대욱이 자신을 기타리스트로 써 달라며 찾아와 마지못해 기타리스트로 영입하게 되는 황당한 해프닝도 벌어졌다. 일단 이렇게 이석원, 류한길, 유철상, 정대욱은 그럭저럭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의 구색을 갖추게 됐다.

그들의 음악세계로 들어가보자. 이렇게 모인 밴드는 1995년 홍대 드럭 데뷔무대를 시작으로 1996년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한국 최초의 기타 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평론가들이 뽑은 그해의 앨범 10선에 선정됐다.

앨범 곳곳에는 박자가 어긋나는 등 연주의 미숙함이 엿보이는데, 이런 호평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의 감성에 특별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추어리즘의 성공이었다. 언니네 이발관은 2집 ‘후일담(1998)’의 냉담한 반응에도 4년의 공백기를 거쳐 3집 ‘꿈의 팝송(2002)’을 발표했다. 여기서 밴드는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밴드 성향과 꼭 맞는 기타리스트 이능룡의 발견이다.

이능룡은 펜더 텔레캐스터의 카랑카랑한 생톤에 딜레이 이펙터를 조합해 언니네 이발관 만의 감성적인 톤을 확립해 나갔다. 4집 ‘순간을 믿어요(2004)’의 타이틀 곡 ‘순간을 믿어요’는 이능룡의 탁월한 연주와 톤 감각이 돋보이는 곡이다.

5집 ‘가장 보통의 존재(2008)’는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완성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단편의 연속으로 구성됐다. 앨범 제작기간만 3년, 1년여의 후반 작업을 거쳐 완성됐다.

밴드 멤버들의 말처럼 1번 트랙부터 순서대로 앨범을 감상하면 이 앨범의 진가가 배가 된다.

앨범 제목처럼 이 앨범은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이석원의 자각으로부터 출발했다. 상업적인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놀라운 발전이 있었는데, 앨범 발매 일을 3번이나 연기하면서 까지 공을 들인 후반 보정작업의 결과다.

2번째 트랙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 3번 트랙 ‘아름다운 것’, 5번 트랙 ‘의외의 사실’에서 이석원의 자조적인 읊조림과 이능룡의 원초적이고 공명감 있는 기타연주는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앨범 곳곳에는 인디밴드 1세대의 장인정신이 배어 있다.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은 이 앨범을 통해 비로소 완성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니네 이발관이 ‘가장 보통의 존재’로 시작한지 이제 14년째. 시작할 때는 ‘가장 보통의 존재’였던 그들이 이제는 고참 밴드의 반열에 들어서며 후배 음악인들에게 올바른 음악인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이 특별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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