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발굴·기용 능해…세련되고 아름다운 축구할 것”

지난 7월 22일 조광래 신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위)지난 7월 28일 경남FC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조광래 신임 구국가대표팀 감독과 이청용 선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그동안 대한축구협회는 전·현직 K-리그 감독들을 국가대표팀 신임감독 후보자에 올렸지만 연이은 고사에 난항을 겪어왔다.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로 기대가 높아져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생긴데다 불투명한 임기보장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렇듯 혼란을 빚어오던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이 드디어 종지부를 찍었다. 축구대표팀 수장으로 조광래 프로축구 경남 FC 감독(56)이 최종 낙점된 것. 조 감독은 “월드컵 우승 목표의 디딤돌을 놓는 심정으로 임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 모두에서 성공을 거둔 축구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조 감독의 모든 것을 인물 탐구를 통해 들여다봤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책임”

조 감독은 지난 7월 21일 열린 기술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는 이날 오후 7시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의 2010하나은행 FA컵 16강전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 경남 감독을 맡고 있는데다 경기를 앞두고 있어 소감문을 읽는 형식으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한국 축구계를 대표하는 대임을 맡은 것에 대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대표팀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했다”며 “이처럼 중요한 시점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돼 부담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책임이라 생각해 이 자리를 수락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또 “한국축구는 더 당당해져야 한다. 세계 어떤 강호와 상대하더라도 주눅이 들지 않는 경기력을 갖춰야 한다”며 “투지와 강한 체력, 조직력을 내세우는데 머물지 말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축구로 태어나야 한다. 언젠가는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뛰어야 한다”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처럼 한국 축구의 강점으로 꼽히던 체력과 체격, 조직력을 내세운 축구보다는 현역시절 그가 구사했던 아기자기한 기술축구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어 지난 22일에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져 ‘조광래 호’의 출항을 알렸다. 그는 K-리그 경남 FC가 새로운 감독을 선임할 때까지 시한부로 대표팀 감독과 경남 FC 감독을 겸임한다.

이날 그는 “스페인식의 패스축구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워낙 현대축구가 속도 전쟁이기 때문에 앞으로 대표팀 게임도 속도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 축구가 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남아공 월드컵에서 해묵은 골 결정력과 수비불안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 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국가대표 선발 원칙도 제시했다. “학연, 지연, 종교를 초월해 능력을 가장 우선시하겠다”며 선수선발 과정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철저한 직업적 프로정신을 갖춘 선수를 중용할 생각이다. 남아공 월드컵의 기본틀은 깨지 않고 2~3명의 패스능력이 좋은 선수를 보강할 생각이다.”

오는 8월 11일 수원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나이지리아전을 시작으로 9월 7일 이란, 10월 12일 일본과 연달아 맞붙는다. 그러나 세 경기 모두 승패에 큰 의미가 없어 그의 말처럼 내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이 첫 시험무대가 될 전망이다.


유망주 발굴의 마술사

그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전성기를 구가했다.

전주고와 연세대를 거친 그는 현역 시절 ‘컴퓨터 링커’라는 애칭이 늘 따라다녔다. 축구선수로는 크지 않은 171cm 키지만 자로 잰 듯한 정확한 패스와 앞서가는 경기운영 능력으로 1970~8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타고난 재능과 승부욕으로 1977년 21세에 싱가포르와 친선경기를 통해 A매치 데뷔전을 가졌을 정도로 주목받는 선수였다.

주전 미드필더로 1978년과 1986년 아시안게임 2연패 쾌거를 이루는데 힘을 보탰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다. 이미 선수시절 월드컵 무대를 경험한 것. 당시 멕시코월드컵에서는 차범근(57), 허정무(55) 등 당대 스타들이 모두 출전했다. 1무 2패로 첫 승을 거두지 못했지만 한국 축구의 세계화를 앞당겼다는 평을 받았다.

현역 시절 조 감독의 A매치 성적은 94경기에서 15골이다.

그는 1978년 포항제철에서 실업축구에 뛰어든 것을 시작으로 K리그 창설 원년인 1983년 대우 로얄즈의 창단 멤버로 데뷔했다. 4년 후인 1987년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대우 로얄즈에서 코치로 지내다 1992년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1994년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했다. 1992년 다이너스티컵에서는 대표팀 코치를 역임한 바 있다.

화려했던 선수생활과는 달리 감독으로서의 전성기는 무려 10여년이나 걸렸다. 1995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로 활동하다 1997년 자리를 내 줬다. 그러다 1999년 FC 서울의 전신인 안양 LG 치타스 감독에 선임돼 축구계에 복귀했다. 이때부터 그는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2000년 K-리그 우승, 2001년 K-리그 준우승, 아시아클럽선수권(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등 눈부신 성적을 냈다.

또한 어린 유망주를 발굴하는데 일가견있는 감독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선수 보는 눈이 정확해 어린 선수들을 발탁하고 대표급 선수로 키워냈다.

이청용(볼턴), 이영표(알 힐랄), 김동진(울산)을 키워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줬던 이청용이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그는 FC 서울을 창단한 2004년, 중학교에 다니던 이청용을 스카우트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20대 초반의 이청용이 능수능란한 경기운용으로 경기를 장악하는 실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역할이 컸다. 이처럼 이청용이 한국 대표 선수로 자리매김한 데는 조 감독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게 안팎의 평이다.

이들을 비롯해 정조국, 고요한, 고명진 등 FC 서울의 주축 멤버들을 발굴해 키워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골넣는 수비수’로 주가를 높힌 이정수 선수가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옮긴 것도 그의 몫이 컸다. 이처럼 인재 발굴 및 기용에 능수능란한 감독이다.

2004년 FC 서울 감독에서 물러나 2007년 12월 경남 FC 감독에 취임했다. 2008년 대한민국 FA컵에서 준우승을 일궈냈다. 올 K-리그에서도 챔피언십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팀을 어린 선수 위조로 개편한 후 무패행진을 이어갔다. 시즌 후반에 김동찬, 이용래 등을 앞세워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는 등 주목을 받았다.

그가 새로운 피를 수혈해 세대교체가 절실한 축구 대표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을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축구계 화합 물꼬 틀까?

사실 일각에서는 조 감독의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 대한축구협회에 반하는 세력에 있었던 축구계의 대표적 ‘재야 인사’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축구협회 친 여권 인사가 아니면 대표팀 수장을 맡기가 어렵다는 여론이 있어 왔다.

그는 지난해 축구협회장 선거에서는 허승표 축구발전연구소 전 이사장을 지지했었다. 허 전 이사장은 축구협회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의 취임으로 축구협회 조중연 회장은 “축구계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는 인사를 하겠다”던 취임 약속을 지킨 셈이 됐다.

조 감독 역시 지난 22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축구에는 여야가 없다”고 발언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에서 나를 뽑기까지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라며 “서로 다른 부분을 떠나 능력 있는 감독을 뽑자는데 의견이 모아져 결정된 것 같다. 나는 이 순간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조 감독의 선임으로 그동안 한국 축구계를 반목케 했던 정치적 갈등의 골이 메워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조 감독도 “2년이면 내 색깔을 보여주기 충분한 시간”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축구협회 역시 역대 감독들과 차별되지 않는 지원을 약속했다. 또 그에게 ‘2+2년’ 계약기간을 제시해 2014년까지 임기를 보장해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까지 조 감독 체제로 갈 수도 있지만 중간에 바뀔 가능성도 존재하고 있다. 아시안컵에서 만족할만한 성적을 못 낼 경우 예상보다 빨리 감독 자리를 내려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은서 기자]choies@dailypot.co.kr


조광래 감독 프로필

▶출생 : 1954년 3월 19일 (경상남도 진주)
▶소속팀 : 경남 FC
▶소속 :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신체사항 : 171cm, 65kg
▶학력 : 진주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학사

지도자 경력
▶대우 로얄즈 코치(1987∼1992)
▶국가대표팀 코치(1992),
▶대우 로얄즈 감독(1992∼1994),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1995∼1997),
▶안양 LG 치타스 감독(1999∼2003),
▶FC 서울 감독(2004), 경남FC 감독(2007∼현재)

주요 성적
▶2000년 K리그 우승,
▶2001년 K리그 준우승,
▶2002년 아시아클럽선수권
(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08 FA컵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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